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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은 나를 서서히 습격했다. 언제부터인가 모든 일이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외출하고 들어오면 씻고 옷을 갈아입는 것도, 책을 읽는 것도, 카톡에 답장하는 것도, 사람을 만나는 것도 순서가 헷갈리고 그럴수록 스텝이 엉켰다. 생기를 잃어버린 몸은 축 처진 채 아무 데나 널브러졌다.

내가 왜 아픈지는 내가 알았다
 
 우울감은 몇주째 지속됐다
 우울감은 몇주째 지속됐다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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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한 우울감은 몇 주째 지속됐다. 그 여파로 저녁이면 잠을 못 잤다. 이리 뒤척이고 저리 뒤척인 지 한 시간은 지났을까. 여전히 잠들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뜨거운 한숨이 쏟아지듯 새어 나왔다. 그다음은 알 수 없는 설움이 복받쳤다. 익숙한 반복이었다. 어두컴컴하고 조용한 허공을 바라보고 있으니 온갖 감정이 나를 휩쓸고 지나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자세는 좀 더 그로테스크해졌다. 자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어서 의식이 없는 세계로 걸어 들어갔으면. 눈을 감았다 뜨면 아침이었으면. 제발 잠들었으면. 이불을 돌돌 말아 안았다. 눈은 바짝 말라 삐걱거렸다. 어느새 밖은 환해지고 있었다.

자기 위해서 뭐든 시도해봤다. 낮에 가벼운 산책을 하는 것부터 고강도의 운동을 해보는 것까지. 그것도 소용없자 술을 마셔보기도 하고, 명상하기도 하고, 수면유도제까지 먹어봤다. 아무것도 소용없었다. 우울감이 내뿜는 강력한 효력 앞에선 무릎을 꿇어야만 했다.

가족들은 밤에 자지 않고 낮에 자는 내게 쉽게 게으르다고 비난했다. 아무리 낮에 잔다 한들 총 수면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던 나는 해명할 기운이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도록 내버려 두지 뭐. 억울하다고 에너지를 쓰는 것조차 사치였다. 그렇게 유령처럼 24시간 각성상태로 살아간 지 한 달이 다 되어갔다. 그쯤 되자 몸이 강력한 신호를 보내왔는데, 사라지지 않는 두통이 시작됐다.

진통제를 비타민처럼 섭취해도 두통은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새벽이면 고통이 더 심해졌다. 엎드렸다가 누웠다가 내 방을 서성이며 어쩔 줄 몰랐다. 웅웅거리는 울림과 욱신욱신한 느낌. 눈알까지 빠져나올 것만 같았다. 가족들은 구를 듯 아파하는 나를 보며 당장에라도 큰 병원에 가야 한다고 성화였다. 신경외과에 가서 뇌 CT라도 찍어 보자면서.

하지만 난 직감했다. 내가 왜 아픈지를. 그전에도 신호는 무수히 많이 있었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심장이 쿵 하고 떨어져 내려앉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던 감각, 저녁만 되면 무섭고 외롭고 우울하던 나날, 내일이 오는 것이 지긋지긋하고 희망 없던 순간순간, 왜 살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찾으며 괴로워하던 장면, 불면의 나날. 사라지지 않는 두통을 느끼며 깨달았다. 미루고 미루던 신경정신과를 이제는 가야 할 때라고.

신경정신과를 가다

아무도 모르게 가야 했다. 부모님은 받아들일 수 없을 게 뻔했다. 오히려 마음의 병을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고 '정신력으로 이겨내야지' 쯤으로 충고할까 봐 겁이 났다. 아니면 이 백수 생활이 마음의 병을 키웠다고 생각하고 당장에라도 일을 하라고 재촉할까 봐 두려웠다.

어떻게 해도 부모님으로부터 이해받을 수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조용히 내 선에서 끝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막상 병원에 가는 날이 되자 긴장이 됐다. 인터넷에서 흔히 떠도는 이야기로 마음을 달랬다. '마음이 감기에 걸려서 병원에 간다고 생각하자.' 그래도 진정이 쉽게 되지 않았다. 아는데, 남들이 신경정신과에 간다고 하면 편견 없이 잘 갔다 오라고 이야기해 줄 수 있는데 왜인지 내 일이 되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병원에 간다는 것이 확실해지자 나 스스로가 구제할 수 없을 만큼 망가져 버린 기분이 들었다. 행여 누가 알면 나를 이상한 사람이라고 오해하진 않을까, 사회 생활하는데 불이익을 당하면 어쩌지, 그냥 집으로 갈까.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그저 내 일이 돼서 겁이 났다기엔 글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국 내 안엔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그럴싸한 모습으로 포장됐던 안 그런 '척'은 내가 겪어내야 하는 생생한 일이 되자마자, 본 모습을 드러내 나를 겨냥하는 데 쓰였다. '네가 신경정신과를 간다고? 왜?' 그 물음에 명확한 답을 할 수 없어 불안했다. 그때 어쩌면 병원에 처음 가면 누구나 혼란스러울 수 있다고 다정히 말해 줄 사람이 필요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병원은 여느 병원과 다름없이 평범했다. 진료를 받으러 온 사람들은 저마다 핸드폰을 붙잡고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마른침을 삼켰다. 날카로운 두통이 관자놀이를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내가 이 자리에 있어야 하는 이유를 떠올렸다. 여기서 물러서면 원점이었다. 다시 그 지옥 같은 밤으로 걸어 들어갈 순 없었다.

