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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토부가 동서울~지리산 성삼재 시외버스 노선을 인가하면서 구례 군민들이 분노를 표출하며 버스의 운행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환경 오염을 걱정하고 어떤 이들은 지역 경제의 악화를 걱정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구례 사람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외래식물을 제거하는 지리산 국립공원 자원활동가들
 외래식물을 제거하는 지리산 국립공원 자원활동가들
ⓒ 임세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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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이후 여순 항쟁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황폐화된 지리산을 지키기 위해 구례 사람들은 연하반 산악회를 조직하여 등산로를 개척하고 정비했으며 이정표를 설치하고 샘물을 발굴하는 등의 활동을 벌였습니다.

만약 당시 연하반 산악회의 이런 활동이 없었으면 지금의 등산 지도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고 산행 시 가장 중요한 샘물을 구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무분별한 지리산 도벌 현장을 목격하게 됩니다. 광복과 전쟁을 거치며 피폐했던 시절, 전국적으로 벌목이 빈번하게 일어났던 것입니다.

무차별적인 도벌 현장을 목격한 구례 사람들은 국립공원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1964년 3월 구례 연하반 산악회와 구례 사람들은 군민대회를 열고 '지리산국립공원 추진 위원회'를 결성하여 국립공원 추진 운동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당시 구례군 인구는 약 8만 명, 호구 수는 1만 2000가구였는데 농촌의 경제 사정이 매우 어려운 때였으나 극빈자 2000가구를 제외한 1만 가구의 회원들이 가구당 10원씩의 회비를 자진 납부하여 10만 원의 활동 기금을 마련하는 등 온 군민의 열성이 표출되었습니다.  

이런 구례 군민들의 열성적인 참여로 드디어 1967년 12월 29일 국립공원 제1호로 지리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구례 사람들의 땀으로 만들어진 지리산 국립공원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공원인 지리산 국립공원 지정에 가장 큰 공헌을 한 구례 사람들은 이후에도 끊임없이 지리산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구례 사람들로 구성된 국립공원 자원활동가들은 매달 환경 정화 활동을 벌였으며 노고단에 야생화가 필 시기에는 야생화를 뒤덮고 있는 외래식물을 제거하는 활동을 벌였습니다.
  
이러한 활동 덕분에 여름철 노고단에 오른 사람들은 원추리꽃, 일월비비추 등 많은 야생화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지리산 노고단에 핀 원추리꽃
 지리산 노고단에 핀 원추리꽃
ⓒ 임세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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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노고단에 핀 일월비비추
 지리산 노고단에 핀 일월비비추
ⓒ 임세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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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세조 2년 이전까지 노고단에서 지냈던 남악제례를 이어 해마다 4월 중순 경 화엄사 입구에서 남악제례를 지냅니다. 우리나라에서 규모가 가장 작은 구례군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지역에 사는 구례 사람들이 매년 모여 '국태민안 - 나라는 태평하고 백성은 평안하다'를 주제로 지리산 남악제를 지내고 있습니다.
 
 지리산 남악제 제례행렬
 지리산 남악제 제례행렬
ⓒ 임세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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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평범한 구례 사람들이 지킨 지리산 노고단은 여름 휴가철에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힐링 명소가 되었습니다.
 
 지리산 노고단 탐방로를 걷는 사람들
 지리산 노고단 탐방로를 걷는 사람들
ⓒ 임세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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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그중에서도 노고단은 평범한 구례 사람들의 설움과 한 그리고 열정이 꽃으로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밭입니다.

이런 자부심을 마음속 깊이 간직한 구례 사람들이 입은 상처를 치유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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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를 읽어주는 윤서아빠 임세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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