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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동 어귀의 계산약국 자리, 현재는 3층에 계산 한의원 대신에 삼선당 한의원이 들어서 있다.
 계동 어귀의 계산약국 자리, 현재는 3층에 계산 한의원 대신에 삼선당 한의원이 들어서 있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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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한 달여 만에 교도소에서 출소했다. 그때 아버지는 날개를 다친 새처럼 바깥출입도 뜸한 채 방안에서 내가 배달하고 남겨온 신문을 광고까지 죄다 읽으며 지냈다. 내가 학업도 중단한 걸 보시고 크게 충격을 받은신 듯, 당신의 삶의 근거지였던 부산으로 가셨다. 거기서 파지로 과수용 봉투, 화물용 꼬리표, 등을 만드는 일을 하시면서 어머니와 막내동생도 불렀다.

그러자 서울에는 나만 남았다. 나는 거처를 계동 중앙학교 옆으로 옮긴 뒤 자취를 하면서 지냈다. 

나는 계동 구역에 조선일보를 배달하면서 동아일보 배달원 김대식과 매일 만났다. 배달 구역도 코스도 거의 같았다. 신문이 나오는 시간도 비슷하기에 늘 우리 두 사람은 앞서거나 뒤서거니 서로 다퉜다. 서로 경쟁 관계였지만 둘 사이는 무척 친했다.

나는 대식을 통해 동아일보 세종로보급소가 여러 면에서 대우가 더 좋다는 사실을 알았다. 우선 배달 부수가 더 많기에 수입이 많았고, 배달원에 대한 사람 대접도 훨씬 좋은 걸 알았다. 하지만 재학생만 배달원이 될 수 있다고 하여, 마냥 부러워할 수 밖에 없었다.  

나의 배달 구역 첫 집은 계동 어귀 계산약국이었다. 그곳에서 시작하여 휘문, 대동, 중앙학교로 거슬러 올라가서 원서동 고개를 넘어 다시 아래로 내려온 뒤 창덕궁 사무실에 넣으면 끝이었다. 조간 배달이 끝나면 곧장 창덕궁 숲으로 들어가서 맑은 개울물에 세수도 하고, 가을철이면 산책길에 알밤도 주웠다.

그럴 때 나는 왕족이 된 기분이었다. 서울시민 가운데 몇 사람이나 이른 새벽 창덕궁을 마음대로 드나들면서 궁내 맑은 개울에서 세수를 하겠는가. 문득 사람의 행과 불행도 생각하기 나름 같았다.

설날 해맞이
  
 백두산 정상에서 해맞이(2005. 7. 촬영).
 백두산 정상에서 해맞이(2005. 7. 촬영).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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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1월 1일, 그날 조간 신문은 신년호로 평소보다 세 곱 정도 분량이 많았다. 그래서 평소처럼 옆구리에는 도저히 낄 수가 없어 새끼로 신문뭉치를 묶어 등에 진 뒤 배달구역으로 갔다. 계동 어귀 휘문학교(현, 현대사옥) 담 으슥한 곳에다 신문뭉치를 감춰두고 평소와 같은 양의 신문을 옆구리에 끼고 독자 집에 배달했다.

그때 나의 마지막 배달 장소는 창덕궁 사무실이었다. 겨울이라 배달을 마쳐도 아침 해는 뜨지 않았다. 그날 집으로 돌아가는데 문득 새해 해맞이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 얼마 전에 올라가 본 북악산 기슭 삼청동 산비탈로 올라갔다.

나는 떠오르는 해를 향해 두 손을 모으면서 소원을 빌었다. 그 첫째는 복학을 하여 고교를 졸업한 뒤 교사, 그 둘째는 작가, 그 셋째는 신문기자가 되게 해달라고 빌었다.

당시 서울 북촌은 대부분 한옥이었다. 한옥 대문 틈으로 신문을 넣으면 집안에서 개들이 갑자기 뛰어나와 내 바짓가랑이를 물어 찢어놓곤 했다. 그때 나는 워커(군화) 발로 달겨드는 개 주둥이를 차면서 고함쳤다.

"사람 차별하지 마. 난 다음에 학교 선생님이 되고, 작가도 되고, 그리고 신문기자가 될 거야!"
     
 동아일보 세종로보급소가 있던 자리로, 현재는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빌딩이 서 있다.
 동아일보 세종로보급소가 있던 자리로, 현재는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빌딩이 서 있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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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새벽 배달 길에 동아 대식이는 나에게 언제 복학하느냐고 물었다. 다가오는 1962년 3월에 복학할 예정이라고 하니까, 마침 배달원 자리가났다고 하면서 석간 배달 후에 자기와 같이 보급소에 가자고 했다. 그러면서 꼭 교복을 입고 오라고 했다. 그 말에 내가 쭈뼛 망설이자, 그럼 교모라도 꼭 쓰고 오라고 일렀다.

