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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이번에 정규직이 되었어요."

오랜만에 연락을 한 후배가 안부 인사를 나누던 끝에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반갑고 기뻤다. 그동안 후배의 행보를 어느 정도 알았기 때문이다.

15년 전 한 직장에서 일하다 만난 후배는 출산하고 나서 일과 양육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회사를 그만두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닐 무렵부터는 프리랜서로 일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다가 초등학생 학부형이 되면서 지금의 직장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한다는 소식을 2년 전에 들었던 터였다.

워낙 일을 잘하고 관계도 잘하는 현명한 친구였기 때문에 그런 재능과 능력을 회사에서 알아보는 게 당연하다 여겨졌다. 나로서는 너무나 잘 되었다 싶어서 호들갑을 떨면서 축하를 해주었다. 그런데 어쩐지 분위기가 이상했다.

"언니. 꼭 그런 것만도 아니에요. 우리 만나서 이야기해요."

정규직된 비정규직이 받아야 하는 차별
 
 혼자 속앓이를 하다가 참지 못해서 아마도 새벽에 교회를 찾았으리라.
 혼자 속앓이를 하다가 참지 못해서 아마도 새벽에 교회를 찾았으리라.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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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일주일 뒤, 후배와 점심 약속을 잡았다. 오랜만에 만났다는 반가움도 잠시. 후배는 예상 밖의 말을 쏟아냈다.

"언니, 저 정말 화병 나서 쓰러질 것 같아요."

그러면서 요즘 마음이 너무 괴로워서 새벽기도에 나간다고 했다. 늘 피곤에 찌들어 사는 걸 아는데 새벽기도라니. 새벽마다 무거운 몸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고민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물어보니 의외의 말들이 쏟아졌다.

얼마 전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이 된 후배는 내 예상대로 회사에서도 정규직 전환 1순위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 뒤였다. 비정규직일 때도 어느 정도의 조짐이 있기는 했지만, 정규직이 된 이후로 담당 부서 부장이 '나 덕분에 정규직이 되었으니 나한테 잘해'라는 무언의 압박을 계속 한다는 거였다.

후배가 다 해 놓은 일을 자신이 한 것처럼 둔갑시키기도 하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후배에게 다 떠넘기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났다고. 그 전에는 차마 양심상 못 시키던 일을 정규직이 되자마자 마음 놓고 시킨다고 후배는 말했다.

"정규직 시켜놓고 뽕을 빼려나 봐요. 월급도 정규직이 받는 것과 비슷한 수준으로 받을 수 없다고 해서 깎였는데."

대부분 박사 출신인 정규직 직원들이 학사 출신인 후배와 같은 월급을 받을 수 없다 해서 회사 내규에 없던 호봉까지 만들었다고 한다. 한 마디로, 박사인 내가 학사인 너와 같을 순 없다는 분명한 선긋기였다. 그렇게 차등을 주는 것이 당연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대학 졸업 후 현장에서 그 일을 전문적으로 하며 경력을 쌓아온 모든 시간과 경험은 그렇게 평가절하당했다. 게다가 후배는 어디 털어놓을 곳이 없어서 더 답답한 눈치였다. 그래서 나를 만난 날은 스트레스로 대상포진까지 왔다고 하면서도 2시간 내내 속사포 랩으로 속상함을 쏟아냈다. 그렇게 혼자 속앓이를 하다가 참지 못해서 아마도 새벽에 교회를 찾았으리라.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한 일이다. 실무의 경력과 전문성이 '박사'라는 타이틀에 가로막혀 월급을 차등해서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가 그렇다. 그들이 공부를 하는 동안 후배는 필드에서 열심히 경력을 쌓으며 일했다. 그런 시간들이 왜 공부한 시간보다 못하다고 평가되어야 하는지 지금도 이해하기 어렵다. 그 와중에 후배는 정규직이 되지 못한 비정규직 동료의 재계약을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비정규직 되고 보니 제일 원하는 건 고용안정
 
