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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달산에서 내려다 본 거문도 풍경. 동도와 서도를 이어주는 거문대교가 내려다보인다.(자료사진)
 음달산에서 내려다 본 거문도 풍경. 동도와 서도를 이어주는 거문대교가 내려다보인다.(자료사진)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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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 거문도로 가족 여행 떠났던 때가 떠올랐다. 10년도 더 지났지만, 마치 어제 일처럼 또렷하다. 당시 초등학교에 갓 입학했던 아들 녀석이 크게 아팠던 일과 그곳에서 만난 젊고 친절한 의사와의 만남 때문이다.

민박집에서 하룻밤을 보낸 이튿날 아침, 아이가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서 둘러매다시피 한 채 병원을 찾아 헤맸다. 눈은 퉁퉁 부었고 연신 긁어대는 통에 팔과 다리, 엉덩이 주변에 손톱만 한 물집이 잡혔다. 응급 처방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거문도에는 병원이 없었다. 명색이 면사무소가 자리한 곳인데, 환자를 돌봐줄 곳이 없었던 거다. 중학교도 있고, 우체국과 파출소 등 관공서도 있고, 수협 등 금융기관도 있으며, 시장 못지않은 마트도 있는데, 병원은 보이지 않았다.

아이의 몸 상태를 본 주민 한 분이 손을 끌다시피 하며 도착한 곳은 선착장 바로 옆 일반 가정집처럼 생긴 작은 보건소였다. 황급히 문을 두드렸고 앳된 젊은이가 평상복 차림으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그는 거문도의 유일한 의사라고 했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조차도 손자뻘인 그를 '의사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전공과는 상관없이, 그는 의사이면서 약사였고 물리치료사였으며 심리 상담사였다. 보건소는 진료실과 약제실, 물리치료실 등이 안방과 거실, 부엌처럼 연결되어 있었다.

그의 가슴에는 '공중보건의'라고 적은 명찰이 달려 있었다. 공중보건의란 병역 제도 중의 하나로, 군에 복무하는 대신 의사가 없는 오지나 농어촌 보건소에서 3년간 복무해야 하는 의사를 말한다. 당시 거문도에는 두 명의 공중보건의가 근무하고 있었다.

주사를 맞고 약을 처방받은 뒤 다행히도 두드러기는 이내 잦아들었다. 정성껏 치료해준 데 대해 감사를 표하자, 그는 외려 특별히 한 게 없다면서 연신 손사래를 쳤다. 거문도의 열악한 의료 환경을 설명하며 그것이 마치 자신의 책임인 양 미안해하기도 했다.

그는 보건소와 공중보건의의 한계가 명확하다고 했다. 단순한 감기와 타박상이나 찰과상 정도를 치료하는 게 할 수 있는 전부라는 거다. 시골 마을 보건소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진단과 처방, 치료가 아니라 도회지 병원으로의 후송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얼마 안 있어 섬을 떠나게 된다는 그의 얼굴에선 시원섭섭해 하는 감정이 읽혔다. 제대하는 군인의 심정일 테니 더 없이 설레고 기쁠 테지만, 한편으로는 3년간 정들었던 섬과 이별한다는 아쉬움을 드러낸 것이다. 누가 의사 아니랄까봐 그의 일성은 거문도엔 의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였다.

농어촌 지역 의료는 공중보건의에게 맡겨진 상태

그는 불과 3년 전 처음 배치받았을 때와도 차이가 뚜렷할 만큼 거문도의 인구 유출이 심하다고 안타까워했다. 농어촌 인구의 감소야 거문도만의 문제는 아니라 대수롭지 않게 들렸지만, 그의 시각은 남다른 데가 있었다. 의사가 떠난 마을은 이내 소멸하고 만다는 것.

