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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노동자회는 회원 소모임 <페미워커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2020년 <페미워커클럽>은 다양한 문화컨텐츠를 함께 감상하고, 성평등 노동의 관점으로 재해석하는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일하는 페미니스트의 관점으로 비평한 문화의 이야기를 '페미워커의 모두까기'라는 제목으로 비정기 연재한다.[편집자말]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이 고발된 후, 페미워커클럽은 성폭력 피해자와 연대하는 마음으로 <김지은입니다>를 읽고 소감을 나누는 북세미나를 7월 28일 가졌다. 

<김지은입니다>는 피해생존자 김지은님이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 의한 성폭력 피해 사실을 알리고 대법원에서 최종 유죄 판결을 받아내기까지의 과정을 자세히 묘사한다. 이 책은 프롤로그에 적혀 있듯 김지은의 "세상을 향한 두 번째 말하기"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김지은이 안희정의 성폭력 가해를 알린 "첫 번째 말하기"와 대법원 최종 유죄 판결만을 기억한다. 김지은은 "첫 번째 말하기"와 유죄 판결 사이에 벌어진 수많은 2차 가해, 쉴 틈을 주지 않는 언론, 직장과 기반을 잃는다는 것에 대한 묘사를 엮어 성폭력 피해 생존자로서의 "두 번째 말하기"를 책으로 풀어내고 있다. 

위력 성폭력 생존자의 두 번째 말하기와 우리들의 이어 말하기

페미워커클럽 멤버들은 책에 대한 소감을 나누기 위해 감정 카드를 활용하기로 했다. 각자 감정 카드를 두 장씩 뽑아 실타래처럼 얽힌 생각을 풀어내는 실마리로 사용했다. 
 
 한국여성노동자회 회원소모임 '페미워커클럽'의 <김지은입니다> 북세미나 중
 한국여성노동자회 회원소모임 "페미워커클럽"의 <김지은입니다> 북세미나 중
ⓒ 한국여성노동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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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뽑은 카드들은 이렇다 : "돌아버릴 것 같다", "빡빡하다", "무섭다", "걱정된다", "화가 난다", "불편하다", "찝찝하다", "어지럽다", "멍하다", "허전하다", "부끄럽다", "미안하다", "궁금하다", "쉬고 싶다", "안아주고 싶다", "희망차다", "고맙다". 
멤버들은 각자 어떤 감정 카드를 뽑았고 왜 그 카드를 선택했는지 설명했다. 그러자 흩어져 있던 서로의 생각과 마음이 '우리들의 말하기'로 탄생했다.

우선 첫째로 <김지은입니다>가 직장 내 성폭력 혹은 위력 성폭력의 피해자인 노동자가 겪는 상황과 감정을 아주 세밀하게 묘사했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저자는 "나의 경험을 피해자의 언어로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싶었기 때문"에 글을 썼다고 밝힌다. 이렇게까지 자세하게 직장 내 성폭력 피해 생존의 서사를 마주한 적이 있었던가? 

미투 운동의 흐름 속에 언론에 피해 사실을 알린 뒤, 법정 공방으로 들어갔을 때 마주한 상황에 대한 구절, 재판 결과를 들으러 변호사 사무실로 가는 길에 다리가 후들거리고 걸을 수가 없었다는 구절을 읽으며 자신의 피해 경험과 과정이 생각나 매우 공감됐다는 멤버들이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성폭력 피해에 대한 자신의 경험과 주변 지인들의 경험이 겹쳐 보였기에, 책장을 넘기는 자체가 힘들었다는 이야기도 많이 나왔다. 집에서 혼자 책을 읽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피해 여성, 연대자와 함께 책을 읽는듯한 기분이 들었다는 소감은 과언으로 들리지 않았다.

두 번째 주제는 김지은이 처했던 노동환경이었다. 김지은은 주 130~140시간을 일했다고 한다. 살인적인 스케줄에도 불구하고 수행비서 매뉴얼에 의하면 수행비서는 아프지 말아야 했다. 수행비서가 한도 500만 원짜리 신용카드를 만들어 도지사와 가족이 그때그때 원하는 음식과 물품들을 개인적으로 구매해야 했고 이런 구매에 들어가는 돈은 누구에게도 받을 수 없었다. 이런 극한의 노동환경을 책에서 확인하고 우리는 분노했다. 

일터와 개인 삶의 경계가 무너지고 조직과 인사결정권자의 논리에 절대적으로 흡수되는 노동환경 자체가 이미 폭력적이었다는 점에 모두 동의했다. 정치판의 특수성과 억압적인 조직 논리는 안희정 캠프에서 외친 "조배죽(조직을 배신하면 죽는다)"이라는 건배사를 통해 상징화된다. 

위계와 억압이 강력한 정치계 일터에서 동료의 성폭력 피해에 연대하고자 나선 김지은의 동료들이 새삼 더 대단해 보인다는 이야기도 나눴다. '정치권에 온 이상 한번 눈 밖에 나면 다시는 어느 직장도 쉽게 잡지 못한다'는 말이 일상이었을 그곳에서 김지은을 위해 증언해준 동료가 있어 이 사회의 희망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안희정을 도와준 사람들은 높은 자리를 하나씩 차지한 걸 보며 공포감을 느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김지은은 책에서 "불공정함을 바로잡고 약자를 보호하는 세상을 만드는 곳이 더없이 세상의 부정과 불의를 함축하고 있었다"라고 말한다. 

