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에서 폭스의 스타 앵커인 메긴 켈리(샤를리즈 테론·왼쪽)는 폭스 회장 로저 에일스가 성희롱으로 소송을 당하자 고민하기 시작한다.

영화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에서 폭스의 스타 앵커인 메긴 켈리(샤를리즈 테론·왼쪽)는 폭스 회장 로저 에일스가 성희롱으로 소송을 당하자 고민하기 시작한다. ⓒ 씨나몬(주)홈초이스

 
2017년은 여성들의 목소리로 기억되는 한 해였다. 할리우드 거물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범죄가 폭로되면서 가려져 있던 많은 것들이 터져 나왔다. 여성들은 트위터에 #MeToo(미투)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성희롱·성폭력 피해 경험을 꺼내기 시작했다. 하나둘 모인 목소리는 운동이 되었고 세계 곳곳에서 여성들은 일어났다.
 
하지만 미투라는 용어가 나오기 약 1년 전 남성 권력에 저항한 여성들이 있었다. 영화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감독 제이 로치)에 등장하는 미국 방송사 폭스(Fox)의 여성들이다.

그래천 칼슨(니콜 키드먼)이 남성 출연진과 진행한 방송 장면. "남성들이 우월하다는 발언을 정정해볼래요?", "날 계집애라고 부른 거 인사팀에 찔렀어요." 칼슨은 방송에서 남성들과 맞섰다. 하지만 돌아온 건? 시청률이 낮은 오후 시간대로의 좌천. 칼슨은 폭스 회장 로저 에일스(존 리스고)에 항의했지만 소용없었다. 로저는 칼슨이 자신에게 저지른 성희롱 등으로 고소한다.

폭스의 또 다른 앵커 메긴 켈리(샤를리즈 테론). 그는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선 도널드 트럼프와 TV토론에서 설전을 벌여 유명해졌다. 당시 트럼프에게 던진 멘트는 "당신이 좋아하지 않은 여성들을 뚱뚱한 돼지, 개, 게으름뱅이 그리고 역겨운 동물들로 불러왔습니다." 그 정도로 자신감 있는 켈리는 칼슨의 성희롱 소송 소식을 듣고는 망설인다.

거대 남성 권력과 맞서는 여성들의 이야기
 
 그레천 칼슨(니콜 키드먼)은 폭스 회장 로저 에일스에게 성희롱을 당했다고 소송을 건다.

그레천 칼슨(니콜 키드먼)은 폭스 회장 로저 에일스에게 성희롱을 당했다고 소송을 건다. ⓒ 씨나몬(주)홈초이스

 

도전적이고 당당한 여성들이 거대 남성 권력과 맞서는 이야기. 방송국에서 멋지게 일하고 싶은 여성들의 꿈을 볼모로 성희롱을 일삼는 권력을 향해 '엎어치기 한 판'을 시도하는 영화. 칼슨과 켈리의 실화가 바탕이다.

미투(Me Too) 이후 사회의 여러 영역에서 부조리한 일을 겪은 여성들의 이야기가 꾸준히 터져 나왔지만 보고 들을 때마다 놀랍고 믿기지 않는다. 왜 폭스의 여성들은 회장과 단둘이 방에 있어야 했을까? 왜 방송 중에는 다리가 훤히 보이는 몸에 딱 달라붙는 원피스를 입어야 했을까? 자, 이게 현실이라면 꼭 바꿔야 한다.

보통의 작품이었다면 에일스를 고소한 칼슨에게 포커스가 맞춰졌을 것이다. 하지만 <밤쉘>에서는 켈리의 비중이 높다. 그는 황금시간대를 맡은 앵커다. 유명하다. 힘도 있다. 그런데 칼슨의 성희롱 소송 소식 앞에서는 고민한다. 오래전 내가 당했던 일이 아직도 일어난다고? 그렇다면 나는 나서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나선다면 내가 지금까지 이룬 업적은 어떻게 되는 걸까.
 
 영화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의 한 장면.

영화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의 한 장면. ⓒ 씨나몬(주)홈초이스

 
영화가 물었다. 당신이라면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 대다수가 침묵하고 있을 때 당신은 '아픈 소수'가 될 것인가. 아니면 '침묵하는 다수'가 될 것인가. 답은 명확하다.

저항하라. 선택이 어렵다고? 침묵을 깨뜨린다면, 동료의 손을 잡는다면, 당신은 '힘 있는 다수'가 될 수 있다. 미국 미디어 산업 최초 직장 내 성희롱 소송을 한 사람은 칼슨이었지만 그 어려웠던 시작을 뜨겁게 달궈줄 주변 사람들의 역할이 있어야 한다. 시동을 켠 엔진이 달궈지기 위해서는, 동료가 필요하다. 세상의 작은 변화라도 혼자서는 해낼 수 없다.
 
자, 영화 속 여성들의 노력은 어떤 결실을 보았을까. 일단, 몸에 딱 달라붙는 원피스를 입던 여성 직원들이 긴 바지를 입기 시작했다.

109분. 15세 이상 관람가. 8일 개봉.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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