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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노동자 만화 '까대기' 이종철 작가
 택배노동자 만화 "까대기" 이종철 작가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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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2019년) 5월 만화 <까대기>를 선보인 서른여섯의 이종철 작가는 독자들을 만나 사인을 건넬 때면 "늘 몸도 마음도 파손주의"라는 글을 남긴다. 그 이유에 대해 이 작가는 "(택배 화물차에서 택배 물품을 올리고 내리는 일을 뜻하는) '까대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택배 상자에 적힌 '파손주의'라는 문구를 가장 많이 봤다. 저런 당부가 택배 물품뿐 아니라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적용됐으면 하는 생각을 수없이 했다"라고 말했다. 

'창고나 부두에서 인부들이 쌀가마니 같은 무거운 짐을 갈고리로 찍어 당겨 어깨에 메고 나르는 일'인 가대기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진 까대기, 이 작가는 무려 6년 동안 대한민국 주요 택배사 다섯 곳에서 이를 경험했다. 이후 1년여의 집필 과정을 거쳐 택배노동 현장의 목소리를 담은 만화책 <까대기>를 선보였다. 

물론 처음부터 택배노동 현장을 다룬 만화를 선보이려 했던 것은 아니다. 그저 '만화를 그려야겠다'라는 생각으로 고향 경북 포항을 떠나 서울로 올라온 후 오전만 짧고 굵게 일하고 오후엔 만화 작업할 수 있는 일을 찾다보니 자연스레 최저임금보다 2000원 정도 높았던 까대기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거다. 

하지만 학자금도 갚고 월세도 내야 하는 청년의 삶. 오전에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하고 오후에 청과물시장에서도 까대기를 병행했건만, '까대기 아르바이트를 하러 갈 버스비조차 없어 여동생에게 연락해 차비를 빌려야만 하는 상황'이 도래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이 작가는 "(만화를) 그만둘 때 그만두더라도 이것(택배 까대기)만큼은 쓰고 그만두자"라는 생각을 했다.
   
"택배 일하는 사람들은 일에도 치이고 사람에도 치인다. 그래서 되게 외롭다. 나는 <까대기>를 통해 그곳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응원하고 위로하고 싶었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10월 29일 <까대기>의 이종철 작가를 서울 서교동 이 작가의 공동작업실 인근에서 인터뷰했다. 이십대 때부터 민머리를 고수한 이 작가는 이날 검은색 빵모자에 검은색 옷을 입고, 검은색 뿔테를 쓴 채 등장했다. 그의 왼손에는 검은색으로 된 세월호 팔찌가 채워져 있었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산업이 발전? 곡소리부터 떠올랐다"
 
택배노동자 만화 '까대기' 이종철 작가
 택배노동자 만화 "까대기" 이종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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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를 만나자고 한 이유는 단순했다. 올해만 과로로 택배노동자가 총 15명이 사망했고(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 10월 29일 발표 기준), 이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택배 관련 만화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몰랐다. 이 작가의 <까대기>에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택배노동자의 연이은 사망사고 이유가 포진돼 있다는 사실을. 이에 대해 이 작가는 시계를 코로나19가 발생한 올 초로 돌렸다. 

"처음 코로나19가 터지고 나서 뉴스를 보는데 경제전문가들이 나와서 코로나 이후 비대면산업이 발전할 것이라면서 낙관적으로 말을 했다. 그 순간 노동자들의 곡소리도 함께 떠올랐다. 추석 이후에나 들리던 곡소리가 이제는 1년 내내 들리겠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책에는 "추석이 다가오면 택배 대란은 시작된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택배대란' 에피소드가 나온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추석선물과 쌀 포대, 배송이 늦었다고 항의하는 고객들, 어쩔 수 없이 새벽까지 일하는 택배노동자들의 삶이 그려진 파트다. 그런데 이곳에서 복대를 찬 한 택배기사가 산처럼 쌓인 택배상자를 보며 "밥 먹을 시간이나 제대로 있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한다.

작가가 예상을 한 것은 아닐 테지만 지난 8일에 서울 동대문구에서 배송 중 사망한 한 CJ대한통운 소속의 택배기사 김원종(48)씨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김씨는 저녁 배송을 하던 중 호흡곤란을 일으켜 사망했다. 그의 팔순 아버지는 아들의 장례식장 앞에서 "아들이 일하는 곳에 따라가 봤더니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뛰어만 다니더라"면서 "밥 먹을 시간은 줘야 사람이 살지"라고 말하며 목놓아 울었다. 

