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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 방문 신청 첫 날인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종로1,2,3,4 가 주민센터에서 별도로 마련한 긴급재난급접수처에서 선불카들을 발급하고 있다.
 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 방문 신청 첫 날인 지난 5월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종로1,2,3,4 가 주민센터에서 별도로 마련한 긴급재난급접수처에서 선불카들을 발급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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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전 세계를 강타했다. 경기가 침체되자 2020년 5월, 정부는 모든 국민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이 업무를 담당할 주민센터에서는 급히 사람을 구했다. 나는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보았다. 통장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주민들에게 절대 화를 내거나 울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하셨다. 난 고개를 거듭 끄덕였고, 5월 초부터 7월까지 약 2개월간 서울의 한 주민센터에서 기간제 근로자로 일하게 되었다.

구청에서 필요한 내용을 교육받아 바로 일을 시작했다. 대망의 선불카드를 신청받는 날, 새벽부터 주민들이 몰려들었다. 보통 1~2시간을 훌쩍 넘게 기다리며, 주민센터를 감싸고 돌아도 끝이 없을 만큼 긴 줄을 이어갔다. 일은 비교적 어렵지 않았다. 주민번호를 입력하고, 세대수를 확인하고, 카드를 발급해 드렸다.

매일 300명이 넘는 분들이 순서를 기다렸지만 바로 지급되는 파란색 선불카드를 보며 많은 분이 고맙다고 했다. 어르신들이 많았다. 이렇게 큰돈을 나라에서 처음 받아본다며 카드를 가슴에 안고 눈물 글썽이시는 할머니도 계셨고, 어떤 할아버지는 엄지척을 치켜세워가며 격려해주셨다.

진심이 담긴 '고맙다', '수고한다'는 말을 이렇게 많이 듣던 때가 언제 있었을까. 내 주머니에서 돈이 나가는 것도 아닌데 고맙다는 말을 하도 들으니 마르지 않는 금고에서 돈을 나르는 것처럼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주민을 대면하고 직접 도울 수 있는 공무원의 세계에 매료되었다.

특수 요원이 된 것만 같았는데

점심에는 김밥 한 줄을 10분 만에 욱여넣고 자리에 앉아서 기계처럼 일했다. 귀가 잘 안 들리시는 어르신들을 만나면 마스크 쓴 채로 똑같은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하면서 목청이 터졌다. 서류와 프로그램 시스템을 몇 번이고 대조하며 입력하느라 목이 빳빳해졌다. 화장실 갈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래도 정부가 특수임무(?)를 맡긴 요원 같아서, 일이 힘들지 않았다.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전국적으로 97% 이상 지원금이 지급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몰아치게 바쁘고 북적이던 공간이 감쪽같이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두 달 계약인데 한 달 만에 거의 일이 끝이 났다.

그러자 주무관들은 본래 업무로 돌아가고, 나는 공석이었던 주무관 자리에 땜빵처럼 앉아 있었다. 주무관들이 일하는 동안 사람들이 오고 가는 틈 사이로 나는 투명인간이 되었다. 차라리 바쁜 게 나았다. 일에 치여 밥을 제대로 못 먹더라도 특수 요원이 된 것 같았는데, 한순간에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가 되었다.

그러던 중 일이 터졌다. 주민센터 인근에 있는 요양센터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여 빠른 속도로 전파되었다. 요양센터에 계셨던 노인, 직원, 가족들이 바이러스에 노출되자 내가 일하던 주민센터의 관할 지역은 위험 지대가 되어 뉴스에 보도되었다. 게다가 잠복기였던 요양센터 직원이 며칠 전 방역하기 위해 주민센터에 소독약을 가지러 왔다는 게 아닌가.

CCTV를 돌려보니 잠복기였던 직원과 접촉이 아무도 없었다며 별일 없을 거라고 했지만 나는 심장이 벌렁거렸다. 하필이면 내 자리에서 소독약을 나눠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독약을 주고, 작성하는 일은 할 일 없는 내게 자연스럽게 맡겨졌다.

아파트에 확진자가 나타났다고 소독약을 가지러 오는 주민들, 부모님이 확진자였다고 집안을 다시 소독하고 싶다는 아들, 확진자가 생겨 교회를 폐쇄했다가 풀리자마자 오셨다는 직원 등 그들을 마주할 때마다 등골이 오싹했다.

