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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저는 곱슬머리예요. 그래서 초등학생 때부터 매직을 하지 않은 머리로 지내본 적이 없어요. 곱슬머리가 콤플렉스였기 때문에 매년 1, 2회씩 주기적으로 매직 파마를 해왔었고,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어요.

대략 10살부터라고 해도 근 20년을 매직 파마를 하면서 살아왔어요. 왜 저는 곱슬머리가 조금이라도 자라면 무조건 다시 매직으로 쫙쫙 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는지 모르겠어요. 그러다가 3년 전 결혼을 앞두고 5월에 매직 파마 시술을 받았고, 결혼식 당일날 헤어숍에서 실장님이 머리를 만져주시며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이 예쁜 곱슬머리를 왜 가만히 안 두고, 매직을 하시는 거예요? 신부님은 머리카락도 얇은 편이라 매직하면 손상도 심할텐데, 축 처지기도 하고요."

제가 갖고 있던 미의 기준 '곱슬머리는 안돼, 생머리가 예뻐'가, 20년간 결코 변하지 않던 미의 기준이 파괴된 순간이었어요. 실장님 말대로 제 머리카락은 늘 상해 있었고 언제나 축 처져 있었어요. 하지만 저는 늘 매직 파마를 그만두고 싶었어요.

그러지 못했던 것은 내가 나의 곱슬머리를 사랑해주지 못했기 때문이었어요. 남들에게 더 예뻐 보이기 위해서는, 못생기고 지저분한 나의 곱슬머리를 감추고 늘 찰랑찰랑 긴 생머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언제나 남들에게 예쁜 여자로 보이고 싶었거든요.

작은 찰나의 계기. 결혼식을 앞두고 만난 헤어숍 실장님의 말 한 마디로, 저는 더 이상 매직 파마를 하지 않기로 했어요. 내 자연 그대로의 곱슬머리를 사랑해주기로 했어요. 그리고 헤어숍에는 발길을 끊었어요. 스스로 내 곱슬머리를 예뻐해 주기로 선택하자, 내 곱슬머리는 정말로 예쁜 머리가 되었어요. 제 눈에는 정말로 그렇게 보였어요.

다른 사람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는 삶

그렇게 결심한지 2년 4개월이 지났어요. 결심은 생각보다 쉽게 했지만 사실 곱슬머리로 살아가는 과정이 그리 쉽진 않았어요. 곱슬머리인 사람들만 알 것 같은데... 매직 시술을 하고 한두 달만 지나도 내 꼬부랑 머리가 자라면서 머리가 아주 많이 지저분해져요. 앞머리 쪽은 너무 촌스러워서 고데기가 없으면 밖에 나가기도 싫고요.

처음엔 내 곱슬머리가 이상해 보이고, 촌스럽고- 곱슬머리 때문에 내가 못생겨 보이는 그 마음 때문에 힘들었어요. 그럼에도 끝까지 매직 파마를 하지 않기로 고집부렸던 것은 나는 정말로, 온전히, 나 자신으로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내가 원하는 대로 살고 싶었어요. 저는 정말 더 이상 일 년에 두 번씩 미용실에 가서 꼬박 4~5시간을 엉덩이가 다 무르도록 앉아서 독한 약품 써가며 머리를 펴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드디어 매직 파마 시술을 받아 부자연스럽게 펴 있던 머리 끝을 모두 잘라내었어요. 그리고 온전히 제 곱슬머리만 남았어요.

저도 놀랄 만큼 무척 어여쁘게 정말로 새로 펌을 한 것만 같은 구불구불거리는 예쁜 머리를 갖게 되었어요. 더 이상 독한 시술을 받지 않으니, 늘 건강한 머릿결은 덤이고요. 매직했을 때 조금씩 자라던 머리는 굉장히 꼬불렸는데 막상 길게 길러보니 머리카락이 알아서 자리를 잡았고, 모근 쪽은 심하게 구불거리지 않아요.
 
매직펌을 했던 머리를 다 잘라내고, 드디어 나의 곱슬머리만 남았다.
 매직펌을 했던 머리를 다 잘라내고, 드디어 나의 곱슬머리만 남았다.
ⓒ 이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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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습도에 따라 머리카락의 컬과 결이 달라져서 제 마음대로 할 수는 없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지만, 거울 속 지금의 제 모습이 훨씬 나다워서 무척 만족스럽습니다.