정의로운 가치를 수호하고 주장하는 조직에서 그 내부의 부정의한 부분이 드러났을 경우 우리는 어느 위치에 있을 것인가? 이제까지 밖으로 보이는 대의명분만을 중심으로 사고하면서 '성평등'과 같은 중요 가치를 부수적인 것으로 취급해온 한국 진보사회 조직 문화가 이제는 그 한계에 다다랐음을 지적했다. 여성주의적 가치관으로 내가 속한 곳의 일과 문화를 비춰보고 계속 변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지은입니다>에 공명하는 우리, 변화를 만들어가는 주체
 
 한국여성노동자회 회원소모임 '페미워커클럽'의 <김지은입니다> 북세미나 중
 한국여성노동자회 회원소모임 "페미워커클럽"의 <김지은입니다> 북세미나 중
ⓒ 한국여성노동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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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로는 성폭력 피해자를 배려하지 않는 사회에 대해 이야기했다. <김지은입니다>에 의하면 기자들은 김지은이 편안히 쉴 수 없을 정도로 김지은에게 연락했고, 사생활 침해와 2차 가해를 우려해 전면 비공개로 진행했던 2심 재판의 판결문은 유출됐다. 게다가 피고인의 부인은 페이스북에 허위사실을 유포하며 피해자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드는 데 적극적으로 동조했으며 사람들은 '피해자답지 않다'고 재단하기에 바빴다.

우리는 언론도 법원도 일방적으로 피해자를 비난하는 사람들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대법원 유죄 판결이 있고 나서도 한국 사회는 김지은을 배려하지 않았다. 

한 멤버는 사람들이 피해자의 증언이 사실임을 인정하는 대신 피해자가 '피해자가 된 이유'를 두고 여가부나 여성단체를 호명하며 책임을 묻는 게 황당했다고 말다. 젠더 폭력은 사회 전체가 관심 가져야 하는 문제이며, 이미 여성단체들은 지속적으로 피해자 연대 성명을 내며 불합리한 법원 판결에 규탄했는데도 말이다. 

사람들이 여성 비서를 뽑지 않아야 한다는 일명 '펜스룰'을 주장하는 흐름과 '자기 딸은 이런 일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하면서도 방관자적 태도를 취하는 자들을 떠올리며 같이 깊은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최근 안희정 모친상에 대통령과 정치인들이 조화를 보낸 것과 성폭력 진상 규명 없이 박원순 장례가 서울시 주관 아래 오일장으로 이뤄진 것도 혹자는 '왜 여성들은 그렇게 예민하냐, 망자에 대한 인간적 도리일 뿐이다'라고 둘러댄다. 하지만 정치계와 일부 진보 인사들의 행보가 성폭력 피해자를 투명인간 취급하는 행태와 맞닿을 수 있다는 점을 자각하지 못하는 이 사회에 분노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더 많은 사람이 <김지은입니다>를 읽고 성평등의 감수성을 끌어올려야 한다. 그것이 피해자에게 연대하는 실천의 한걸음일 수 있다. 
 
 한국여성노동자회 회원소모임 '페미워커클럽'의 <김지은입니다> 북세미나 중에서. 멤버들이 책을 읽고 느낀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뽑은 카드 중 '고맙다', "안아주고 싶다"라는 카드가 눈에 띈다.
 한국여성노동자회 회원소모임 "페미워커클럽"의 <김지은입니다> 북세미나 중에서. 멤버들이 책을 읽고 느낀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뽑은 카드 중 "고맙다", "안아주고 싶다"라는 카드가 눈에 띈다.
ⓒ 한국여성노동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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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주제는 김지은에 대한 연대와 고마움이었다. <김지은입니다>에는 성폭력이 여성에게 '보통의 경험'임을, 그만큼 만연하고 심각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페미워커클럽 멤버들도 살아오면서 여러 종류의 성폭력을 경험했다. 그래서 우리는 김지은이 고맙고 김지은에게 미안하다. 성폭력 사건을 공론화한 경험이 있는 멤버는 김지은이 지지자들과 연대하기 위해 피해 사실을 복기하는 일 자체가 힘들었을 것임을 짚었다.

김지은은 숨어 지낼 수밖에 없는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해 용기를 내어줬다. 우리는 김지은을 통해 성폭력 생존자의 말하기를 배웠으며, 그의 말하기에 연대하는 법을 오늘도 배운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함께 말할 것이라 다짐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김지은의 상처가 치유되기를 김지은이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기를 바란다. 김지은이 피해자가 아닌 김지은으로 살아갈 수 있게 그의 곁을 함께 지킬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마라 님은 한국여성노동자회 회원소모임 <페미워커클럽>의 멤버 입니다. <페미워커클럽>은 매달 1-2회 온/오프라인 모임을 열어 영화/전시/공연 감상, 북세미나 등 함께 즐기고 비평합니다. 참가를 원하는 분은 한국여성노동자회 이메일(kwwa@daum.net)로 문의해주세요.

* 직장 내 성희롱 및 여러 노동 성차별에 대한 상담이 필요하시면 한국여성노동자회 평등의 전화 : 전국공통 1670-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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