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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늘을 보았나요?'

이런 질문이 어울리는 계절이다. 여름이라는 계절이 무색하게 끊임없이 내리던 비, 그리고 반짝하고 지나간 늦더위가 지나고 나니 '하늘'이 왔다. 늦은 밤 라디오에서 나오던 멘트처럼 파란 색도 아니고 굳이 '하늘 색'이라고 지칭되는 그 '하늘 색'에 가장 걸맞은 하늘이 지금 우리 곁에 있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저절로 감탄이 나오는 계절, 그래서 오늘 하늘을 보셨는가? 
 
첫 번 째 질문
 첫 번 째 질문
ⓒ 천 개의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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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시절, 아이들과 만나던 수업을 잃었다. 어언 20여 년이 되어가던 일이었고 종합반 학원에서 논술까지 해주시니 점점 수업도 줄어드는 상황이었지만 막상 오래 해오던 일이 딱 끊기니 이른바 '멘붕'이 왔다. 마음이 요동쳤다. 불안함이 나를 먹어갔고 가슴이 답답해 숨쉬기가 힘들었다. 청심환으로 부터 시작된 갖가지 약으로만 더는 버틸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 도달했다.

그때 걷기 시작했다. 그저 집의 천장이 나를 짓누르는 것 같아 견딜 수 없어 집 밖으로 뛰쳐나간 게 시작이었다. 시간을 내서 운동을 하거나 걷는 것이 시간이 아깝다 하며 살아왔었다. 하지만 이젠 그 아깝던 시간이 넘쳐났다.

산성으로부터 흘러내리는 개천을 따라 난 산책로를 하염없이 걸었다. 그렇게 한참 걷다보니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세상사의 혹독함이 무색하게 한참 싹을 틔우기 시작한 나무들도, 무심히 흐르는 물도. 그리고 숨이 쉬어졌다.

힐러리 제이콥스 헨델의 <오늘 아침은 우울하지 않았습니다>에서는 우울증으로부터 벗어나는 응급 처방이 있다. 우선 자기 주변을 '보는' 것이다. 눈에 들어오는 3가지 색깔, 그리고 3가지 냄새, 3가지 소리에 눈과 귀와 마음을 여는 것이다.

왜?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의 말이 우문현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아들러는 우울증이 나에 대한 관심이 너무 많아서 생기는 것이라며 1주일 동안 다른 사람에 대해 생각을 해보라는 처방을 내렸다고 한다.

생각은 생각을 낳고, 또 그 생각이 생각을 낳고, 그러다 보면 내가 만든 생각의 구덩이에 갇혀 버리게 된다. 그렇게 내가 만든 구덩이에서 자꾸만 빠져 들어가려는 마음에 그림책 <첫 번 째 질문>은 손을 내민다.

"오늘 하늘을 보았나요?" 하며 서두를 연 <첫 번 째 질문>은 일본의 시인 오소다 히로시가 쓴 시이다. 일본 교과서에도 실렸다고 한다. 그 시에 이세 히데코가 시만큼 여운을 남기는 그림을 더한다.

하늘을 보았냐고 말문을 연 <첫 번 째 질문>은 이어서 구름은 어떤 모양이었냐고, 바람은 어떤 냄새였냐고 묻는다. 하늘이랑 구름까지는 어찌어찌 눈에 넣을 수 있었지만, 바람에 와서는 말문이 막힌다. 바람의 냄새를 맡으려면 얼마나 내 자신을 열어야 하는 걸까?

질문은 이어진다. 좋은 하루는 어떤 하루인지, 오늘 '고마워'라고 말한 적이 있는지, 이쯤이면 머쓱해지지 않는가. 세상의 중심은 나라지만 하루 종일 '나'에, 나를 둘러싼 것들에 종종 거리며 지내왔는데, 그 누군가에게 고마움을 느껴본 적이 있느냐고 하니.

창문 너머 길 저편을 본 기억도 아득하다. 떡갈나무, 느티나무 아래서 걸음을 멈춘 기억도, 길가의 나무 이름을 떠올릴 만큼 나무를 유심히 본 적은 또 언제며, 그러니 나무를 친구라 생각한 적이 있겠는가. '아름다워'라고 망설임 없이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고 물으면 말문이 막힌다.
 
나에게 '우리'는 누구인가요?/ .... 천천히 저물어 가는 서쪽 하늘에 기도한 적이 있나요? / .... 몇 살 때의 자신을 좋아하나요? / 잘 나이 들어 갈 수 있을까요?

세상을 향했던 질문은 다시 시선을 돌려 나에게 향해진다. 하늘을 보고, 구름을 보고, 바람의 냄새도 맡아보고, 나무 아래서 잠시 걸음도 멈추며, 나에게 고였던 생각을 세상을 향해 연 이후에 다시 나에게 던져진 질문에 대한 답은 아마도 눈 안에 세상을 담기 전과 좀 다르지 않을까?

하염없이 두어 시간 하늘을 이고, 바람을 맞으며 걷고 나면 묵직했던 가슴이 뚫리고 나에게 걸을 수 있는 시간을 주신 그분께 감사하며 다시 나에게 주어진 하루를 살아갈 용기가 생기는 것처럼.

<첫 번째 질문>을 여는 순간 하늘이 보인다. 구름이 떠다니고, 바람의 냄새가 나는 듯하다. 아름드리 나무를 향해 울며 가던 소년이 눈 쌓인 나무를 향해 가는 장년이 되는 시간의 여행을, 그 짧은 책장의 갈피 사이에서 함께 한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나에게 묻는다. '나에게, 그리고 내가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블로그 https://blog.naver.com/cucumberjh에도 실립니다.


첫 번째 질문

오사다 히로시 (글), 이세 히데코 (그림), 김소연 (옮긴이), 천개의바람(2014)


태그:#첫 번 째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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