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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4년 조금 넘은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했다. 두 아이가 4살, 6살이 되니 비로소 나도 출근길에 다시 오르게 된 것이다. 애 둘 키우면서 육아휴직 하는 동안 남편의 출근길이 얼마나 부러웠던지. 드디어 나만의 출근길이 생겼다! 신난다!

하지만 딱 3일 설렜다. 곧 복직을 후회했다. 정신없이 바빴기 때문이다. 아침 시간이 제일 바빴다. 식사 시간은 예전보다 한 시간 당겨졌다. 온 가족이 촉박하게 산다. 애들도 예외 없다. 엄마 휴직 동안에는 느즈막히 일어나서 이불에서 뒹굴거리고, 그림책 읽다가 배고프면 밥을 먹던 녀석들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이제 밥 먹으면서 머리 빗고, 바지 입고, 양말 신는다.

복직 이후 우리 가족은 부지런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됐다. 늑장 부리는 순간 지각이니 어쩔 수 없다. 아침에는 바쁘고 저녁에는 소진됐다. 나는 퇴근하면 밥 먹고 누워 '30대 오피스룩'이나 '예쁜 실내화' 따위를 검색하며 피로를 풀었다. 스트레스를 잔뜩 받아 피곤한 상태에서 쇼핑창을 유영하면 코르크 밑창을 가진 폭신한 실내화가 나를 행복하게 해줄 것만 같다.

외벌이 때는 없던 쇼핑 일상이다. 돈을 아끼려고 쇼핑 욕구를 억누른 게 아니라, 물건에 관심을 잃었기 때문이다. 3년째 입던 바지에 셔츠만 걸친다 해도 독서모임 가면 책 수다로 기분이 좋아지는데 구태여 물건 살 일이 없었다. 자연스레 돈 쓸 일이 덜했다. 먹는 데 쓰는 돈도 작고 귀여웠다. 4인 가족 하루 식비 15000원이면 한 달을 족히 잘 먹고 잘 놀았다.

휴직 동안 나는 최소한으로 소비하는 즐거움을 깨달았다. 공원에서 산책하는 법과 독서에 재미를 붙였다. 더 이상 집안일도 미워하지 않았다. 빗자루로 방을 쓸고, 빨래 건조대에 빨래를 널며, 직접 밥을 한 후 먹은 그릇을 뚝딱 설거지하는 사람이 됐다. 그러니 적은 돈으로도 충분히 먹고 살았다. 집안일은 '가사노동'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이 으레 하는 '생활'의 일부이자 경제적 자립의 기초였다.

게다가 외벌이 기간 동안 우리 부부는 더 많이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살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한 순간이 육아 휴직 기간이었다. 생각하는 대로 살 수 있어 신이 났다. 스트레스가 거의 없었다. 32년 생애 최고의 황금기였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퇴근 후 쇼핑한다 해서 예전처럼 이완될 수 없었다. 외벌이 동안 여유와 사유의 세계에 살았던 탓에, 맞벌이의 탁한 일상을 재빨리 눈치챘다. 맞벌이를 하면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어 경제적으로 여유롭지만 몸이 힘들어 읽고 쓸 시간이 줄었다.

한 달에 딱 한 번 월급날에 반짝 기분 좋았다. 일상이 꾸준하게 불행했다. 삶은 정상궤도에서 이탈했고 아이들을 재우는 밤이면 파김치가 된 채 외벌이 시절을 그리워했다. 

삶을 정상궤도로 돌리기 위한 노력
 
 쇼핑창을 닫고 냉장고 지도를 그렸다. 종이에 식재료를 적어내려가며 다짐했다. 나는 앞으로 가열차게 집밥하겠노라고.
 쇼핑창을 닫고 냉장고 지도를 그렸다. 종이에 식재료를 적어내려가며 다짐했다. 나는 앞으로 가열차게 집밥하겠노라고.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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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다는 걸 눈치채자 오기가 생겼다. 내가 뭣하러 고통스러워야 하나. 휴직 기간에 깨달았던 최소한의 소비의 즐거움을 다시 실천해 보기로 했다.

일단 쇼핑부터 멈췄다. 더 많은 물건을 가진다 해서 더 즐겁지 않다. 무엇보다 돈 쓴만큼 다시 돈 벌어야 한다. 나는 소비하기 위해 맞벌이를 시작한 게 아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 열심히 일해서 경제적으로 더욱 단단해지기 위해 일터로 돌아온 것이지 고작 쉬폰 블라우스 때문은 아니다.

고작 쉬폰 블라우스 때문에 어린 두 아이 새벽에 깨워가며 밥에 김을 싸먹여야 한다면, 차라리 나는 일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먼 미래의 경제적 안정감만을 위해 매일 힘들면서 월급날만 반짝 기쁘게 살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경제적 풍요와 여유를 모두 갖고 싶었다. 가능할까? 가능하다. 해보니 그렇다. 

집밥을 리트머스지처럼 쓰기로 했다. 집밥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고단한 삶이라면 그건 내 삶이 뭔가 잘못된 것일 테다. 그러나 퇴근 후에 쌀 안치고 국 끓일 수 있는 저녁이라면 일과 삶의 균형이 잘 잡혔다는 증거로 삼을 수 있다. 덜 피곤하고 스트레스가 없어야 치킨을 주문하는 대신 된장찌개를 끓일테니까 말이다.  

