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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가운데)와 박준 시인(왼쪽), 이광호 한국출판인회의 부회장이 6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국출판인회의 강당에서 도서정가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한강 작가(가운데)와 박준 시인(왼쪽), 이광호 한국출판인회의 부회장이 6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국출판인회의 강당에서 도서정가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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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한강과 시인 박준이 한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주제는 문학이 아닌 최근 출판계를 뜨겁게 달군 '도서정가제'였다. 6일 오후 3시, 장소는 서울시 마포구 한국출판인회의 강당. 한국출판인회의와 한국작가회의가 함께 마련한 자리였다. 작가 1100여 명이 응답한 도서정가제 여론조사 결과도 발표했지만, 아무래도 관심은 한강과 박준 두 작가의 입에 모아졌다.

2016년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는 "오랜만에 (밖에) 나왔는데, (도서정가제 문제가) 중요한 일이라서 꼭 참석하고 싶었다"고 소감을 밝혔고, 현재 CBS 라디오에서 <시작하는 밤 박준입니다> DJ로도 활동하는 박준 시인은 "이 자리에 나오려고 몇 개월만에 이발을 했다"며 말문을 열었다.
  
'흔히 도서정가제라고 하면 서점과 출판사만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작가로서 도서정가제 문제를 어떻게 보는지' 토론 사회를 맡은 이광호 출판인회의 부회장(문학과지성사 대표)이 두 작가에게 물었다. 한강 작가가 먼저 대답했다.

한강 "도서정가제 개악되면 작은 사람들이 최대 피해자"
박준 "작가 이전에 독자로서 도서정가제 수혜를 입었다"

 
한강 작가가 6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국출판인회의 강당에서 도서정가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한강 작가가 6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국출판인회의 강당에서 도서정가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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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이기에 앞서 독자로서 도서정가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다. 자본의 입장에서는 독서시장이 많은 구매자(독자)가 존재하고, 많은 이윤을 창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싶다. 이 (도서정가제) 생태계가 무너져야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할 수 있고, 그 첫 걸음이 (도서정가제 폐지가) 아닐까 싶다.

도서정가제가 개악될 경우 많은 사람들이 많은 것을 잃게 될 텐데, 주로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작은 사람들일 것이다. 출발선에 선 창작자들, 작은 플랫폼을 가진 사람들, 자본과 상업성을 넘어 고민을 모색하는 사람들과 그것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이다. 도서정가제가 사라진다면 태어날 수 있었던 수많은 책들의 죽음을 겪게 될 것이다. (미래) 독자가 될 어린 세대들에게까지 큰 영향을 미친다."

"한강 작가님 말씀처럼 작가는 쓰는 시간보다 읽는 시간이 길다. 작가로서도, 독자로서도 도서정가제(의 중요성을) 체감하고 있다"면서 박준 시인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신생 출판사, 1인 출판사가 늘어났다. 그들은 기존과는 다른 논리로 책을 발굴해 출판 다양성에 크게 기여를 했고, 우리는 독자로서 수혜를 받았다. 전국 곳곳에 생겨난 독립 서점들은 대형·인터넷 서점과는 다르게 큐레이션을 하며 문화콘텐츠를 만들어낸다. 그런 가치 때문에 나는 독자로서 독립서점을 찾아간다.

작가로서 도서정가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까닭은 (인세 문화다). 신인 작가와 원로 작가의 인세가 동일하다. 이건 신인 작가의 노력을 문화적 가치로 인정하는 출판문화의 미덕이다. 책을 정가로 판매하기 때문에 (유지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도서정가제가 폐지된다면, 숫자는 숫자대로, 문화는 문화대로 거리가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박준 "동네서점은 독자와 가장 가까운 공간"
한강 "동네서점이 사람들의 삶을 바꿔놓는다"

 
박준 시인이 6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국출판인회의 강당에서 도서정가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준 시인이 6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국출판인회의 강당에서 도서정가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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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자가 "도서정가제 시행 이전에는 재고 할인 문제도 심각했고, 신인작가 발굴도 어려웠다"면서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에 동네서점과 독립서점이 늘었고, 특히 (도서지역 특성상) 온라인 서점에 밀리지 않는 제주에서는 크게 늘었다"고 자연스럽게 다음 주제를 꺼냈다. 이번에는 박준 시인이 먼저 마이크를 잡았다.

"간혹 동네서점에 가서 지역 독자들을 만난다. 어느 행사에선 어머니가 앞 줄에 앉았고, 뒤늦게 온 딸이 뒤에 앉았다. 서로 약속하고 오지 않았기 때문에 모임이 끝난 뒤에야 참석 사실을 알았다. 획일화된 (온라인 서점의) 베스트셀러 목록과는 달리 동네서점에서는 책을 만지고 펼쳐보면서 구입 여부를 판단한다. 동네서점은 독자와 가장 가까이 손 잡는 공간이다."

한강 작가는 "자기가 사는 집에서 버스정류장 7, 8 정거장 안에 서점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큰 (문화 혜택의) 차이가 있다"면서 "동네서점이 사람들의 삶을 바꿔놓는다"고 말했다.

"동네서점은 큰 플랫폼과는 다르다. 큰 서점은 (돈을 지불하는) 대가가 있어야 좋은 자리에 책을 진열할 수 있다. 반면, 동네서점은 작은 출판사의 책이나 베스트셀러가 아니더라도 (서점 주인의 취향과 선택으로) 책을 진열하고 독자들이 그 책을 만날 수 있다. 동네서점에 맞는 책의 다양성이 지켜진다. (독자들이) 책방의 문화행사를 찾아가게 되면 생활의 패턴이 달라지고, 읽는 책도 늘어난다. 결국 삶의 패턴도 달라진다. 이를 경험한 분들은 공감할 것이다."