미열만 있어도 양성인지 음성인지 검사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빠졌다. 무엇보다 가족 얼굴이 아른거렸다. 이제 막 일주일에 한 번 등교하는 아이가 나로 인해 학교와 지역에 전파자가 되는 건 아닌지 온갖 걱정이 뻗어갔다. 하지만 주민센터에서는 불안을 조성할 필요가 없다며 조용히 입을 닫았다.
 
 국회에서 또다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방역당국 관계자들이 방역작업을 하고 있다.
 국회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방역당국 관계자들이 방역작업을 하고 있다. (자료사진)
ⓒ 국회공보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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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손을 씻고 또 씻었다 
 

코로나가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주민센터의 문지기 역할을 공익근무요원 한 명이 하는 건 부족하다는 말이 나왔다. 한 명은 발열 체크하고, 다른 한 명은 마스크 미착용하신 분들의 출입을 제한했다.

처음에는 주무관들과 나같은 기간제 근로자들이 한 시간씩 돌아가기로 순번을 짰다. 하지만 서서히 주무관들은 바쁘다는 이유로 나타나지 않았다. 그들의 몫까지 세 시간씩 서면, 인간 방패막이 된 거 같다는 서글픔이 몰려왔다.

주민을 돕는 주무관은 공익근무요원과 기간제 근로자는 지켜주지 않는 것 같아 속상했다. 마음이 불편했다. 코로나 바이러스 앞에서 우리는 작고 약했지만 위험으로부터 서로 부담을 덜어갔으면 좋겠다는 맘이 굴뚝같았다. 

오랜만에 사회로 뛰쳐나간 나는 내 능력을 증명하고 싶고, 아이보다 일을 선택한 데서 의미를 찾고 싶었다. 하지만 '인간 방패막'으로는 나의 능력을 증명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가정을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었다.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이 극도로 커졌을 때는 계속 손을 씻고 또 씻었다. 사람들이 무서웠다.

한 동료는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스스로 일을 가치 있게 여기라고 말했고, 또 다른 동료는 카드 발급하던 때보다 편해서 좋다고 했다. 그래도 불공평한 거 아니냐며 공익근무요원에게 투덜거리자 그는 엄청난 경쟁률을 뚫은 공무원의 일이 중요하니까 당연하다고 했다. 그렇지만 생명도 모두에게 똑같이 중요한 일 아닌가.

씩씩대는 나를 진정시키는 공익근무요원은 20대 중반의 청년이었다. 그는 평소 특이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투명한 고글을 쓰고, 숨이 턱 막히는 더운 날씨에도 긴 바지와 점퍼를 입고, 가방을 항상 메고 있었다. 갑자기 위험한 일이 닥칠 때를 대비한다며 가방에는 방독면, 마스크와 소독약이 들어 있었다. 방독면을 쓰고 다니면 사람들이 알아서 피한다고 웃었다. 오히려 방독면이 마스크보다 숨쉬기가 편하단다.

꽁꽁 무장한 모습이 주위를 경계하듯 보였는데 문 앞을 지키며 한참 이야기해보니 그는 나름대로 자기 계발에 힘쓰는 평범한 젊은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도 더운 날씨에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까지 방독면을 쓰고 다니는 건 좀 과하지 않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그러자 그는 집에 할머니가 계신다고 했다. 할머니가 전염병에 노출될까 염려하는 지극한 심성이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그는 코로나에 노출된 자신의 위치를 이해하고 있었다.

나도 자신과 가정을 지키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가진 것은 달랑 마스크가 전부였다. 발열 체크하는 체온계도 정확한 온도가 측정되진 않았다. 에어컨을 켜도 시원하지 않은 사무실에서마저 쫓겨나, 땡볕이 쬐는 문 앞에서 발열 체크하는 업무는 그곳에서 가장 힘이 없는 이들이 맡게 됐다. 나라에서 시키면 해야 하는 공익근무요원도, 화를 내거나 울면 안 된다는 계약직 근로자도 담담히 견뎠다.

타인의 안전을 위해 내몰린 인간 방패막과 일이 없어 괜히 눈치 보던 투명인간. 더 나을 것도 없고, 딱히 선택할 수도 없는 두 역할 사이를 오가며 멍한 눈동자를 하고 그 시간을 견뎠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도 중복 게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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