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LG 트윈스가 마지막으로 정상에 오른 것은 1994년이다. 당시 LG는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를 모두 압도적인 성적으로 통합 제패하며 1990년에 이어 V2를 달성했다. 90년대를 배경으로 한 '복고 코드'로 큰 인기를 모았던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도 비중있게 묘사되었듯이, 당시의 LG는 성적과 흥행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던 국내 프로야구 최고 인기팀이었다.

하지만 94년을 마지막으로 LG는 무려 지난 25년간이나 정규시즌도-한국시리즈에서도 정상에 올라보지 못했다. 90년대 당시만 해도 누구도 LG의 무관이 이렇게까지 길어질 거라고 예상한 이들은 거의 없었다.

LG 팬들에게 지난 25년은 파란만장한 시간이었다. 사실 이때도 정상에 오를 수 있을만한 기회는 몇 번이나 있었다. V2를 달성하고 불과 이듬해인 1995시즌에도 LG는 2연패가 유력한 상황이었다. 8월까지만 해도 2위권과 격차를 6게임까지 벌리며 정규시즌 1위를 질주했다. 그런데 시즌 막판 잠실 라이벌 OB 베어스(현 두산)가 혜성처럼 대항마로 등장했다.

전 시즌 8개구단중 고작 7위에 그쳤던 OB는 한 시즌만에 김인식 감독이 부임한 첫해 그야말로 환골탈태하며 당시 최강 전력이던 LG와 뜻밖의 양강 구도를 형성했다. 시즌 막판까지 양팀의 우승 경쟁이 얼마나 치열했느냐면 시즌 최종일에야 OB가 74승5무47패, 승률 .607을 기록하며 1위를 확정했고, LG는 74승4무48패, 승률 .603으로 딱 반(0.5)게임차로 2위로 밀려났다. 단일리그제에서 정규시즌 승률 6할을 넘기고도 1위를 차지하지 못한 것은 95년의 LG가 역대 최초였다.

9월 한 달 동안 LG는 마지막 24경기서 13승 1무 10패로 5할 이상의 승률을 거뒀지만 OB가 무려 18승 6패로 질주하며 거짓말같은 역전 우승에 성공했다. LG는 이 해 라이벌 OB와의 정규시즌 상대전적에서는 11승 1무 6패로 압도적인 우위를 점했기에 더욱 아쉬운 결과였다.

나비효과는 포스트시즌까지 이어졌다. LG는 플레이오프에서 롯데에 2승 4패로 무릎을 끓으며 결국 한국시리즈 진출조차 실패했다. 이후 2019년 SK 와이번스의 사례가 95년 LG의 행보를 그대로 재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물론 이때만 해도 LG의 좌절이 이후 '25년 무관'으로 이어질 흑역사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예상한 이들은 없었을 것이다.

이후 LG는 1997년과 1998년 2년연속 한국시리즈에 올랐으나 각각 해태 타이거즈(1승 4패)와 현대 유니콘스(2승 4패)의 벽에 막혀 준우승에 그쳤다. 2002년은 LG가 마지막으로 한국시리즈무대를 밟았던 해였다. LG는 당시 열세라는 평가를 딛고 최강 전력의 정규시즌 1위팀 삼성을 상대로 6차전까지 물고늘어지는 명승부를 펼쳤지만 이승엽과 마해영에게 통한의 동점-역전 홈런을 허용하며 분루를 흘렸다. 삼성으로서는 LG를 제물로 20년 한국시리즈 무관 기록을 청산하는 첫 우승이기도 했다.

LG 야구사의 최대 암흑기

2000년대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는 LG 야구사의 최대 암흑기였다. LG는 프로야구 역대 최장기록에 해당하는 10년연속(2003~2012) PS 진출에 실패하며 야구계의 웃음거리로 전락했다. '엘롯기'(LG-롯데-기아), '내팀내' 혹은 'DTD'(내려갈 팀은 내려간다), '탈쥐효과'(LG를 떠난 선수들이 타팀에서 맹활약하는 것), '먹튀의 전당' 등 당시 LG 야구의 암울함을 풍자하는 온갖 패러디와 신조어가 난무하는 현상도 발생했다.

LG가 오랜 암흑기를 딛고 다시 가을야구 무대에 이름을 올리기 시작한 것은 2013년부터였다. 당시 LG는 128경기 체제에서 74승 54패, 승률 .578을 기록하며 정규시즌 2위에 오르며 2000년대 이후 최고의 성적을 기록했다. 최근 7년간은 4차례(2013-2014,,2016,2019)나 4강 이상의 성적을 올리며 가을야구에 대한 갈증을 어느 정도 해소했다.

