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제자들에 대한 뒷담화가 교사로서 제 얼굴에 침 뱉기라는 걸 모르진 않는다. 아이들이 일과의 대부분을 학교에서 보내는 마당에, 교육으로 아이들을 감화시키지 못한 책임은 일차적으로 교사에게 있다. 다만, 교사가 아무리 애쓴다 해도 바루기 쉽지 않다는 걸 하소연하려는 것이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청년 교사 시절의 무모했던 경험 한 꼭지다. 치킨과 삼겹살, 탄산음료 등에 길들어진 아이들의 식성을 교정해줄 요량으로 시작했던 자칭 '아이들과 점심 함께 먹기 프로젝트'는 고작 두 달 만에 욕만 바가지로 얻어먹은 채 끝났다.

20년간 굳어진 식습관... 1년 만에 바로잡아질 리가

10대 후반이라는 나이를 얕본 것이다. 얼추 20년 가까이 굳어진 식습관을 담임으로 만나는 1년 만에 바룰 수 있으리라는 건 욕심이자 만용이었다. 즐거워야 할 점심시간에 아이들은 대놓고 불만을 드러냈고, 학부모들 역시 부러 전화를 걸어 항의를 해왔다.

취지는 거창했으나 계획이 정밀하지 못했고, 보기에 따라서는 유치하기까지 했다. 개인적인 알레르기 유발 음식이 아닌 한, 급식 메뉴는 단 한 가지도 거르지 않고 남김없이 다 먹어야 한다는 것. 만약 어기면 아침 10분 일찍 등교해서 교실을 청소하는 것으로 벌칙을 정했다.

담임과 마주 앉아 점심을 먹는 것 자체를 불편해하기도 했지만, 문제는 나물 등 채소와 비린내 나는 생선 반찬이었다. 믿기 어렵겠지만, 담임이 보는 앞에서 구토하는 시늉을 하는 아이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물은 단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다는 아이들이 적지 않았다.

이젠 급식소도 김치나 콩나물 등을 제외하곤 나물을 반찬으로 내지 않는다. 요리하기도 번거로우려니와 만들어봐야 대부분 잔반통에 버려지기 때문이다. 생선도 바싹 튀기거나 다디단 소스를 바르지 않으면 아예 손을 대지 않는다. 그마저 생선은 한 달에 서너 번 나올까 말까다.  
 채식급식 국민운동본부 회원들이 24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주 1회 채식급식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서울 교육청의 채식 선택제 도입 계획에 환영 입장을 밝히고 광주, 전남지역 초·중·고교에서 시행 중인 '주1회 채식급식제'시행을 촉구했다. 2020.6.24
 채식급식 국민운동본부 회원들이 24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주 1회 채식급식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서울 교육청의 채식 선택제 도입 계획에 환영 입장을 밝히고 광주, 전남지역 초·중·고교에서 시행 중인 "주1회 채식급식제"시행을 촉구했다. 2020.6.24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1년 365일 소, 닭, 돼지가 메인 메뉴다. 단 하루라도 고기반찬이 나오지 않는 날은 없지만, 혹여 생선이 대신할라치면 아이들은 재빠르게 '자구책'을 강구한다. 당일 매점은 종일 점심을 거른 아이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스마트폰만 켜면 급식 메뉴를 미리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인 급식소의 영양교사도 두 손 두 발 다 든 마당에, 일개 담임교사가 반 아이들의 식습관을 교정한다고? 계획을 말했을 때, 주변 동료 교사들은 하나같이 콧방귀를 뀌었다. 그래도 점심시간 동반과 교육의 효과를 나름 자신했던 건 믿는 구석이 있어서였다.

당장 국어와 사회, 체육 교과서 등에 채식 습관의 필요성 등이 숱하게 실려있었다. 주로 육류 소비량의 급격한 증가와 환경 파괴의 연관성을 다룬 내용으로,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내용이었다. 학부모들 역시 자녀의 식습관에 대해 상당한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을 것으로 봤다.