그날 석간 배달 후 나는 대식이를 따라 청진동에 있는 동아일보 세종로보급소로 갔다. 집에서 교모를 가슴속에 품고 갔다가 보급소 문 앞에서 썼다. 보급소 소장은 새 학기에 꼭 복학을 한다는 조건으로 뽑아주었다.      

가난한 서촌 예술인 마을

나는 그토록 소망하던 동아일보 배달원이 되어서 마치 큰 벼슬이라도 한 것처럼 무척 기뻤다. 그때 내 솔직한 심정이었다. 조선일보 계동구역을 사흘 만에 인계하고 동아일보 누하동 구역으로 옮겼다. 동아일보 세종로보급소는 청진동에다 한옥 한 채를 통째로 쓰고 있었다. 그 한옥은 보급소 사무소 겸 배달원들의 무료 숙소로 제공했다.

월말 수금 때는 보급소에서는 특식으로 날마다 지금의 교보문고 자리에 있었던 '복취루'라는 중국집에서 계란빵을 사다가 한 개씩 나눠줬다. 그 빵 맛이 기가 막혔다. 신문 사납금을 다음 달 8일까지 마감하면 2퍼센트의 특별수당을 더 주는 등, 다른 보급소에서는 볼 수 없는 파격 대우였다.

나의 배달구역은 서촌 누하동으로, 그 동네에는 가난한 예술인들이 많이 살았다. 기억에 남는 분으로는 동양화 청전 이상범 화백 댁과 도상봉 화백, 그리고 서양화 천경자 화백이었다. 세 집 모두 동아일보 독자였다. 이상범 화백은 일제강점기에 동아일보에 근무한 분이었기에 본사에서 무가지라 하여 그냥 넣어드렸다.

천경자 화백 댁은 이상범 댁 골목 어귀 두 번째 집으로 초라한 한옥이었다. 나무문패에 본인의 먹으로 쓴 '千鏡子'라는 글씨체가 지금도 기억에 뚜렷하다. 
  
 서촌 누하동 이상범 화백 댁
 서촌 누하동 이상범 화백 댁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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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학하다

개학식 날, 나는 묵은 교복을 꺼내 입고 윗목에 고이 모셔놓은 책가방을 들고 다시 학교에 갔다. 교복을 입고 책가방을 다시 들자 마치 꿈만 같았다. 개학식에 참석하고자 운동장으로 가다가 농구 코트에서 지난해 짝 철웅을 만났다. 먼저 그가 멀리서 알아보고 달려와 포옹을 하고는 나를 번쩍 들었다가 놓았다.

"복학, 축하한다. 박도!"
"반갑다!"
 

그날이 내 생애에 가장 기뻤던 날로, 그 순간 눈물이 불쑥 솟았다. 지금도 그날의 일들이 또렷이 머릿속에 새겨져 있다. 그리하여 나의 고교생활은 다시 시작됐다.

나는 고교 시절 무척 어렵게 학교에 다녔지만 중동학교 선생님들에게는 무척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 국어과 박철규 선생님은 계동에 사셨기에 신문배달 중에도 이따금 만날 수 있었다. 그때마다 나에게 격려의 말씀을 잊지 않았고, 후일 나를 모교 교사로 채용할 만큼 내 앞길을 열어주셨다.

내 인생길에 가장 영향을 주신 분은 고교 시절 홍준수 선생님이시다. 그분에게 2년간 사회 과목을 배웠고, 또 교지 및 신문 편집기자로 곁에서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홍 선생님이 수업시간 중 틈틈이 들려준 말씀들은 사회에 막 눈을 뜨려는 고교생의 지적 호기심을 풀어주는 샘물이었다.

오로지 '반공'만이 국시였던 그 무서웠던 시절에도 선생님은 대단히 용감하게 자본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배경이나 발달사와 그 장단점을 교육자의 양심에 따라 아주 자세하게 가르쳐주었다.

고2 1학기 중간고사가 끝나고 전교생이 단체로 단성사에서 영화를 본 다음 날 사회시간이었다. 그 영화 제목은 <싸우는 젊은이들>로 6·25전쟁을 배경으로 한 미국 영화였다.

마지막 장면은 미군 병사가 눈이 쌓인 고지에서 몰려오는 인민군들을 기관총으로 신나게 쏘아 죄다 쓰러뜨렸다. 우리들은 그 장면에 기립박수를 치면서 영화관을 나왔다. 그 이튿날 수업시간이었다.
 
"얘들아, 너희들은 마지막 장면에 기립 박수를 쳤다. 그런데 총을 쏜 병사는 어느 나라 사람이고, 피를 흘리면서 쓰러진 사람은 어느 나라 사람이냐?"
 
우리들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내가 일흔이 넘은 입때까지 시민기자 생활을 할 수 있는 까닭은 고교시절 학생기자로 홍 선생님에게 배운 기사 작성법과 편집술 때문일 것이다.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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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교사생활 후 원주에서 지내고 있다. 장편소설 <허형식 장군> <약속> <용서>, 역사다큐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사진집<지울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미군정 3년사>, 어린이 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 <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 <독립운동가, 청년 안중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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