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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가 시작되면서 집밥이 늘고 있습니다. 집밥 노동을 포함, 요즘 벌어지는 주방의 변화를 '나의 주방이야기'로 다뤄봅니다.[편집자말]
내 그럴 줄 알았다. 이 넓디넓은 지구상에 밥하다 미친 여자 하나쯤은 있을 줄 알았다. '서프라이즈', '차트를 달리는 남자' 같은 프로만 봐도 별별 일이 다 있던데, 내가 몰라 그렇지 밥하다 미친 여자가 어딘가에 있을 것 같았다.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에 의하면, 실제 외국의 한 농가에서 어떤 부인이 일꾼 대여섯 명의 식사 준비로 하루를 다 보내다가 어느 날 오후 조용히 미쳐버렸다는 얘기가 나온다. 정신병원으로 가는 마차에 타서 그 부인은 이렇게 되뇌었단다.

"인부들이 20분 만에 싹 먹어치웠어. 20분 만에 다 먹어치웠어."

내가 이 같은 일이 있을 것 같다고 확신한 것은 나 역시 그녀의 마음을 천 번 만 번 이해하기 때문이다. 고작 20분이면 끝날 행위를 위해 온종일 수고로움을 감내해야 했던 그녀의 허무함. 나 역시 하루를 되돌아봤을 때 삼시 세끼 밥 한 기억밖에 없을 때의 그 기분이란, 조용히 미쳐가는 그녀의 마음과 비슷했을 것이다.

돌아서면 밥밥밥
 
하루도 빠짐 없이 해대는 밥  코로나 19에 장마까지 겹치자 밥 하는 일에서 탈출하고 싶어진다.
▲ 하루도 빠짐 없이 해대는 밥  코로나 19에 장마까지 겹치자 밥 하는 일에서 탈출하고 싶어진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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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이후, 아이들의 삼시 세끼를 챙겨 왔다. 배달음식을 좋아하지 않고, 같은 반찬이 연이어 나오는 걸 싫어하며, 식성이 완전 극과 극인 까탈 남매를 둔 죄로 나는 매일 밥하는 데 상당 에너지를 소진해왔다.

글을 쓰다가도 책을 보다가도 일하다가도, 밥 때가 되면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오늘은 뭐 해 먹나' 두뇌 회로를 돌려 하루 세 번 강제적 요리를 해내야만 했다. 오죽하면 '돌아서면 밥을 한다'는 신조어 '돌밥돌밥'이 생겼을까.

자취 때부터 지금까지 20년 넘게 해온 요리지만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매일 냉장고 문을 열어 어떤 요리를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일은 즐거움이 아닌 피곤함에 가깝다.

어렵지 않게 한 상 뚝딱 차려 내는 엄마들을 보면 진심으로 존경스럽다. 나의 요리는 시작부터 끝까지 무척 부산스럽다. 그에 비해 결과물은 너무 초라하다. 요리 재능은 애초부터 없는 것 같다.

재능은 그렇다 치고 나는 요리에 드는 공이 너무나 아깝다. 고작 한 끼를 위해 상당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과연 마땅한 일인가 싶다. 아이들이 잘 먹어라도 주면 다행이지만 그 역시 복불복이다. 나름 정성껏 차렸는데 깨작대는 아이들을 보면 마음속으론 몇 번이고 밥상을 엎었다. 아무리 따져봐도 비효율적인 가사노동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그래서 나는 밥 프리선언을 했다. 한 끼 굶으면 큰일 나는 줄 알고 어딜 가더라도 햇반만큼은 목숨처럼 챙겼던 지난날의 나 자신에게 사표를 냈다. 밥하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고 내 시간을 확보해야겠다고 결심했다. 하루 종일 가족을 위해 이 한 몸 애쓰는 내게 밥으로부터의 자유는 선택사항으로 둬도 되지 않을까?

나는 남편과 아이들에게 아래 내용을 선포했다.

- 밥투정하지 마라.
- 먹기 싫으면 안 먹어도 된다. 대신 새로 차리는 일은 없다.
- 먹고 싶은 메뉴는 미리 얘기해라. 밥하는 중간에 말하면 소용없다.
- 다 먹은 밥상은 본인이 치워라.
- 하루 한 끼는 간편식으로 대체한다.


진지한 내 결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들 건성으로 알겠다고 답했다 이렇게나 쉽게 수긍할 일인가 싶으면서도, 그간 나 혼자 끙끙대온 기분이 들어 맥이 좀 빠졌다.

"밥 하기 싫다"는 말 대신

사실 한국인만큼 "밥", "밥" 거리는 민족이 없다. 기본적인 인사부터가 밥 얘기다. "밥은 먹고 다니니?", "아파도 밥은 챙겨 먹어", "다음에 내가 밥 살게" 등등. 거의 모든 얘기가 기승전 밥이다. 한국인이 밥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얼마 전 어깨 수술을 하신 어머님께 찾아뵈러 간다고 전화를 드리니 어머님이 그러셨다.

"내가 지금 팔을 못 써서 와도 밥 못 챙겨줘. 그러니 오지 마."

문병차 어머님을 뵈러 가는 건데 밥을 못 해주니 오지 말라니. 내가 해도 되고, 외식을 해도 되고, 시켜먹어도 되는 일인 것을. 무조건 본인이 해먹여야 옳다고 생각하는 부모님의 마음이 안쓰러운 동시에 안타까웠다. 엄마들의 밥 인생, 이젠 정말 프리 선언해도 되지 않을까?

아이들은 밥만 먹고 자라지 않는다. 엄마의 웃음을 먹고, 엄마의 행복을 먹고, 엄마의 말을 먹고 자란다. 밥하기 싫은 나 같은 엄마들이 갖다 붙인 말일지라도 더이상 난 밥에 연연하지 않으려 한다.

매일 입버릇처럼 하는 말, '밥하기 싫다' 대신 '오늘은 아메리칸 스타일로 빵?' 하며 아이들 앞에서 좀 더 행복한 엄마로 마주하기 위해서. 밥 독립운동가로부터.
 
 한 끼 시리얼도 좋다!
 한 끼 시리얼도 좋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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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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