"한창 크는 나이인데, 점심시간까지 스트레스를 받아서 되겠습니까. 우리 아이가 아무거나 많이 먹도록 내버려 두세요. 나중에 때가 되면 알아서 챙겨 먹을 테니까요."

이 말에 결국 프로젝트를 접었다. 아이들의 식습관에 대한 인식 자체가 학부모들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그들과 문제의식이 공유되지 않은 상태에서 실상 예정된 수순이었다. 이는 학부모들은 무관심하고, 수업은 겉돌고 있으며, 학교 교육이 무기력하다는 걸 절감한 계기였다.

제자들의 방문이 더는 반갑지 않은 이유 

서두가 길었다. 이는 아이들의 식습관만의 문제가 아닐뿐더러 어릴 적 가정 교육에 책임을 돌리려는 건 아니다. 교사로서, 학교에서 더는 교사와 학생 간 가르침과 배움의 상호 작용이 일어나고 있지 않다는 뼈아픈 고백이며, 나아가 '학교란 무엇인가'에 대한 냉엄한 자문이다.

가르침은 '공자왈 맹자왈'로 치부되고, 배움은 등급과 점수로만 치환되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아이들의 가슴을 울리지 못하는 가르침은 허망하고,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배움은 지적 허영을 넘어 위태롭기까지 하다. 그렇듯 껍데기만 남은 교육이라면 존재할 이유가 없다.

요즘 들어 학교를 찾아오는 제자들이 그다지 반갑지 않다. 졸업 후 그들의 생활과 근황이 궁금하긴 하지만,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이내 불편해지기 때문이다. 듣다가 도저히 아니다 싶어 욱한 경우도 더러 있었다. 그때마다 그들은 내가 왜 화를 내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눈치였다.

의대에 진학한 제자들의 특권 의식은 이미 한두 차례 성토한 바 있어 더 언급할 필요는 없겠다. 조금은 지질한 저항이지만, 그들 중 몇몇 아이들의 전화번호는 아예 스마트폰에서 지워버렸다. '전교 1등을 한 게 죄냐'고까지 말하는 그들에게 더는 해줄 말이 남아있지 않아서다.

엊그제는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 체제는 몸에 맞지 않는 옷이라고 말하는 제자가 찾아왔다. 양극단으로 갈라져 악플만 쏟아내는 정치 현실을 보라며, 애먼 민주주의에 그 책임을 돌렸다. 갈등이 본령이라는 말에 그는 결말이 나지 않는 갈등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권위 있는 심판'이 나타나지 않는 한, 민주주의는 허울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민주주의의 부작용은 더 많은 민주주의로 극복되어야 한다고 했더니, 그는 도리어 정치인들의 말장난에 속아 넘어가서는 곤란하다고 맞섰다. 적어도 우리에겐 '철인 정치'가 부합한다는 것이다.

그는 칼이 요리사에겐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도구이지만, 아이들이 손에 쥐면 흉기가 된다는 비유를 들기도 했다. 민주주의라는 칼을 들기에는 우리 국민의 의식 수준이 미숙하다는 거다. 민주주의의 탈을 쓴 독단과 독선만 난무해, 총만 안 들었을 뿐 실상 내전 상태라고 규정했다.

명색이 지성인이라는 대학생끼리도 토론하는 게 불가능하다며 혀를 내둘렀다. 정치와 사회 문제는 유튜브를 통해서 보고 들을 뿐, 친구들 사이의 모임에서는 종교와 더불어 금기시돼있다고 말했다. '대깨문'과 '수꼴' 사이에 대화의 접점은 오로지 연예인 가십거리뿐이라는 거다.

심지어 세계적인 찬사를 받는 'K-방역'에 대한 평가조차 극과 극이라고 말했다. 숫자로만 보면 호평이 대다수지만, 민주주의가 미성숙한 효과라거나 민주주의를 희생해 얻은 결과물이라는 주장도 적지 않다며 학내 분위기를 전했다. 중국과 유럽의 극명한 차이를 근거로 들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상황은 이미 대학생들에게도 팽배해있다고 말했다. 코로나로 비대면 수업이 보편화하면서 더욱 강화된 측면이 있는 듯하다. 대학 강의는 학점 취득을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하고, 배움이 유튜브 알고리즘에 종속되는 현실은 막을 수 없다며 비관적 전망을 내놓았다.

