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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90년대생들은 참 바빴습니다. 학교에선 PMP에 담아놓은 '인소'과 팬픽을 몰래 읽으며 운명적 사랑을 꿈꿨고, 칙칙한 체리 몰딩에 둘러싸인 현실의 방 대신 싸이월드 미니홈피 꾸미기에 열중했습니다. 그 시절, '좋아요 반사'와 '일촌 파도타기'는 하루의 중요한 일과였지요. 엄마는 질색했지만, '얼짱'을 따라 샤기컷을 하고 열심히 돈을 모아 브랜드 옷을 사보기도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웃음이 나기도 하지만, 소중하고 낭만적이었던 그 시절을 '추억팔이' 해봅니다.[편집자말]
 남성 듀오 10cm(권정열·윤철종)이 18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에서 정규 3집 <3.0> 발매 기념 쇼케이스를 열었다.
 남성 듀오 10cm(권정열·윤철종)가 지난 2014년 서울 종로구 동숭동에서 정규 3집 <3.0> 발매 기념 쇼케이스를 열었다.
ⓒ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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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노를 처음 맛본 것이 언제였는지 생각해본다. 고등학교 1학년. 이제는 행사계의 아이콘이 된 십센치라는 밴드가 <아메리카노>(2010년 8월 발매)라는 노래로 한국 인디씬(인디 음악계)에 처음 나타났을 때였다.

커피를 마시면 머리가 나빠진다는 어른들의 말에 미지근한 싸구려 커피의 맛을 상상만 하며 장기하와얼굴들의 <싸구려커피>(2008년 5월 발매)를 열창하던 것에서는 졸업하고 싶었다. 고등학생이 되었으니, 전 국민이 외치는 "아메리카노~ 좋아! 좋아! 좋아!"의 아메리카노가 무엇인지는 알고 따라 불러야 했다. 덕분에 내가 카페인에 맞지 않는 몸이라는 것을 일찍이 알게 되었다. 

그즈음 인디밴드에 푹 빠졌다. 아메리카노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만 해도 노래가 된다니. 일곱 살 때부터 "엄마, 가수들은 왜 사랑 이야기밖에 하지 않는 거예요?"라고 질문하던 나였다.

성공한 사랑과 실패한 사랑이 아니어도 노랫말을 짓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나는 더 많은 이야기들을 찾아 홍대 앞을 헤매었다. 아이팟 재생목록에서 아이돌 노래는 점점 뒤로 밀려났고, 인디밴드 앨범이 더 많은 면적을 차지하게 되었다. 취향을 탐색하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었다.

홍대에서 버스킹 하다가 방송 타던 그때
 
'싸구려커피'를 부르는 장기하  2008년 9월 EBS 스페이스 공감에 출연한 장기하. 데뷔곡인 '싸구려커피'를 부르고 있다.
▲ "싸구려커피"를 부르는 장기하  2008년 9월 EBS 스페이스 공감에 출연한 장기하. 데뷔곡인 "싸구려커피"를 부르고 있다.
ⓒ 유튜브 채널 "EBS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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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센치가 등장한 이듬해, <TOP밴드>(2011년 6월 4일~10월 15일)라는 밴드 서바이벌 TV프로그램이 등장했다. 시즌별로 챙겨봤다. 2009년 <슈퍼스타K>를 시작으로 <K팝스타>, <위대한 탄생>과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한창이던 때였다.

<TOP밴드> 출신의 밴드 '장미여관'은 무한도전 가요제에 출연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2년에 한 번씩 열리던 무한도전 가요제는 매회 쟁쟁한 작곡가와 실력파 아이돌을 섭외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화제의 인디밴드를 한 팀씩 소개하곤 했다(2011년 십센치, 2013년 장미여관, 2015년 혁오).

2011년 시작한 <TOP밴드>는 시즌3으로 2015년 막을 내렸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저물고 만 홍대 앞 인디씬의 끝자락과 시기가 비슷하다. 연초부터 용돈을 모으며 티켓팅을 기다리던 록페스티벌들의 라인업이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헤드라이너에 일렉트로닉과 힙합의 비중이 점점 커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가 유행의 반열에 올랐다. 

홍대 길거리에서 버스킹을 하다가 지금 막 방송국에 도착한 듯한 수더분한 외모, 날것 그대로의 모습에 사람들이 열광하던 때가 있었다. 이제는 독특한 음악색과 가창력은 물론이고 모델과 다름없는 비주얼을 갖추어야 '팔리는' 밴드가 되는 듯하다.

홍대 인디씬의 노래를 '졸업'하며 

내가 기억하는 인디밴드의 정의는 자본에 구애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창작하고 실험하는 음악가이다. 그들의 자취를 찾고 싶을 때면 얼마 남지 않은 홍대 앞 라이브클럽을 찾는다. 코로나19로 사회 전체가 비대면 모드로 전환되면서 공연도 온라인화 되고 있다. 인디밴드의 생음악을 듣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질 것만 같아 걱정이다.

멤버 두 명의 키차이가 10cm라는 이유로 지어진 이름이 무색하게, 십센치는 솔로로 활동하고 있다. 농염하고 달콤한 음색을 좋아했는데, 다시 들어보면 여성혐오적 가사가 많았다('아메리카노'부터 그랬다). 검정치마의 경우 이제 내 또래의 페미니스트 사이에서 길티플레저의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노래에는 더 이상 어깨가 들썩여지지 않는다. 
 
퀸 와사비와 슬릭 힙합 리얼리티 뮤직쇼 'GOOD GIRL : 누가 방송국을 털었나'에 출연해 화제가 된 퀸 와사비와 슬릭. 비건 페미니스트로서의 힙합, 성인용품점에서 일하며 작곡을 한 이야기 등으로 다양한 여성 아티스트의 모습을 보여주며 화제가 되었다.
▲ 퀸 와사비와 슬릭 힙합 리얼리티 뮤직쇼 "GOOD GIRL : 누가 방송국을 털었나"에 출연해 화제가 된 퀸 와사비와 슬릭. 비건 페미니스트로서의 힙합, 성인용품점에서 일하며 작곡을 한 이야기 등으로 다양한 여성 아티스트의 모습을 보여주며 화제가 되었다.
ⓒ 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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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의 내가 사랑과 관련이 없는 노랫말을 쫓다가 인디밴드를 접하게 되었다면, 지금은 다양한 정체성의 음악가들이 이야기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편이다. 여성싱어송라이터, 트랜스젠더 전자음악가, 페미니스트 래퍼의 음악을 자주 듣는다.

이제는 방송이나 영화, 드라마 OST에서도 다양성 음악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그래도 여전히 갈증이 난다. 더 다양한 노랫말들이 있을 것만 같다. 아직도 열지 못한 세계의 문들이 많다. 디카페인 커피가 있다는 것을 아주 최근에서야 알게 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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