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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사로서 내가 수업에 들어가서 할 일은 잘 가르치는 일인데, 내 복장에 따라 나의 전문성이 변할 리는 없었다. 정장을 입든, 뭘 입든간에.
 강사로서 내가 수업에 들어가서 할 일은 잘 가르치는 일인데, 내 복장에 따라 나의 전문성이 변할 리는 없었다. 정장을 입든, 뭘 입든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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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위를 받은 후 오랫동안 시간강사로 일하면서 나는 대체로 정장을 차려 입었다. 가르치는 일은 똑같아 보일지라도 강사는 교수에 비하면 엄청난 사회적 지위 차이에 놓인다. 물론 강의하는 한 학기 동안은 학점을 주는 권한이 내게 있기 때문에 거기에서 오는 지위와 권력이 생긴다.

그러나 나는 교수가 아니므로 내심 최대한 교수처럼 보여서 그렇게라도 권위를 확보해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생각이 있었던 듯하다. 어떤 때는 강의하러 간 복장 그대로 바로 친구의 결혼식에 가도 전혀 손색이 없는 그런 풀 세팅 정장으로 강의하러 가기도 했다. 아주 오래전에 내가 스스로 세워놓은 이 규칙을 별 생각 없이 스스로 따르며 살고 있었다. 

밑져야 본전... 찢어진 청바지와 남방을 사다

계기는 동네 옷가게에서 생겼다. 우연히 들른 옷가게는 편안한 캐주얼 의류를 주로 파는 곳이었다. 옷을 골라주는 센스가 좋고, 코디 조언을 해주는 열성이 있는 30대 여성 사장님과 옷의 감각에 대해서는 어리바리한 나의 합이 잘 맞았다. 밑단의 올이 풀려있고 아주 조금 군데군데 찢어져 있는지라 내가 입어본 적이 없는 스타일의 일자 청바지는 허리에 숨겨진 고무줄이 있어서, 뱃살을 잘 커버하면서도 편안했다.

'몸에 잘 맞아 편하고 예쁘지만 강의할 때 입기엔 어려울 것 같다'며 망설이는 내게 사장님은 강의할 때 입어도 된다면서 같이 어울릴만한 티셔츠와 남방을 골라줬다. 그 스타일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으로 찢어진 청바지와 남방을 샀다.

구체적으로도 아니고 막연하게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우려했던 '그런 일'들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학생이든 복도에 지나가는 교수처럼 생긴 사람이든 내게 강의를 맡긴 선배 교수든 나의 찢어진 청바지와 남방 복장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생각해보니 사실 강사로서 내가 수업에 들어가서 할 일은 잘 가르치는 일인데, 내 복장에 따라 나의 전문성이 변할 리는 없었다. 모직코트에 정장 원피스를 입고 구두를 신고 가든, 찢어진 청바지와 남방에 운동화를 신고 가든, 학생들이 강사로서의 나의 능력을 의심하는 일은 일어나지 애초에 일어나지 않는 일이었던 것 같다. 스판덱스 함유량이 높은 청바지는 몸의 움직임에 맞게 잘 늘어나 너무도 편안했고, 구두 대신 신은 운동화는 지하철을 타고 강의하러 가는 길을 훨씬 편안하게 만들어줬다. 그리고 그 학기에 난 처음으로 우수강사상을 탔다. 

사회가 강제하는 규범을 벗어던지다

주디스 버틀러는 젠더란 우리가 문화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반복해서 수행(perform)'해야 하는 행위라고 보았다(Judith Butler, 1990, Gender Trouble, 조현준 역, 2008, 젠더 트러블, 문학동네). 마치 그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인 양 우리의 몸으로 수행하는 행위가 젠더라는 것이다.

젠더란 연극 공연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주디스 버틀러가 제시한 수행성(performativity)이라는 개념을 이해할 수 있다. 연극배우들은 한 편의 연극을 무대에 올린다. 공연을 한다. Perform이라는 영어 단어에는 '공연한다' '행하다' '수행하다'라는 뜻이 있다. 어떤 연극배우 본인이 배역맡은 인물과 동일인은 아니지만, 해당 무대에서 그 연극을 공연하는 동안만큼은 맡은 배역의 인물이 돼 그 연극을 공연한다.

젠더란 그런 것이다. 나에게 어떤 젠더가 주어진 상태에서 나는 인생 무대에서 공연하는 연극배우와 같다. 그 배역맡은 극중 허구의 인물이 진짜 나와 얼마나 같고 다른지 따져볼 새도 없이 나는 철저히 그 인물이 돼야 한다.

강의하러 갈 때는 당연히 정장을 입고 가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행했던 것 자체가 젠더다. 강사의 복장이 정장이어야 한다는 것은 사회가 그렇다고 정해놓은 규범에 가깝다. 정장을 입어야만 강의를 잘할 수 있다는 어떤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의하는 교수나 강사는 정장을 입는다. 이제 사회가 강제하는 이 규범은 한국사회에서 '예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기까지 해서 통용된다. 그러나 막상 그 규범을 벗어던졌을 때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편안한 몸과 따라서 편안해진 마음으로 학생들과 상호작용할 수 있었다.

류호정을 지지한다
 
 정의당 류호정 의원이 지난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잠시 퇴장하고 있다.
 정의당 류호정 의원이 지난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잠시 퇴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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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 5일, 류호정 정의당 의원(비례대표)의 국회 출근 옷차림 논란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도대체 저게 뭐라고 이렇게 수많은 여성혐오 악플과 기사가 쏟아져나오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류호정 의원은 평균연령 54세 남성들이 검은 양복을 입고 득실거리는 그 국회의장에 원피스를 입고 가면서 정치적 행동을 했다. 여성스러운 원피스이지만 이 경우에는 자신에게 주어진 젠더를 뒤집어엎은 행위가 된다. 기존의 젠더 질서를 뒤집는 행위, 몸으로 하는 행위들을 계속해서 해나가자고 주장했던 주디스 버틀러가 여기에 있었다면 아마 류호정 의원과 하이파이브를 했을 법하다.

나는 복장으로써 정치적 행위를 한 류호정 의원을 지지한다. 복장이든 무엇이든 우리에게 당연한 것으로 주어진 젠더를 뒤집는 행동을 하는 모든 사람들을 지지한다. 그럼으로써 그 행위자를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과연 자신들이 생각하는 젠더란 무엇인지 아주 조금이라도 스스로 생각하게 하고 단 한 번이라도 스스로 질문하게 만들었다면, 그런 모든 행위자들을 지지한다.

그러한 생각과 질문, 스스로 하는 성찰이 변화를 위한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나도 오늘 지인들과 함께 우리의 일상적인 복장에 얼마나 편견이 실려있는지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갈 길은 멀지만 그래도 이제 막 시작됐다.

덧붙이는 글 | 저의 개인 브런치에 발행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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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혼 페미니스트. '여성주의 교육 연구소 페페(Feminist Pedagogy)' 대표이자 숙명여대 강사. 페미니즘을 향해 한 발 더 다가가는 사회가 되도록, 여성이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이야기를 눈물흘리지 않고 할 수 있는 사회가 되도록 노력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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