이어 사회자가 '문화체육관광부나 청와대 등 정책 담당자에게 도서정가제와 관련해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냐'고 물었다. 박준 시인이 "문체부나 청와대 관계자에게 하는 얘기가 아니라 내 스스로에게 묻는 이야기"라며 말을 이어갔다.

"왜 출판문화 산업은 보호돼야 하는가? 출판과 문화를 숲이라고 생각한다면, 숲에서는 끊임없는 선의의 경쟁이 벌어지면서 생태계가 유지된다. (숲 안에서는) 적자생존, 약육강식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최상의 포식자와 초식 동물, 약한 동물들이 공존한다. 그런데 숲을 없애고, 경쟁만 부추긴다면... 전혀 작동 방식이 다르게 된다. (숲과 도시의) 경계를 지켜주는 게 도서정가제라고 생각한다."

한강 작가는 "많은 서점들이 도산했던 도서정가제가 없었던 시절, 인터넷서점에 들어가보면 (구간들을) 20, 30%, 심지어 70%까지 할인을 했다"면서 "그날 할인 폭이 컸던 책이 갑자기 베스트셀러 상위에 올라가는 식으로 (출판) 생태계가 붕괴됐다"고 지적했다.

"(도서정가제 이전에는) 출판사는 신간을 내는 게 부담되고, 독자들은 구간이 되면 싸게 살텐데라고 생각하고, 다들 몸을 사리다보니까 신인 작가나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출판인들이 설 땅이 점점 더 좁아졌다. 그러한 붕괴를 막고 출판문화를 지켜내려고 만들어진 게 도서정가제다.

도서정가제가 만들어지니까, 숲에 저절로 나무가 자라듯이 독립서점도 늘어났고, 작가들도 활발하게 글을 쓰게 됐다. 자발적으로. 지금의 정부는 시민의 자발성에 빚을 지고 있다. 성찰 능력, 판단력, 자발성이 우리를 끌고가는 센 힘이다. (작은 사람들은) 힘들어서 간신히 버티고 있는 상황이다. (도서정가제는 이들에게) 아주 중요하다."

김학원 회장 "문재인 대통령, '도서정가제 강화' 공약 지켜달라"
 
김학원 한국출판인회의 회장이 6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국출판인회의 강당에서 도서정가제 작가 여론조사 결과와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학원 한국출판인회의 회장이 6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국출판인회의 강당에서 도서정가제 작가 여론조사 결과와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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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자가 두 작가에게 마지막으로 못다한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말해달라고 주문했다.

박준 시인은 "작가 입장에서는 기존 (도서정가제) 정책을 뒤엎고 폐지하는데 신경을 쓰지 말고, 작가나 독자에게 도움이 되는 새로운 정책을 폈으면 좋겠다"면서 "공공도서관에 내 책이 들어가면 작가들은 좋아한다. 다만, 한 권의 책이 수백 명의 독자들에게 읽혔을 때 정부는 작가에게 무엇을 해주고 있나... 결국 문체부에 하는 얘기가 됐다"면서 웃었다.
   
한강 작가는 "지금의 도서정가제가 완전한 게 아니라는 걸 (도서)정책 입안자가 생각해봤으면 좋겠다"면서 "완전한 도서정가제가 정착될 수 있도록, 승자 독식이 아니라 작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정책이 펼쳐졌으면 좋겠다"고 작은 동네서점과 작은 출판사, 신인 작가 등 '작은 사람들'에 대한 배려를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앞서 김학원 한국출판인회의 회장(휴머니스트 출판그룹 대표)은 모두 발언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밝혔던, "도서정가제를 강화하겠다"는 대선 공약을 지켜달라고 호소했다.

"동네 책방은 동네의 삶과 이야기가 숨 쉬는 지역 문화의 거점으로 거듭날 수 있는 의미가 큰 공간이다. 프랑스 모점 서점 인증제도와 같이 지역서점 인증제를 도입하겠다. 그리고 우수 서점에 대해 세제 혜택을 부여하거나, 서점과 작가의 연계를 지원하는 플랫폼 구축 등 지역 서점을 지원하기 위한 대책도 검토하겠다. 그리고 현행 도서정가제를 강화해 실효성을 지닐 수 있도록 정책을 보완하겠다." (<독서신문>, 2017년 5월 2일)

이날 행사 말미에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인 신현수 시인은 "돈을 내고 (시집을 사서) 시를 보는 사람이 몇 분이나 있냐"면서 "도서정가제 상황을 보면서 여러가지로 속이 상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그는 "도서정가제 유지에 반대하는 작가들조차 이렇게 화가 난 분들이 아닐까 싶다"면서 "한 달에 1만원인 작가회의 회비를 받기조차 미안한 분들이 많다"고 말문을 흐렸다.
  
김학원 한국출판인회의 회장(가운데)과 신현수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왼쪽), 홍영완 한국출판인회의 정책위원장이 6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국출판인회의 강당에서 도서정가제 작가 여론조사 결과와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학원 한국출판인회의 회장(가운데)과 신현수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왼쪽), 홍영완 한국출판인회의 정책위원장이 6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국출판인회의 강당에서 도서정가제 작가 여론조사 결과와 입장을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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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도서정가제, #한국작가회의, #한강 작가, #박준 시인, #한국출판인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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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한 기사에 관심이 많습니다. 사람보다 더 흥미진진한 탐구 대상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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