동료가 허리를 삐끗했을 때... "산재라는 개념조차 없다"
        
택배노동자 만화 '까대기' 이종철 작가
 택배노동자 만화 "까대기" 이종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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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 역시 까대기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 손목에 부상을 입는 등 산업재해를 당했다. 하지만 치료비는 고사하고 아예 일 자체를 쉬어야만 했다. 당시 까대기 아르바이트에겐 계약서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택배기사들은 달랐을까. 이 작가는 "기사들 역시 수년 동안 일해도 산재라는 개념조차 알 수 없다"라고 말한다.

"6년 동안 까대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택배노동자가 산재로 보상을 받는 경우를 단 한 번도 본 적 없다. 당연히 (고 김원종씨가 작성했다는) 산재적용 제외 신청이라는 것도 몰랐다. 다수의 택배기사들도 산재에 대한 개념이 없다. 다쳐도 그냥 혼자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만 한다. 그러니 현장에서는 처음부터 다치지 말자고만 한다."

문제는 현장에서 산업재해를 피할 수는 없는 일, 실제로 이 작가의 책에는 현실의 과로사처럼 위태로운 장면들이 이어졌다. 한 택배기사가 허리를 삐끗했는데 동료들은 밀려드는 물량을 소화하느라 돌봐줄 겨를이 없다. 결국 동료들은 그를 '빠레트(화물을 쌓는 틀이나 대)' 위에 눕혀놓은 채 각자의 차를 몰고 나간다. 얼마 지나 구급차가 들어와 다친 기사를 실어갔지만 다음날 그는 창백한 표정으로 복대를 차고 출근했다. 대신 근무를 서줄 사람이 없고 할당된 자신의 물량을 채워야만 생계를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택배노동자 만화 '까대기' 이종철 작가
 택배노동자 만화 "까대기" 이종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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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는 "'힘들면 쉬면 되지 않냐'라는 물음이 가장 말도 안 되는 질문"이라면서 "절대 불가능하다. 택배기사들은 물량 숫자를 갖고 계약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별로 자기 구역을 계약하는 거다. 담당해야 할 지역 내 물건이 지연되거나 파손되면 모두 택배기사에게 책임이 있다. 절대 쉴 수 없는 구조"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작가는 이러한 일들의 주요한 원인이 '독과점의 폐해'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책에서 공룡으로 표현된 재벌택배사는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택배비를 낮추는 방식으로 시장을 점유해 간다. 결국 택배사들끼리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5000원 이상하던 택배비는 계속 내려갔고, 이러한 폐해는 택배기사들에게 온전히 돌아갔다. 이 작가는 "한 건에 1000원 하던 수수료가 어느새 700원, 600원이 됐다. 생계를 위해 기사들은 생각이라는 걸 하지 못하고 택배를 분류하고 들고 나르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배송하는 기계가 아닌 사람... 노동자들이 목소리 내면 변한다"

연이은 택배노동자들의 죽음에 CJ대한통운을 비롯해 한진, 롯데, 로젠 등 대한민국 주요 택배사 대표들이 과로사 방지 대책을 내놓고 대국민 사과를 발표했다. 대표적인 대책이 택배 분류인력 투입. 그러나 그마저도 택배사들은 "단계적으로 투입하겠다"면서 "(비용에 대해) 대리점과 협의 중이다, 기사들에게는 책임을 전가하지 않겠다"라는 입장만 밝힌 상태다.

이 작가는 "(분류인력 투입이) 제대로만 정착되면 택배기사들의 출근시간이 2~3시간은 늦춰질 것"이라면서도 "기사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제대로 이뤄질 수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기사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확실한 방안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과로사 대책위가 택배사들의 약속 이행을 위해 정부와 국회, 택배사, 노동자, 시민단체가 함께하는 사회적 대화기구인 '민관공동위원회'를 구성하자고 주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편 이 작가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택배기사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면서 변화가 만들어진 것"이라면서 "결국 노동자를 배송하는 기계로 여기느냐, 사람으로 여기느냐의 차이다. 사람으로 여기야만 변화할 수 있다. <까대기>는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택배노동자 만화 '까대기' 이종철 작가
 택배노동자 만화 "까대기" 이종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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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인 점은 차비도 없어 아르바이트도 제때 가지 못했던 이 작가는 <까대기>를 세상에 선보인 이후 전업으로 만화를 그릴 수 있게 됐다. 학교와 노동현장을 중심으로 <까대기>가 퍼져나가고 있다.

태그:#이종철, #택배, #까대기, #상하차알바, #CJ대한통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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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팀 취재기자. 오늘도 애국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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