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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일 오전 11시 고 박원순 서울시장을 기리기 위해 서울시청광장 내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의 표정은 어둡기만 했다.
 11일 오전 11시 고 박원순 서울시장을 기리기 위해 서울시청광장 내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의 표정은 어둡기만 했다.
ⓒ 조선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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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이 세상을 떠났다. 인권변호사를 거쳐, 1994년 참여연대를 설립하면서 시민운동에 투신했고, 2000년대에는 '아름다운 가게'를 설립하면서 사회적 기업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는 2011년 10월 재보궐 선거를 통해 정계에 입문했다. 안철수 현 국민의당 대표로부터 시장 후보직을 양보받기 전까지, 대중들 사이에서 박원순이라는 인물의 인지도는 매우 낮았다. 그러나 그는 역대 최장수 서울시장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그의 삶은 결코 예상할 수 없는 지점에서 끝났다.
 
전 비서 A씨의 성추행 혐의 고소가 접수된 다음 날인 7월 9일,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의 부고가 전해진 이후, 온라인 공간에서는 극과 극의 반응이 교차했다. 그의 10년 시정에 감사했다며 조의를 표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성폭력 가해자를 애도할 수 없다며 차가운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많았다.

서울시장의 장례식을 '5일장, 서울특별시장(裝)'으로 치르는 것을 반대하는 청원은 단숨에 20만 명을 돌파했다. 7월 10일, 한국성폭력상담소는 "과거를 기억할 수 없는 사람은 그 잘못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는 박원순 변호사의 말을 인용하면서, 5일장 반대와 피해자 연대를 주장했다.

고인은 누군가에게는 지지와 애정의 대상이었을 것이며, 자신의 영역에서 뚜렷한 업적을 남긴 인물이기도 했다. 황망함은 그에 비례한다. 영전에서 명복을 비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서 '무책임한 죽음'이라며 분노하고 실망하는 것 역시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이 죽음을 대할 자격이 있다.
 
국민들은 다시 한번 거물급 정치인의 극단적 선택을 마주하게 되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노회찬 전 의원이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시 이명박 정권이 가했던 전방위적인 압박에 시달렸다. 당시 유시민 작가는 '죽음의 원인 자체는 정치적인 죽음이나 죽음 그 자체는 지극히 인간적인 죽음'이라고 평가했다.

정치자금법으로 수사받다가 2018년 7월 세상을 떠난 노회찬 전 의원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유서에서 정치자금 수수에 대한 죄책감을 드러내는 한편, 청탁과 대가는 없었다며 마지막 항변을 했다. 그리고 정의당 당원들에게 앞으로 나아갈 것을 주문했다. 자신이 삶에서 높이 추켜들었던 가치, 도덕주의와 '정의'가 주는 무게감. 그것이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갔다.

그러나 이들과 박원순 시장의 죽음에는 차이가 있다. 바로 '피해호소인'이라는 맥락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는 피해호소인에게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세상을 등졌다. 항변을 하거나, 사과를 하지 않았다. 피의자 사망으로 인해 수사권은 종결되었고, 피해 사실을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회복할 기회는 사라졌다. 고인은 유서에서 '내 삶에서 함께 한 사람들'과 '가족'을 언급했으나 피해호소인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지난 2년 동안, 박원순 서울시장 이전에 안희정 전 충남지사,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성추문 폭로에 휩싸여 몰락했다. 2018년 3월 8일, 안희정은 김지은씨의 피해 사실 폭로가 전해진 당일까지 '성평등', '인권도정'을 논하고 있었다. 그러나 안희정이 보여준 성 인지 감수성은 참담했고, 충격은 컸다.

우리가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
 
 고 박원순 서울시장 빈소가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어 시민들이 조문하고 있다.
 고 박원순 서울시장 빈소가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어 시민들이 조문하고 있다.
ⓒ 사진제공 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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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시장의 경우 충격은 더욱 크다. 그는 오랜 시간 동안 여성 이슈에 관련하여 실질적 행보를 보여주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1986년 군사 정권 당시, 故 조영래 변호사와 함께 부천경찰서에서 벌어진 성고문의 피해자를 변론했다. 현재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인 권인숙 의원이 그 주인공이다.

고인은 90년대 한국 최초의 성희롱 소송 사건이었던 '서울대 우조교 사건'을 변론하면서 성희롱도 범죄라는 인식을 정립하기도 했다. 그는 그의 저서 <악법은 법이 아니다>에서 그의 변론 경험을 소개하면서 이러한 문장을 덧붙였던 바 있다.
 
"인간의 가치, 인격의 중함, 그것이 손상될 때의 아픔의 깊이를 헤아리지 못하는 세상은 우리가 살고자 하는 곳일 수 없다."(282쪽)
 
직장 내 성적 괴롭힘(sexual sexual harassment)의 개념을 국내에 도입하고, 1998년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받았던 인권 변호사 박원순. 그리고 가해지목인이 된 박원순 시장. 이 둘은 같은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다.

인간은 입체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그래서 혼란스러웠다. 이 사건이 다시 한 번 권력형 성범죄에 대한 경종을 울릴 수 있길 바라고, 한편으로 정치 혐오를 공고히 하는 촉매제가 되지 않길 바란다.
 
충격의 한가운데에서도, 우리가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권력형 성범죄'를 고발한 피해호소인에게 위로를 보내는 한편, 그를 지키는 일이다. 온, 오프라인 공간을 막론하고 펼쳐지는 모든 종류의 2차 가해를 막아야 한다. 함부로 '정치적 공작'을 운운하고 신상을 유출하거나, 피해자를 추측하는 일도 단호히 막아야 한다.

안타깝게도, 이미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발본색원을 해서 고소인을 찾아내자'는 게시물이 종종 등장하고 있다. 가해지목인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인해 수사는 시작도 못 하고 끝났다. 피해호소인은 고소장을 제출한 날 이후 그 이상으로 고통스러운 밤을 보냈을 것이다. 우리는 그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고인이 말했던 '인격의 중함'을 아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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