조금 기다리자 내 이름이 불렸다. 그다음은 순식간이었다. 선생님 앞에 앉아, 내 '증상'을 얘기했다. 선생은 얼마간 인상을 찌푸리며 "심한데" 한 마디를 내뱉고는 나를 바라봤다. 나도 마주 봤다. 동공이 흔들렸다. 몇 가지 질문이 더 오갔다.

"집에 있으면 왜 스트레스받아요?"
"아버지가 심한 우울증을 앓고 계세요. 그러면서 동시에 가족들한테 폭력적이시고요."


선생님은 주의 깊게 들었다. 내가 '가족'에게 심리적으로 굉장히 지쳐있는 상태임을 파악해나갔다.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내 모습은 어떤가. 주도권을 송두리째 빼앗긴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존재. 나의 우울은 언제, 어디서부터 몸집을 키워왔을까. 그 시작을 정확히 알 순 없지만 대충 가족 언저리부터인 것은 분명해 보였다.

선생님은 높은 확률로 우울증을 예상했다. 그날은 소량의 항우울제를 처방받았다. MMPI(다면적 인성검사)라는 500문항에 달하는 심리 검사도 받았다. 병원 한편에 앉아 검사지의 '예'와 '아니오'를 체크하는 동안 내가 몰랐던 세계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문으로 통하는 세상은 절대 열면 안 되는 줄 알았는데, 막상 열어 봤더니 별 탈 없어서 놀란 느낌이었달까. 신경정신과 진료에 거부감이 없던 몇몇 지인들은 내게 오래전부터 어서 병원에 가보라고 진심 어린 충고를 하곤 했다. 약을 먹고 너무 편안해졌다고, 내 의지만으로 안되는 것도 있으니 가보라고 내 손을 꼭 잡고 얘기했다. 그때마다 나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일 뿐. '내가 아직 갈 곳은 아니지'라는 생각에 미루고 미뤘다.

아빠의 영향도 컸다. 아빠는 우울증약을 마음대로 복용했다 끊기를 반복했는데, 그 이유는 약에 의지해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머릿속으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말들은 묘하고도 강력해서 마음 한쪽에 남곤 했다. 병원에 가지 말자. 그리곤 이렇게 결정적인 순간에 강력한 효과를 발휘했다.

세상은 무너지지 않았다
 
 항우울제를 처방받았다.
 항우울제를 처방받았다.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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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곧 무서워했던 신경정신과 진료를 다녀왔다. 내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피부로 느껴보는 것은 중요했다. 아무도 나를 이상하게 보지 않고, 내 일상은 똑같이 굴러간다는 것. 그것을 알아야 계속해서 성실하게 병원에 갈 수 있고, 병원에 가는 것부터 치료는 시작되니까.

며칠 전에 만난 지인은 내게 몇 주째 잠을 못 자고 있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얼굴이 많이 상해 있었다. 눈 주위가 푹 꺼지고 한눈에 봐도 피곤해 보였다. "잠을 못 자요? 언제부터요? 병원에 한 번 가봐요." 나는 그녀에게 적극적으로 병원에 가보라고 설득했다. 그녀는 퀭한 눈으로 뜨뜻미지근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말하는 나는 병원에 다닌 지 어느새 5개월이 지났다. 꾸준히 약을 먹으니 잠도 잘 자게 되었고, 많은 것들이 안정기에 접어 들었다. 이제는 정말 '감기 걸려서 병원에 가듯이'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변했다. 내가 먼저 힘든 사람들에게 병원에 가보라고 얘기할 수 있을 만큼.

하지만 많은 사람에게 여전히 신경정신과의 문턱은 너무 높다. 과거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겨우 이 정도로 내가?'는 역설적으로 정신과의 이미지를 여실하게 드러내 준다. 그때의 나는 좀 더 드라마틱하게 괴롭고, 기괴하고, 한마디로 미쳐야 갈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나처럼 평범한 우리가 잠을 못 자고, 일상을 살아갈 수 없을 만큼 무기력하고, 우울할 때 찾을 수 있는 곳이 신경정신과이고, 그 사실만으로 위로받을 수 있다.

매번 갈 때마다 느낀다.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가면 문 밖의 세상과 부지런히 연결되려는 사람들의 차분한 열기를. 본인들도 뿜고 있는지 모르는 그 조용한 열기가 소란스럽다. 그 군중 속에 섞이며 생각한다. 이곳은 참 안전하다고.

(관련 기사 : 코로나가 만든 '불안의 세계', 백수는 여기에 갇혔다 http://omn.kr/1oz3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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