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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경상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이효재 선생 빈소.
 창원경상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이효재 선생 빈소.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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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5일 저녁 창원경상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고 이효재 선생 추모식에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 김상희 국회 부의장을 비롯해 추모객들이 참석해 묵념을 하고 있다.
 10월 5일 저녁 창원경상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고 이효재 선생 추모식에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 김상희 국회 부의장을 비롯해 추모객들이 참석해 묵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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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성의 삶을 억압하고 차별하며 왜곡시키는 것은 한국의 가족구조와 분단구조에 있다. 분단을 극복하고, 평화와 통일을 이룩하는 것은 성평등사회로 나가기 위해서 중요하다."

고 이효재(이이효재) 선생이 2015년 1월 후배 활동가를 만난 자리에서 한 말이다. 5일 저녁 경남 창원시 창원경상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사회학·여성학의 큰 학자이며 여성운동가였던 고 이이효재 선생 추모식' 참석자들은 고인의 기억을 다짐했다.

이날 추모식은 '고 이이효재 여성장(葬) 공동장례추진위원회'가 마련했고, 코로나19 때문에 온라인으로 진행되었다.

추모식은 묵념에 이어 추모영상 상영과 약력소개, 추모발언 등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사회를 맡은 김금옥 전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는 "선생님의 삶을 함께 배우며 따라 가고자 한다"고 했다.

김 전 상임대표는 "선생님은 너무나 많은 일을 하셨다. 우리가 잘 몰랐는데 협동조합운동의 기틀도 다지셨다고 누군가 말씀을 해주시더라"며 "우리 사회를 밝고 행복한 세상으로 바꾸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고 실천을 하셨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로리주희 한국여성사회교육원 대표는 약력 소개를 하면서 "어제 선생님의 이마에 손을 대보니 편안한 모습이셨다"며 "진해로 오신 뒤 후배들이 찾아가면 더 열심히 하라고 야단을 치셨다"고 했다.

추모 발언이 이어졌다. 공동장례위원장인 지은희 전 여성가족부 장관은 "선생님은 우리 모두의 스승이셨다. 선생님께서 마지막 순간까지 염원했던 '남북평화'가 중단 상태에 있는 것을 가장 안타깝다고 하셨다. 저희들이 많은 숙제를 갖게 되었다"고 했다.

지 전 장관은 "당신께서는 전 재산을 여성운동에 내어주시고, 고향으로 돌아와서도 쉬지 않고 풀뿌리 여성운동, 어린이운동에 헌신하셨다"며 "그동안 정치권에서 얼마나 많은 제안이 있었는지 모른다. 한번도 원칙을 어기지 않고 지키며 살아오셨다"고 했다.

이어 "후배나 제자들이 찾아가도 항상 평화통일운동을 말씀하셨다. 편찮으시다고 해서 찾아뵈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노래하셨다. 그래서 이 분이 편찮으신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며 "저희들에게 많은 숙제를 주셨다. 이제는 여기 있는 우리 모두를 믿으시고 평안히 쉬셨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김상희 국회 부의장은 "선생님과 한 세대를 같이 있었다는 게 행운이었다. 훌륭한 여성 지도자를 가질 수 있었다는 게 이 시대의 행운이라는 생각을 늘 한다"며 "40~50년 가까이 선생님을 존경하면서, 선생님을 보고 위안을 얻으면서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김 부의장은 "선생님의 관심사는 깊고 광범위했다. 그 가운데 대한민국 분단의 역사에 대해 누구보다 가슴 아파하셨다. 분단을 극복하지 않고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하신 말씀을 기억한다"고 했다.
  
 창원경상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이효재 선생 빈소.
 창원경상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이효재 선생 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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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5일 저녁 창원경상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고 이효재 선생 추모식에서 지은희 전 여성가족부 장관이 추모사를 하고 있다.
 10월 5일 저녁 창원경상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고 이효재 선생 추모식에서 지은희 전 여성가족부 장관이 추모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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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은 "선생님께서는 여성운동정책의 기둥을 세우셨고, 그 위에 여성가족부 집을 세웠다. 많은 여성 문제를 때로는 조용하게, 때로는 함께 가는 연대로 만들어 내셨다"고 했다.

이 장관은 "생전에는 많은 포상을 사양했지만, 민주 정부가 이번에 국민훈장 모란장을 추서하셨다"며 "생전에 남북 여성교류, 지역 밀착과 생활에 뿌리내리는 여성운동은 저희들이 본받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미경 한국국제협력재단(코이카) 이사장은 "선생님은 우리의 영원한 스승이시다. 지금도 만나신다면 코로나19 이후 기후위기라든지, 한반도 평화를 어떻게 되어 가느냐고 말씀하시면 온갖 관심사를 풀어내실 것 같다"며 "선생님은 언제나 새로운 세상을 꿈꾸셨다"고 했다.

이 이사장은 "선생님은 여성의 차별이 한반도 분단과 연결되어 있다고 말씀하셨다. 선생님은 늘 행동을 요구하셨다"며 "행동하지 않는 지식은 가짜라는 것을 당당하게 외치셨다"고 했다.

이효재 선생은 후배와 제자들한테 '손편지'를 자주 썼다고 한다. 김금옥 전 상임대표는 "연로하셔서 잘 들리지 않으니까 하고 싶은 말씀을 편지로 써서 보내셨다"며 "그렇게 후배, 제자들과 소통하셨다"고 했다.

