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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진료거부 사태 등을 통해, 성적이 직업 선택과 이에 따른 사회적 계급을 규정하는 공정한 유일 잣대라는 의식을 가진 이들이 보입니다. 이에 조선시대의 공부법과 과거제도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958년에 출판된 한글 소설 <초한전>. 초나라 항우와 한나라 유방의 대결을 그렸다.
 1958년에 출판된 한글 소설 <초한전>. 초나라 항우와 한나라 유방의 대결을 그렸다.
ⓒ 국립한글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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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이기가 돌아오자 한나라 왕(유방)이 물었다. "위나라의 대장이 누구인가?" 그러자 "백직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왕이 말했다. "아직 입에서 젖비린내가 나는 자로군. 한신을 당해낼 수 없을 것이다." (<한서(漢書)> '고제기 상(高帝紀上)')

중국 한나라의 유방과 초나라의 항우는 진나라가 멸망한 후 무주공산이 되어버린 중원의 패권을 놓고 다투었습니다. 이때 한나라와 연합했던 위나라의 왕표는 전쟁이 초나라에 유리해 보이자 초나라 쪽으로 돌아섭니다. 유방은 참모인 역이기를 보내서 그를 달래지만 왕표는 뜻을 굽히지 않습니다.

그러자 유방은 한신을 앞세워 위나라를 공격합니다. 한신은 전장으로 떠나며 위나라의 대장이 누구인지 역이기에게 묻지요. 백직이라고 대답하자, 유방은 '백직은 아직 입에서 젖비린내가 나는 애송이일 뿐이다'라며 자신만만해합니다. 결국 한신이 승리하고 왕표는 유방에게 항복합니다.

이는 사자성어 '구상유취(口尙乳臭)'의 배경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지금도 '언어·행동이 유치(幼稚)하거나 미숙하다' 혹은 그러한 사람을 가리킬 때 종종 사용하는데요. 조선왕조실록에서도 구상유취에서 파생된 표현이 종종 발견됩니다.

시강관(임금의 독서토론 교사) 정초는..."요즘 벼슬한다는 자는 다 양반의 자제요, 젖내 나는 어린애로, 학문의 공력을 쌓지도 않았고, 또 직무에 단련되지도 못했는데, 자주 교체만 하게 되니, 이로 인해 일의 적절한 때를 놓치고 실수하게 되는 것입니다...요사이 새로 뽑은 생원들은 겨우 십여 명이 대궐에 들어와서 절을 하였는데, 신입의 기풍이 이보다 더 경박할 수는 없습니다." (세종실록 1년 2월 17일)

젖비린내 나는 '요즘 것들'에 대한 정초의 한탄이 여기까지 들리는 듯합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금수저' 혹은 여유 있는 사대부 출신의 수험생이 학식도 교양도 갖추지 못하고 오로지 '고시 패스'를 한 덕에 관리가 되는 당대의 인재 선발에 대해 지적합니다. 세종도 반지성주의 풍토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데요. 그래서 세종 정부에서는 과거시험과 교육제도의 개혁 방안을 자주 논의합니다.

'임금이 문제를 냈는데도 이 모양인데 평소에는 오죽하겠는가'
 
 조선 전기에 문과에서 일등을 차지한 답안을 모은 <동국장원집(東國壯元集)>
 조선 전기에 문과에서 일등을 차지한 답안을 모은 <동국장원집(東國壯元集)>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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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이 말하였다. "과거제도를 두어 선비를 뽑는 것은 참다운 인재를 얻으려 함인데, 어떻게 해야 선비로 하여금 실속 없이 겉만 번드르르한 버릇을 버리게 할 수 있을까?" (세종실록 즉위년 10월 7일)
 

조선시대의 문과 시험은 대체로 유교 경전에 대한 이해, 역사에 대한 식견, 문장 짓는 능력을 평가하도록 설계됐습니다. 그러므로 수험생은 유교 경전, 역사책, 우수한 문장을 모은 책 등을 중심으로 공부했지요.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는 암기가 가장 중요했는데, 문제는 시험 범위가 방대하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경전과 역사책의 요점정리, 그리고 과거급제한 선배의 우수 답안을 모은 '족보'가 성행했습니다. 이를 초집(抄集)이라고 하는데, 여기에서 '초(抄)'는 '중요한 것만 추려내어 베낀 것'이라는 뜻입니다. 초집에는 출제연도, 시험의 종류, 기출 문제, 작성자의 이름 등이 적혀 있습니다.
     