결심했다. 외벌이 때처럼 하루 식비 15000원으로 살자고 말이다. 일단 부스스해진 머리를 묶고 식탁에 앉았다.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냉장고 지도(가진 식재료를 종이 한 장에 정리하는 것) 그리기였다.

종이와 펜을 준비했다. 그리고 냉장실과 냉동실, 찬장에 있는 식재료를 모두 살핀 후, 종이 한 장에 다 적었다. 정리한 냉장고 지도를 투명 테이프로 냉장고 문에 붙였다. 냉장고 문에 붙은 종이 한 장 속에 빼곡히 적힌 식재료들을 빤히 들여다봤다. 그리고 다짐했다. 나는 이 재료들로 집밥을 해 먹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집밥 할 시간과 체력을 마련해야 했다. 그래서 퇴근 후 자투리 시간들을 모았다. 요리 시간을 줄이기 위해 '셀프 밀키트'를 만들었다. 국이 끓는 동안 도마에 당근 하나를 삼등분 했다. 그리고 채썰고, 깍둑썰고, 다졌다. 샐러드와 카레, 계란말이에 쓸 재료를 미리 다듬은 것이다. 당근 뿐만 아니다. 당근에서 양상추, 당근과 호박까지. 요리 중 틈날 때 재료를 조금씩 다듬어 밀폐용기에 미리 넣어두니 조리 시간이 크게 줄었다.
 
 틈 날 때 식재료를 다듬고, 소모적인 어플리케이션을 지웠다. 집밥 할 시간과 체력이 났다.
 틈 날 때 식재료를 다듬고, 소모적인 어플리케이션을 지웠다. 집밥 할 시간과 체력이 났다.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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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어플리케이션을 지웠다. 나는 웹툰과 뉴스에 중독된 채 살고 있었다. 빨래 한 번 널고 와서 주저 앉아 웹툰 한 편. 애 둘 머리 감기고 나와 뉴스가 닳아 없어질 때까지 랭킹 뉴스들을 훑었다. 하지만 핸드폰을 식탁에 놓고 나면 내가 뭘 봤는지조차 잊어버렸다. 충분히 쉬는 기분도 안 났다. 도리어 틈새 여가라 생각했지만 어지러운 댓글 속에 몸과 마음이 소진되기 일쑤였다.

결국 웹툰과 블로그, 브런치, 그리고 포털 어플리케이션을 삭제했다. 이어서 저녁 시간의 기적이 일어났다. 약간 심심할 정도로 여유가 생긴 것이다. 웹툰을 볼 때는 30분도 짧았지만, 오프라인 세계에서 30분 동안 할 수 있는 일이 많았다. 설거지를 후다닥 하고 빨래를 갰다. 아날로그 세계의 시간과 디지털 세계의 시간 감각이 달랐다.

맞벌이 부부도 절약이 가능할까? 내 대답은 '가능하다'다. 소모적인 것들을 내려놓으니 가능했다. 집밥은 어렵지 않았다. 복직 후 5개월째지만 여전히 하루 식비 15000원으로 먹고 산다. 집밥뿐만 아니다. 손빨래도 하며 살고, 상추 씨앗도 뿌렸다. 아이들이 잠들고 나면 책 읽고 글을 쓰며 나만의 시간을 누렸다.

절약에서 비롯되는 경제적 풍요와 여유 그리고 사유

나도 몰랐다. 맞벌이를 하면서도 식비 15000원을 고수하며 살게 될 줄 말이다. 사실 식비뿐만 아니다. 생활비(의류비, 의료비, 잡화비, 교통비, 여가비, 유류비)도 하루 15000원으로 산다. 씀씀이가 외벌이 때와 같다. 

더 억척스럽게 살게 되었을까? 그렇지 않다. 아마 내가 반찬 가게를 이용함으로써 가사 노동 시간을 절약했다면, 혹은 의류 건조기를 들여 빨래 너는 시간을 절약했다면, 나는 남는 시간 동안 무엇을 했을까?

아마도 휴대폰을 붙잡고 있었을 것이다. 오히려 집밥을 하기 위해 밀키트를 만들고 온갖 어플리케이션을 지우고 난 뒤, 나는 아이들 눈을 더 자주 맞추는 다정한 엄마 노릇을 할 수 있었다. 

외벌이처럼 절약한다는 것은 외벌이 시절의 여유와 사유를 놓치지 않게 되었다는 의미다. 바쁘고 지친 사람은 절약하기 어렵다. 몸과 마음이 편안해야 절약도 잘 한다. 

물론 이 글을 읽는 분들과 내 가족이 처한 상황은 모두 다 다를 거다. 자녀 수나 성별도 다르고, 출퇴근 거리도 다를 거다. 배우자의 성향이나 건강 상태, 혹은 나이나 직종도 모두 다를 거다. 또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절약은 돈이 넉넉해지면 궁극적으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일 거다. 

그럼에도 내가 나의 이 절약 경험을 굳이 나누고 싶은 이유는 절약이 때때로 우리 삶을 정상궤도로 돌려주기 때문이다. 나는 촌뜨기처럼 더 편리한 서비스나 기계를 누리지 않지만 그래도 좋다.

돈으로 삶의 문제를 해결하려 들 때보다 내 힘으로 살림과 육아를 돌볼 때 비로소 불안과 고통이 줄었다. 계좌에 저축할 여윳돈이 있도록, 빨래를 널 시간이 있도록, 조리대 앞에 설 시간이 있도록 하는 그런 삶의 정상화로서의 절약이라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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