학교가 폐교되면 마을 공동체는 무너진다고들 하지만, 어디까지나 학교는 병원 뒤라고 강조했다. 이른바 '의료 약자'인 노인 인구가 많은 곳일수록 학교보다 병원이 더 중요한 기반 시설이라는 거다. 제때 치료받지 못해 죽을 수도 있다는 건 교육에 비할 수 없는 공포라고 말했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병원선도, 여수에서 2시간 남짓이면 닿는 쾌속선도, 정작 거문도 주민의 삶엔 별 보탬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섬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도움이 될 뿐이라는 거다. 그들이 쓰는 돈이 주민의 벌이이긴 해도, 결국 섬의 환경을 망친 대가가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값비싼 병원선 한 대보다 의사 한 명이 섬 주민의 삶의 질 향상에 더 크게 기여하고, 차라리 쾌속선이 없어져야 섬 환경이 오래도록 보전될 수 있다고 잘라 말했다. 이러다 얼마 못 가 주민은 죄다 떠나고 관광객들만 오가는 껍데기뿐인 섬이 될 거라고 예언하기도 했다.

이후 다시 거문도를 찾은 적은 없다. 그와의 짧은 만남 뒤 강산이 한 번 변하는 세월이 흘렀으니 거문도도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우연히 찾아본 통계지표는 그의 잿빛 예언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한때 만 명도 넘었다는데 올해 인구수는 고작 2000명 남짓에 불과하다.

대도시에는 명의를 자처하는 내로라하는 전문의들이 곳곳에 널렸지만, 면 단위 농어촌 지역의 의료는 보건소에 배치된 공중보건의에게 온전히 맡겨진 상태다. 오지나 섬을 들먹일 필요도 없이 군청이 자리한 읍내만 벗어나면 병원도 의사도 아예 없다고 보면 된다.

누구는 낙후된 지역은 인구가 줄어 병원이 유지될 수 없다고 하고, 다른 누구는 병원이 없는 곳에서 어떻게 살 수 있겠느냐며 등 떠밀리듯 고향을 버리게 된다고 말한다. 흡사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의 논쟁 같다. 이는 공중보건의 제도가 도입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닭과 알 중 어느 하나를 편들기 전에 유의할 점이 하나 있다. 선착장 보건소로 우리를 데려다준 주민의 말에 의하면, 지금껏 거문도에 병원이 있었던 적은 없다고 했다. 과거 인구가 만 명이 넘었을 때도, 지금도, 섬의 의료는 항상 보건소의 몫이었다는 거다.

웬만큼 아프면 참고, 못 참겠으면 보건소의 '젊은 의사 선생님'에게 도움을 청하고, 숨이 넘어갈 정도가 돼야 뭍의 병원을 찾게 되는 신산한 삶을 이어왔다. 단지 섬에 산다는 이유로, 누구나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를 포기한 채 살아온 것이다. 이를 의사도 국가도 짐짓 모르는 체했다.

10여 년 전 기억 떠올린 이유
 
지난 14일 '4대악 의료정책(한방첩약 급여화, 의대 정원 4천명 증원, 공공의대 신설, 원격의료) 저지를 위한 전국의사총파업궐기대회'가 대한의사협회 주도로 서울 여의도에서 개업의, 전공의, 의대생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지난 14일 "4대악 의료정책(한방첩약 급여화, 의대 정원 4천명 증원, 공공의대 신설, 원격의료) 저지를 위한 전국의사총파업궐기대회"가 대한의사협회 주도로 서울 여의도에서 개업의, 전공의, 의대생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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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후 아이의 눈두덩이 부어 부랴부랴 병원을 찾았는데, 문이 닫혀 있었다. 공교롭게도 가는 곳마다 '하계 휴가 기간'이라고 써 붙여 놓았다. 듣자니까, 그 시간 지역의 의사들과 전공의, 의대생 1000여 명이 모여 '4대악(惡) 의료 정책 저지를 위한 의사 총파업 궐기대회'를 열고 있었다고 한다. 10여 년 전의 기억을 떠올린 이유다.