하지만 정상과는 여전히 거리가 있었다. 90년대까지만 해도 우승횟수가 같았던 잠실 라이벌 두산이 21세기에만 4번의 우승을 추가하며 V6(역대 3위)로 격차를 벌린 것과 달리, LG는 2002년을 끝후로 한국시리즈 무대조차 밟지 못하며 V2에 머물고 있다.

2020년은 LG에게는 오랜만에 찾아온 기회의 시즌이다. LG는 8월 이후 7연승만 두 차례 기록하는 등 무서운 기세로 승수를 추가하며 어느새 정규시즌 2위까지 올라섰다. 8월 월별승률은 16승1무8패 승률 .667로 전체 1위에 올랐으며, 9월에도 3승1무1패로 순항하고 있다.

류중일 감독이 이끄는 LG의 올시즌 투타 밸런스는 구단 역사상 최고 수준으로 꼽힌다. 구단 한 시즌 최다 홈런을 기록중인 외국인 타자 라모스와 타율 전체 2위 김현수가 타격을 이끌며, 최근에는 홍창기와 이형종까지 가세해 불을 뿜고 있다.

마운드에서는 차우찬이 부상으로 빠졌음에도 선발진에선 임찬규가 시즌 9승을 쌓으며 에이스로 발돋움했고, 정찬헌, 이민호, 김윤식 등 영건들의 성장이 두드러진다. 불펜은 고우석과 정우영의 필승조가 확실히 자리잡으며 한번 리드를 잡은 경기에서는 좀처럼 역전을 허용하지 않는다. 사령탑 류중일 감독은 삼성 시절 한국시리즈 통합 4연패와 정규시즌 5연패를 경험해 본 '우승하는 법을 아는 지도자'라는 점도 큰 차이점이다.

LG는 현재 58승 3무 41패로 승률 .586을 기록중이다. 시즌이 아직 남아있지만 한국시리즈까지 올랐던 1997년 .587(73승 2무 51패) 이후 23년만에 최고승률이다. 최근 3연패에 빠진 선두 NC 다이노스와는 어느덧 1.5게임차이로 통합우승을 차지한 94년 이후 26년만의 정규시즌 1위 등극도 더 이상 꿈은 아니다.

이 시점에서 LG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오직 자만심 뿐이다. LG는 본의 아니게 그동안 '설레발'의 아이콘으로 부각된 측면이 적지 않다. '내팀내'나 '피우향'(피어오르는 우승 향기)같이 공연히 일찍 샴페인을 터뜨리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가 오히려 이후로 성적이 급추락하는 징크스가 생겨나며 노이로제에 시달리기도 했다. LG 선수단과 팬들이 최근의 호성적에도 불구하고 표정관리를 하고 있는 이유다.

국내 프로야구 사상 최장기간 무관 기록은 롯데 자이언츠가 보유하고 있는 27년이다. 롯데는 1992년 사상 두 번째이자 마지막 우승을 끝으로 더 이상 정상과는 인연이 없었다. 롯데는 출범 원년부터 무려 38년동안 정규시즌 1위는 아예 한 차례도 차지해보지 못한 불명예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LG의 무관 기록은 롯데에 이어 프로야구 역대 2위에 해당한다. LG와 롯데, 그리고 한화(1999년 우승)까지 포함하여 3팀의 공통점이 1990년대에 마지막으로 정상에 올랐던 '20세기 우승팀'들이라는 것이다.

한화는 올해 역대 최악의 시즌을 보내며 최하위에 머물고 있으며, 롯데도 7위에 그치며 5강진출도 갈길이 바쁜 상황이다. 현재로서는 가을야구 진출은 확정적이고 사실상 선두싸움을 펼치고 있는 LG가 21세기 무관 탈출을 향한 도전에서 가장 앞서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아쉬운 점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하여 무관중 경기로 시즌이 진행됨에 따라, 현장에서 팬들과 함께 모처럼 돌아온 호시절의 기쁨을 함께 나누지는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LG는 KBO리그에서도 팬덤이 가장 두텁고 열성적인 팀중 하나로 꼽힌다. LG가 좋은 성적을 올릴 때마다 '나도 사실은 LG 팬이었다'고 뒤늦게 팬심을 드러내는 샤이 팬들도 적지 않다. 그들에게 비록 직관이 아니더라도 LG의 선전은 고단한 일상에 큰 위안이 아닐 수 없다. 올시즌의 LG가 과연 26년의 기다림을 떨쳐내고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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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트윈스 응답하라1994 DTD 류중일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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