이마 쪽 헤어라인은 여전히 지렁이처럼 꼬불거리는데 이제 누군가 시선이 오래 머물면 콤플렉스를 들켰다는 듯이 당황하지 않고, "응, 나 곱슬머리야. 요즘 매직 파마 안 하고 길러보고 있어"라고 대답할 수 있는 자존감도 생겼어요.

완벽하게 고데기와 매직 파마에서 벗어난 삶이 무척 홀가분합니다. 언젠가 또다시 헤어숍에 가서 매직 파마를 할지도 몰라요. 아마 차분한 칼 단발 헤어스타일을 해보고 싶어진다면 말이에요. 그때까지는 20년 만에 겨우 만난 내 천연 곱슬머리를 있는 힘껏 예뻐해 주려고요! 

곱슬머리라서 좋다는 것이 아니에요. 만약 태어날 때부터 생머리였다면, 전 아마 제가 생머리여서 좋다고 할 거예요. 저는, 제가 가진 제 머리카락 그 자체가 좋아요. 그게 어떤 형태라도요. 이런 마음을 갖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있는 그대로의 내 존재 자체를 사랑하는 마음이요.

작년 한 해 동안에는 이 곱슬머리를 풀어헤치고 세계여행을 다녀왔어요. 한국에서는 제발 좀 미용실 좀 가라는 핀잔을 듣기 일쑤였던 제 곱슬머리가 아무런 관심을 받지 않는 것, 그게 저를 자유롭게 했어요. 

그래서 남의 눈에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보다,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더 중요해졌어요. 그리고 이왕이면 나 자신과 내 삶을 더 뜨겁게 사랑하며 살고 싶어졌어요. 얼굴 가득한 주근깨를 가리기 위해 파운데이션 바르는 것을 멈췄고, 빈약한 가슴을 숨기기 위해 뽕브라를 차는 것도 멈췄고. 비 오는 날이 제일 싫었던 곱슬머리를 온전히 사랑하게 되었고. 29살부터 벌써 나오기 시작했던 새치들도 더 이상 뽑지 않아요.

나 자신을 사랑하기의 시작은 미니멀 라이프

'까탈스럽고 예민해서 다른 사람들이 싫어하겠다, 그러니 숨겨야지' 그렇게 생각했던 저의 본 성격 또한 더 이상 가리지 않습니다. 부정적으로 예민한 게 아니라 다른 사람보다 방어벽이 약해서 민감한 성향일 뿐이에요. 덕분에 다른 사람의 감정과 고통에 누구보다 더 잘 공감할 줄 압니다. 마음이 여리고 따뜻한 사람이에요. 더 이상 제 민감한 성격은 제게 가려야 할 단점이 아닙니다. 좋게 발달시켜 나와 평생 함께 갈 장점입니다. 

나를 진심으로 온 마음 다해 사랑하고, 내 존재를 누구보다 나 자신이 가장 기뻐하기 시작하면서 제 여행 또한 술술 풀리고 여기저기서 천사가 나타나서 알아서 도와주고 좋은 일들이 많이 일어나기 시작했어요.

사실 이 모두가 미니멀 라이프 덕분이에요. 미니멀 라이프가 아니었더라면, 저는 원룸에서 신혼생활을 하며 '돈돈' 거렸을 거예요. 이 지긋지긋한 원룸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요. 세상에서 나보다 잘나고,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만 흘깃거리면서 부러워하고 질투하고, 내 인생과 비교하며 괴로워했겠죠. 모든 것을 훌훌 털고, 세계여행을 떠나올 용기도 없었을 거고요.

결국 모든 시작은 미니멀 라이프였어요. 미니멀 라이프의 시작은 내게 쓸모없는 물건 하나 버리기였고요. 그러다 보니 저는 온전한 제 곱슬머리를 아주 많이 예뻐해줄 정도로, 제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네요. 과거의 저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미니멀 라이프는 기적의 시작이에요.
요즘 무척 행복합니다.

덧붙이는 글 | 해당 글은 저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 플랫폼에도 연재중입니다.


태그:#미니멀라이프, #곱슬머리, #있는그대로의내모습, #세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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