 인천국제공항공사노동조합 소속 조합원들이 25일 오후 서울 청와대 인근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비정규직 보안검색 요원들의 정규직 전환 관련 입장을 발표하며 손팻말을 들고 있다.
 인천국제공항공사노동조합 소속 조합원들이 25일 오후 서울 청와대 인근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비정규직 보안검색 요원들의 정규직 전환 관련 입장을 발표하며 손팻말을 들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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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인천국제공사 경비업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하는 문제로 말들이 많다. 관련 기사를 읽을 때마다 후배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가 떠올라 마음 한편이 불편하고 아프다. 고액 연봉에 정년까지 해고될 염려 없이 고용을 보장 받는 진짜 특권을 갖고 있지만, 업무적 생산성은 낮은 정규직들. 그 사이에서 비정규직이었던 후배는 일을 싸들고 퇴근하는 날도 많았고, 혼자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야근도 해야 했다.

그럼에도 후배는 "그래도 이제는 일 년마다 계약 갱신을 안 해도 된다는 건 좋아요. 보따리 장사를 안 해도 되잖아"라고 했다. 겨우겨우 정규직이 된 이후에도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지내며, 일을 두 어깨에 짊어지고 살면서도 후배에게 있어서 고용 안정은 그만큼 중요한 이슈였던 것이다.

"아무렴. 그렇지."

나도 10여 년을 넘게 고용 안정과는 거리가 먼 비정규직 방송작가로 일했기 때문에, 후배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하루 아침에 잘릴 수 있다는 사실, 내 일자리가 불안하다는 사실은 늘 땅 위에 발을 디디지 못한 채 붕 떠 있는 듯한 위태로운 느낌을 준다.

정규직일 때는 나도 몰랐다. 비정규직이 되고 보니, 불안은 일상을 시시때때로 흔든다. 본연의 업무는 물론이고, 허드렛일도 해야 하고, 내 일자리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피디들의 비위를 맞출 수밖에 없다. 노동의 강도는 세지면서 피로도는 높아진다. 마음도 늘 긴장 상태다. 특히 6개월에 한 번씩 찾아오는 개편 때가 되면 최고조에 이른다.

일을 할 만하면 타의에 의해 기회가 박탈당하기도 한다. 청취율이나 시청률이 떨어지거나 프로그램 분위기 쇄신이 필요할 때, 혹은 예산을 삭감해야 할 때, 작가의 자리는 가장 먼저 흔들린다. 이런 일상이 반복되면 결국 삶의 질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더구나 기본적인 4대 보험조차 보장받지 못해서 하루 아침에 잘려도 실업급여조차 받을 수가 없다. 오죽하면 내가 농담반 진담반으로 4대 보험 되는 정규직이 꿈이라고 했을까.

아마 비정규직이 가장 원하는 건 고용안정일 것이다. 아니 모든 노동자들이 그렇겠지. 그래서 나는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소식에 박수를 쳤다. 비정규직의 애환과 불안을 누구보다 알아서이기도 하고, 안전이 중요한 곳인 만큼 절대적으로 업무 이해도와 수행력이 뛰어난 고정 인력이 필요한 자리였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그러다 난데없이 '공정'에 대한 이슈가 터졌다. 물론 각자 서 있는 곳에 따라서 이해관계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오로지 자기 자신을 위한 공정성만이 옳은 게 아니다. 내가 좋은 직장에서 고용 안정을 보장받으며 열심히 일하고 싶은 만큼, 남들도 똑같은 걸 바라고 있다는 사실만 기억해도 좋지 않을까.

또 누군가의 처우가 나아진다는 게 나에게 불행이나 불운을 의미하는 것만도 아니다. 결국에는 미래의 나, 더 나아가 다음 세대를 위한 일일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정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견고해진 듯하다. 어느 때보다 공정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지만, 결국 다음 세대에 더 가혹한 세상을 만들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지나친 기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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