그들의 주장은 간명하다. 의대 정원을 늘릴 필요가 없다는 것. 곧, 의료 인력 양성의 문제가 아니라 양성한 의료 인력을 제대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이는 의사는 많지만 정작 의료 환경이 열악한 오지에서 일하려는 의사가 없다는 고백에 다름 아니다.

이를 도농 간의 소득 차이로만 좁혀 설명하긴 어렵다. 지난해 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보건의료 인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농어촌 지역에서 일하는 의사의 월평균 수입이 대도시에 비해 100만 원가량 더 높았다. 참고로, 농어촌 지역 의사의 월평균 수입은 1404만 원이다.

결국, 총량의 문제다. 변호사 합격률을 높이려는 정책에 기존의 변호사들이 반대했던 것과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해 의사와 의대생들이 반기를 들고 나선 지금의 상황은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공급이 늘어나면 가격이 낮아진다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경제학 상식 아닌가.

누구는 오지에서 일하는 의사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강조한다. 웬만한 '당근'으로는 교육과 문화, 복지 등 생활 인프라가 갖춰진 도시를 선호하는 본능적 욕망을 통제할 수 없다는 거다. 물론, '당근'이란 수입으로 치환될 수 있겠다.

총파업에 공감 안 된다

그렇다면, 대체 월평균 수입이 얼마여야 거문도에도 번듯한 병원이 생기고 전문의가 거주하게 될까. 지금의 두 배? 세 배? 볼멘소리하는 지금도 그들의 수입은 도시 노동자 평균 임금의 여섯 배가 넘고 최저 시급을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에 견준다면 여덟 배에 이른다.

월평균 수입의 조악한 단순 비교는 설득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의술은 인술이라며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고 학창 시절 잠시나마 슈바이처를 롤모델 삼기도 했을 그들이기에 이번 총파업에 선뜻 공감이 안 된다. 의대 간 제자의 "어떻게 해서 의사가 됐는데…"라는 푸념이 더 솔직하게 느껴진다.

총파업에 참여한 수많은 의사와 의대생들에게, 차마 이태석 신부의 숭고한 삶을 떠올려보라고 나무라진 못하겠다. 그는 의대를 졸업한 뒤 사제의 길을 걷다 선교사가 되어 아프리카로 떠났고, 원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며 의술이 인술임을 증명했다. 암으로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들로부터 '남수단의 슈바이처'로 불리며 추앙되고 있다.

그보다 카리브해의 작은 섬나라 쿠바의 이름 없는 의사들을 빗대는 게 낫겠다. 그들은 국가의 요구에 앞서 의사의 소명으로 기꺼이 의료 환경이 열악한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나라에서 인술을 펼치고 있다. 알다시피, 지난 3월 코로나가 맹위를 떨치던 이탈리아에 가장 먼저 달려간 의사가 바로 그들이다.

과연 우리와 쿠바의 차이는 뭘까. 의료 환경과 수준의 문제라면, 우리가 그들보다 뒤떨어질 리 만무하다. 진단과 수술 등 우리나라 의사 개개인의 기술적 역량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해답은 양성 과정에 있다. 우리나라에서 자녀를 의사로 키우기 위해서는 그의 학습 능력과는 별개로 부모의 경제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하지만, 쿠바에선 처음부터 끝까지 국가가 책임지고 의사를 길러낸다. 의료 기술보다 공공성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공공 의대를 설립하고 낙후 지역에서 일할 의사들을 길러내겠다는 정부의 정책은 쿠바의 그것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의사를 꿈꿔온 나를 국가가 의사로 만들어주었으니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건 당연하다'고 말하는 '진짜 의사'를 기대하는 건 정녕 꿈일까. '하계휴가' 떠난 의사들이 성토하는 '4대악'이 자꾸만 몽니처럼 느껴진다.

태그:#의사 총파업, #공공의대 설립, #쿠바 공공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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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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