임금이 대언(임금 비서)들에게 말하였다. "유생이...오로지 동료가 지은 글만 모아서 초집을 하였으므로, 유사한 제목을 만나면 표절하여 쓰고, 이를 죽 따라 하니 관행이 되었다. 최근에 성균관에 행차하여 전문(나라에 좋거나 나쁜 일이 있을 때 임금에게 써서 올리는 특수한 형식의 글)을 제술하게 하니, 모두 권맹손이 도시(무사를 선발하는 특별시험)에서 장원을 차지한 진빈풍도(농사짓는 백성의 수고를 다룬 내용)의 전(임금·왕비에게 올리는 특수한 형식의 글)을 표절하여 쓴 까닭으로, 내가 이를 고르지 않았다. 평상시에 짓는 글일지라도 초집을 표절해 쓴 것은 진실로 도리를 아는 유생들이 할 바가 아니다. 하물며 내가 직접 와서 선비를 시험하는 때는 말할 것도 없다...바른 도리를 따르지 않고는 과거에 합격하는 길을 막게 할 것이다." (세종실록 11년 5월 28일)

성균관은 현재의 서울대학교에 해당하는 국립 고등 교육기관입니다. 당대의 수재들이 모이는 곳이라 할 수 있겠지요. 어느 날 세종이 직접 행차하여 성균관 학생들에게 문제를 냅니다. 답안을 보고는 답답해집니다. 아마도 요즘 유행하는 노래 제목처럼 '니가 왜 거기서 나와'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자신과 함께 일하는 신하가 장원 급제했을 때 쓴 답안을 대부분의 학생이 베껴서 냈으니까요.

'임금인 내가 문제를 냈는데도 이 모양인데, 평소에는 오죽하겠는가' 하며 한탄합니다. 대놓고 자신을 속인 이들 중 누군가는 나중에 관료가 되어 함께 일할 것입니다. 어떻게 이러한 자들을 믿고 나랏일을 맡길 수 있을까요?

비판적·창의적 사고를 기르지 않고 오로지 '정답' 암기만 하는 학습법도 개혁해야 하지만, 남의 글을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속이며 아무런 죄의식이나 문제의식을 갖지 않는 태도가 더 큰 문제라고 세종은 본 것 같습니다. 표절(剽竊)의 '표(剽)'도 '절(竊)'도 모두 '도둑질'을 의미합니다.

지성이란 박제된 지식을 머리로 암기해 갖출 수 있는 것 아냐
 
 과거 응시자가 제출한 답안지 곧 시권으로, 성적은 삼중(三中)이다.
 과거 응시자가 제출한 답안지 곧 시권으로, 성적은 삼중(三中)이다.
ⓒ 화성시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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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지적 결과물을 훔쳐 고시를 치른 결과로 입신양명할 수 있다면, 이것은 국가가 개인에게 잘못된 신호를 주는 것이지요. 이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젊은이가 '바른 길'이 아닌 '쉬운 길'로만 가려는, 성실이 아니라 요행을 바라는 풍토도 개선해야 하겠고요. 그래서 세종은 대처 방안을 마련합니다.

임금이 명을 내렸다..."지금 응시하는 학생들은...오로지 동료가 지은 글을 베껴서 전부 답습하여 요행으로 과거에 합격하기를 바란다...지금부터는 옛글을 익히지 않고 동료가 지은 글을 뽑아 적어서 표절하거나 펴보는 자는 전국의 교관(지금의 교수)과 시험을 관장하는 관리에게 수색·관찰하게 한다. 학교 안에 가지고 와서 펴보는 것이 발각된 자는 1식년(3년)을 기한으로 하고, 시험장 안의 수색·검열에서 발각된 자는 2식년(6년)을 기한으로 하여 과거 응시를 정지시켜서, 공부법을 바로잡게 하라." (세종실록 14년 3월 11일)

조선시대의 정기 과거 시험은 삼 년마다 있었습니다. 학교에 초집을 가져와 펴보는 학생은 삼 년간, 시험장에 초집을 가져온 응시생은 육 년간 시험을 볼 수 없도록 조치합니다. 소지만으로도 응시 기회가 박탈되니 꽤 강력한 처벌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수험생이 초집을 베껴 시험을 치르는 행태는 계속된 것으로 보입니다.
     
임금이 말하였다. "그러나 유교 경전을 글귀로만 풀이하는 것은 참다운 배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반드시 마음을 거친 공부가 있어야만 이에 유익할 것이다." (세종실록 즉위년 10월 12일)

세종의 말을 빌자면, 지성이란 박제된 지식을 입으로 말하고 머리로 암기해서 갖출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성찰하는 자신이, 행동하는 양심이 개입되어야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원인 중 하나가 미국의 반지성주의라는 연구가 보도된 바 있습니다. 반지성주의는 단순히 책이나 신문을 읽지 않고, TV·게임·SNS 등을 즐기는 유희적 대중의 특성이 아닙니다. 비록 '지식인'이라 할지라도 자신 및 직업에 시대가 부여한 과제를 이해하지 못할 때 그것은 반지성으로 점철된 엘리트주의로 귀결됩니다.

근래 우리나라에서도 당대의 지성을 담보·지탱한다고 믿어왔던 엘리트 계층에서 반지성주의의 양상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법조·언론·의료계 등 소위 '고시 패스'한 전문가 집단의 일반 상식에 반하는 의사결정 혹은 집단행동을 왕왕 목도하게 됩니다. 성적이 공정성의 유일한 잣대라 여기는 이들을 접하며, 과연 참다운 공부란 무엇인가 고민했던 세종의 마음을 곱씹어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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