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 포스터

영화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 포스터 ⓒ 그린나래미디어(주)

 
여성이 승진하기 위해 상사에게 잠자리를 제안받는다면? 잠자리를 제안받은 여성이 부당하고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수긍한다면? 이런 일이 실제 있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슬프게도 한 방송사에서 벌어진 일이다.

영화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은 폭스뉴스의 회장 로저 에일스(존 리스고)의 성적 농담과 섹스 스캔들을 폭로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상사의 잠자리 제안을 거절하면 좌천당하거나 다시는 방송계에 발도 들일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앞에 여성들의 선택권은 많지 않아 보인다. 성공이라는 목표 앞에 여성의 불안감을 좀 먹고 자란 더러운 권력은 그동안 사회 중요 자리를 차지해왔다. 

영화 제목인 '밤쉘'은 다중의 뜻을 가지고 있는데 폭탄선언, 놀랍고도 충격적인 이야기, 매력적인 미녀를 지칭한다. 영화는 빠른 템포와 엄청난 지식의 향연, 수많은 인물들로 채워지며 폭스뉴스의 분위기를 전달하는데 성공한 듯 보인다.

'미투 운동'의 트리거 된 성희롱 사건

"네 충성심을 증명해 봐"라는 폭스뉴스 회장 로저의 말에 수많은 여성들은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이 스캔들은 당시 미디어계 최초의 직장 내 성희롱 사건으로 알려졌는데 하비 와인스타인 사건(하비 와인스타인은 할리우드 제작자로 일하면서 다수를 상대로 성추행과 성폭행을 저지른 혐의를 받았다)보다 앞서 일어났다는데 주목 할 필요가 있다. 이후 일어나는 '미투(Me too) 운동'의 트리거가 되기 때문이다.

영화는 실존 인물과 가상의 인물을 조합해 실화의 무게감을 더한다. 세 여성의 존재는 폭스뉴스에서 떠올랐다 사라졌던 수많은 여성들을 대변한다. 메긴 켈리(샤를리즈 테론)는 높이 떠 있는 별, 그레천 칼슨(니콜 키드먼)은 지는 별, 케일라 포스피실(마고 로비)은 떠오르는 별이다.
 
 영화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

영화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 ⓒ 그린나래미디어(주)

 
러닝타임 내내 세 여성은 자신들이 느끼는 부당함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먼저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트럼프와 설전을 벌인 폭스뉴스 간판 앵커 메긴 켈리의 상황. 로저가 방패막이가 돼 줄 것 같았지만 그는 어떻게든 자신을 이용하기 바빴다. 간판앵커인 메긴 켈리는 대선의 가십거리로 전락하며 신변의 위협마저 느낀다.

한편, 한때 잘 나갔으나 지금은 좌천된 폭스뉴스의 또 다른 앵커 그레천 칼슨은 조심스럽게 고소를 준비하고 있다. 언론 권력의 제왕이라 불리는 로저를 상대로 한다는 건 계란으로 바위치기. 그를 무너트릴 수 있는 방법은 소리소문없이 자료를 모으는 것뿐이다.

마지막으로 폭스뉴스에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나 야망이 큰 젊은피 케일라 포스피실은 로저의 방에 들어갔다가 봉변을 당한다. "너는 TV 상품이야"라며 치마를 들어 올리게 해 수치심을 유발하는 장면은 권력의 추악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렇게 세 여성이 지니고 있는 폭탄은 언제 터져도 이상할 것 없이 계속해서 과열되고 있었다.

일하기 위해 자신을 버려야 하는 여성들
 
 영화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스틸컷

영화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주)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앵커들의 대기실을 보여줬을 때다. 발 뒤꿈치에 피가 날 정도의 킬힐을 신고, 몸매 교정 속옷을 착용하고, 짧고 깊게 파인 의상으로 치장하는 앵커들의 대기실에선 바지를 입지 못한다. 여성을 성상품화해 시청률을 올리려는 폭스뉴스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폭스뉴스 여성들은 일하기 위해 자신을 잠시 잃어버려야 했다. 여성들은 신체 노출 강요에 심리적 압박을 받고 신체를 구속당한다. 마치 자신의 몸이 폭스뉴스의 재산인 것처럼 말이다. 정체성과 정치색도 숨겨야 했던 수많은 일화는 케이트 맥키넌이 맡은 제스를 통해 대변되기도 한다.

영화는 세 여성이 폭스에서 겪은 부당한 처우를 다룬다. 그리고 그 부당함을 개선하기 위해 연대하는 모습까지. 

이 영화를 본 당신이 용기를 내야 할 이유는 아직도 이런 일들이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나 혹은 나와 가까운 지인 그 누군가에게 부메랑처럼 돌아올 수 있는 일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부당하다고 느꼈을 때 참지 않고, 혼자 하기 힘든 일에 힘을 모으는 연대 의식이 필요하다. 당신의 침묵이 누군가의 상처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자성해야 한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다윗이 골리앗을 이길 수 있는 유일무이한 방법이기도 하니 말이다.
밤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보고 쓰고, 읽고 쓰고, 듣고 씁니다. https://brunch.co.kr/@doona90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