그의 굽힘 없는 결론은, 도덕성에 흠결이 없고 비전을 갖춘 강력한 권력자가 국가를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결실을 기다리느니, 차라리 '권위 있는 심판'이 나타나기를 바라는 편이 더 빠를 거라고 말했다. 민주주의는 그저 이상적인 정치 체제일 뿐이라고 명토박았다.

'일베' 욕하던 아이들이 '일베'를 닮아가고 있다?
 
 페미니즘
 페미니즘
ⓒ 언스플래쉬

관련사진보기



한편, 얼마 전에는 페미니즘의 '페'자만 들어도 치가 떨린다는 제자들이 찾아왔다. 그는 페미니스트를 자임하는 또래들을 '겉멋이 든' 여대생이라고 비아냥거렸다. 페미니즘이 뭐냐고 물으면 제대로 답변도 못 하면서, 티셔츠와 가방에 페미니스트라며 써 붙이고 다닌다고 키득거렸다.

그들은 주변 친구 중 페미니즘을 지지하거나 호의적인 이들을 거의 보질 못했다면서, 서슴없이 학내에서 분란만 일으키는 존재라고 깎아내렸다. 어쩌다 페미니스트 친구들을 만나면 껄끄럽다면서 부러 말을 섞지 않는다고 했다. 그들 앞에서 말실수라도 했다간 죽는다고도 했다.

이는 엄살을 넘어 온갖 편견으로 가득 찬 저주에 가까웠다. 그들 중에는 대놓고 말 꺼내진 못하지만 '가짜' 페미니스트도 있을 거라고 말했다. 요즘 대학과 사회의 분위기에 따라 '정치적 올바름'을 선택한 것일 뿐, 속마음은 딴 판인 이들이 적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농담 삼아 건넨 말일 테지만, 여자 친구를 사귀기에 앞서 '사상 검증'을 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성 친구도 애초 페미니스트끼리 만나야 평화롭지, 모르고 사귀었다간 낭패를 보기 십상이라는 거다. 그들의 '비위'를 맞추는 건 보통 사람들에겐 차라리 '고문'이라며 날을 세웠다.

자칭 페미니스트마다 공통적인 태도가 있단다. 기존의 관행을 깡그리 무시하고 자신들의 의사를 당장 관철하겠다며 몽니를 부린다는 것. 또, 아무 때나 희한한 논리를 들이밀며 상대방의 말에 꼬투리를 잡아 무안하게 만들고 사과를 요구하며 고집을 피운다는 것.

그들이 직접 경험한 바를 무질러버릴 수 없어 잠자코 듣고만 있었지만, 애초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 유전자를 지니고 태어났나 싶은 엉뚱한 생각마저 들었다. 초중고 내내 양성성을 그토록 강조해왔고 시험에도 줄곧 출제된 내용이지만, 결국 하나 마나 한 교육이었던 셈이다.

학창 시절 멀쩡했던 아이들이 민주주의를 조롱하고 페미니즘을 극단적으로 혐오하게 된 이유가 솔직히 궁금하다. 그들 중에는 과거 토론 수업 때 상반된 주장이라도 포용하고 합의를 위해 기다릴 줄 아는 게 민주주의의 본령이라고 강조했던 아이도 있다. 그는 과연 변절한 걸까.

억측일지언정 과거 '일베'라면 고개를 혀를 끌끌 차던 아이들이 대학생이 된 뒤 시나브로 '일베'를 닮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정치적인 성향이 진보에 가깝다고 했지만, 그들의 거친 말들에서는 진보는커녕 섬뜩한 극우의 냄새가 진동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다는 말로 책임을 모면할 수 있을까. 학교 교육이 신뢰를 잃고 급격하게 형해화하고 있는 현실에서, 교사로서 자기 효능감을 회복할 길이 막막하기만 하다. 졸업한 제자들과의 만남이 반갑기는커녕 불편하고 괴로운 이유다.

댓글2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