그는 "2012년 대통령선거 때 패배한 뒤 혼난 분들이 많을 것이다. 며칠 동안 음식을 드시지 않으셨다고 한다"며 "여성 정치인들이 당선이 되면 정말 기뻐하셨다"고 했다.

남인순 국회의원은 "평생을 한점의 부끄러움이 없이 살아오셨던 분이다"며 "늘 현장이 중요하고 정치를 바꾸라고 말씀하셨다. 선생님께서 꿈꾸셨던 것 가운데 아직 이루지 못한 '여성의 힘으로 평화통일'이 있다"고 했다.

진선미 국회의원은 "호주제 폐지가 국회에서 통과되고 난 뒤 축하 자리에서 뵈었던 기억이 난다"며 "선생님께서 꿈꾸셨던 세상을 위해 조금 더 나아갈 수 있도록 하겠다. 선생님과 인연이 있었다는 것에 감사드린다"고 했다.

제주에서 온 여성학자 오한숙희씨는 "장례식장에 여자들이 가득 찬 것도 드물 것이다. 박영숙 선생께서 해주신 말씀이 생각난다. YWCA를 만들어 이효재 선생님이 이사로 참여하셨는데, 다른 이사들 보고 다음 이사회 회의 때까지 끼고 있는 다이아몬드 반지를 팔아서 가난한 여성들을 돕지 않으면 이사를 사퇴하겠다고 했다더라"고 기억했다.

이어 "그런데 다음 이사회 때 다른 이사들이 다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고 오셨다는 것이다. 박영숙 선생께서 처음에서는 선생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게 기선제압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는데, 정말로 이사를 그만 두시더라고 하셨다"고 덧붙였다.

또 그는 "방송사 피디가 이효재 선생님을 '인물 다큐멘터리'로 만들고 싶다고 다리를 놓아 달라고 해서 연락했더니, 선생님께서는 '안된다'고 하셨다. 살아 있는 사람은 다 미화하고 사실이 아닌 것도 담게 된다며 단호히 거부하셨다"고 했다.

오한숙희씨는 "후배와 제자들이 다들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꽃편지를 받아봤을 것이다. 거기에는 인사뿐만 아니라 적절한 숙제가 담겨 있었다. 지금 우리한테는 '유언장' 같은 것이다"며 "육신은 떠났지만 지켜보고 계실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선생님의 정신을 본받는다면 이효재는 죽지 않고 살아 있을 것이다"며 "꽃편지를 다 모아 전시회를 했으면 좋겟다. '이효재재단'을 만들어서 선생님의 뜻이 영원히 기억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한명숙 전 총리는 "지금까지 촉을 잃지 않으시고 나라 사랑이 깊은 분이다. 당신이 가지신 것을 쌓아놓지 않고 다 내어주신 분, 생애 끝까지 순수함을 잃지 않고 언제나 좋은 방향을 향해 변화하고 진보하신 분, 언제나 약자의 편에 서서 여성운동의 이론을 제공하시고 몸소 운동의 한 복판에서 인권과 남북평화를 위해 몸소 실천하신 분, 그래서 후배들이 담보 싶은 분으로 기억한다"라는 글을 보내오기도 했다.

또 강인순 경남대 명예교수와 이경희 일본군위안부할머니와 함께하는 마산창원진해시민모임 대표 등이 추모발언을 했다. 마지막에 참가자들은 고인이 자주 불렀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함께 불렀다.
  
 10월 5일 저녁 창원경상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고 이효재 선생 추모식에서 남인순, 진선미 국회의원이 추모사를 하고 있다.
 10월 5일 저녁 창원경상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고 이효재 선생 추모식에서 남인순, 진선미 국회의원이 추모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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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효재 선생은 마산에서 태어나 이화여대와 서울여대 교수를 지냈다. 한국사회학회장과 한국가족학회 초대회장을 지냈으며, 1980~1984년 사이 광주민주항쟁에 연루되어 교수 해직되었다가 복직했고, 1990년 정년퇴직했다.

고인은 여성한국사회연구회 초대회장(1983년), 한국여성민우회 초대회장(1987년), 한국여성노동자회 이사장(198년), 한국여성단체연합 회장(1990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공동대표(1991년)를 지냈다.

이효재 선생은 1996년 국민훈장 석류장을 거부했고, 1997년 창원진해로 옮겨 살았다. 진해에 살면서 고인은 진해YWCA 이사, 창원여성의전화 고문, 진해여성정책발전위원, 진해여성의전화 고문, 진해기적의도서관 운영위원장을 지냈다.

빈소에는 문재인 대통령, 정세균 국무총리, 박병석 국회의장, 김경수 경남지사, 원희룡 제주지사 등이 보낸 조화와 조기 등이 놓여 있었다.

정부는 이날 고인에 '국민훈장 모란장'을 추서했고, 이정옥 장관이 빈소를 찾아 유족에 전달했다.

이효재 선생은 6일 오전 8시 30분 발인예배에 이어 이날 오후 경기도 이천에 있는 에덴낙원에 묻힌다.
 
 창원경상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이효재 선생 빈소.
 창원경상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이효재 선생 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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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경상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이효재 선생 빈소에 문재인 대통령과 정세균 국무총리 등이 보낸 조화가 놓여 있다.
 창원경상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이효재 선생 빈소에 문재인 대통령과 정세균 국무총리 등이 보낸 조화가 놓여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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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경상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이효재 선생 빈소.
 창원경상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이효재 선생 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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