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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를 위한 축복기도를 했다는 이유로 교단 법정에 서게 된 영광제일교회 이동환 목사.
 성소수자를 위한 축복기도를 했다는 이유로 교단 법정에 서게 된 영광제일교회 이동환 목사.
ⓒ 지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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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목회자가 성소수자를 축복했다는 이유로 교단 재판에 회부됐다. 주인공은 기독교대한감리회(이하 기단) 교단 소속으로 경기도 수원 영광제일교회를 담임하는 이동환 목사다. 

최근 몇 년 사이 보수 개신교 교단이 성소수자에 연대한 목회자나 신학생에게 불이익을 주는 일들이 심심찮게 불거졌다. 2017년 국내 최대 보수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합동) 등 8개 교단은 섬돌 향린교회 임보라 목사의 이단성을 지적했다. (관련기사: 보수 교단이 '이단 지정'한 목사, "차라리 잘 됐다" http://omn.kr/1en3n)

이어 또 다른 장로교단인 예장통합 교단에 속한 장신대는 2018년 신학대학원 학생들이 지난 5월 17일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을 맞아 성소수자에 대한 연대의미로 무지개색으로 옷을 맞춰 입고 예배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이 학생들에게 정학·근신 등의 징계를 가했다. (관련 기사: 동성애자가 죄? 성경 입맛대로 해석한 인간이 문제 http://omn.kr/1jbm6)

하지만 성소수자 축복을 이유로 교단 목회자가 교단 법정에 서는 경우는 사상 처음이다. 

발단은 2019년 8월 인천퀴어문화축제였다. 이 목사는 축제에 참석해 임보라 목사, 대한성공회 김돈희 신부와 함께 성소수자 신앙인을 위해 축복기도를 했다. 이러자 이 목사가 속한 기독교대한감리회(이하 기감) 소속 '충청연회 동성애대책위원회'와 '인천 건강한 사회를 위한 목회자 모임'은 이 목사를 관할 연회인 경기연회에 고발했다. 

경기연회는 2019년 11월 자격심사위원회를 열고 이 목사에게 유사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와 '동성애에 대한 신학적·성경적 입장'을 정리한 리포트를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이 목사는 리포트는 제출했지만 각서는 거부했다. 대신 '각서에 대신하여'란 제하의 문건을 자격심사위에 보냈다. 이 목사는 이 문건에서 이렇게 적었다. 
"나는 여전히 성소수자를 포함한 이 땅의 사회적 약자들을 향한 교회 안팎의 목회 사역, 선교 사역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명이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행하신 영육혼 전인적 구원의 길을 따르는 것이라 믿는다.

이런 목회 신념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있어 다시는 그런 사역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는 것은 아마도 거짓으로 작성하는 것이 될 것이고, 이는 하나님께도 그리고 이 일을 위해 애써 주시는 심사위원 목사님들께도 정의롭지 못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뉴스앤조이 6월 17일자 보도 재인용)

 

그러나 자격심사위는 이 목사의 주장을 수용하지 않았다. 자격심사위는 4월 이 목사에게 '동성애를 찬성하거나 동조하는 자세에서 돌아서지 않으면 경기연회 심사위원회에 고발할 것'이란 내용의 내용증명을 보냈다. 이 목사는 '동성애에 대한 찬성 혹은 반대 입장을 표현한 바가 없다'고 답했다. 이어 지난 10일 경기연회 심사위원회 출석해 자신의 입장을 소명했다. 

그럼에도 심사위는 17일 이 목사를 교단법인 '교리와장정' 위반으로 기소했다. 기소 근거는 '마약법 위반, 도박 및 동성애를 찬성하거나 동조하는 행위를 했을 때' 정직·면직·출교 등의 처벌을 가할 수 있도록 규정한 3조 8항이었다.(정직은 목사직무 정지, 면직은 목사직 박탈, 출교는 교회로부터의 추방을 의미한다)

동성애 배척을 규정한 조항은 2015년 기감 교단 총회 입법위회가 마련한 것인데, 이 목사가 첫 적용사례가 된 것이다. 

동성애 찬성이 마약·도박과 같은 중범죄? 
 
성소수자를 축복했다는 이유로 기감 교단 소속인 영광제일교회 이동환 목사가 교단 법정에 회부됐다. 이러자 대책위는 24일 교단 본부가 있는 광화문 동화빌딩 앞 광장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가졌다.
 성소수자를 축복했다는 이유로 기감 교단 소속인 영광제일교회 이동환 목사가 교단 법정에 회부됐다. 이러자 대책위는 24일 교단 본부가 있는 광화문 동화빌딩 앞 광장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가졌다.
ⓒ 지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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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목사의 기소 소식이 전해지자 '성소수자 축복기도로 재판받는 이동환 목사 대책위원회'(아래 대책위)가 꾸려졌다. 대책위는 24일 오후 기감 교단 본부가 있는 서울 광화문 동화빌딩 앞 광장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가졌다. 

무엇보다 대책위는 기소 근거가 된 '교리와장정' 3조 8항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해당 조항 제정 과정에서 목회적 신학적 논의나 합리적 토론은 단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게 대책위의 주장이다. 

대책위는 그러면서 "'동성애를 찬성하거나 동조'한다는 무리한 법 조항은 이 법이 얼마나 악법인지 보여준다. 국가보안법에나 있는 '동조'가 처벌의 근거가 된다는 통탄할 노릇"이라며 비판을 이어 나갔다. 

연대발언을 한 조은소리 감리교신학대학교 총여학생회 회장도 해당 조항의 부당성을 강조했다. 조은 회장의 말이다. 
"교리와장정의 해당 조항이 성소수자를 위한 기도회에 참여하는 걸 주저하게 만들었다. 이 조항으로 인해 동성애 찬성 동조자로 낙인 찍혀 목회자의 길이 막힐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교리와 장정 조항이 개인의 신앙을 가두는지 알게 됐고 개인의 신앙은 물론 교단, 신학교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목격했다. 감신대는 해당 조항 하나로 성소수자에 대한 신학적 논의를 못하고 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연대발언을 하는 것도 두렵다."

 
 
앞서 적었듯 기감 교단은 교단법에 '동성애 찬성'을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동성애가 찬반을 논할 의제가 아니라는 지적은 수차례 나온 적이 있었다. 2018년 대통령 보궐 당시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는 TV토론에서 '동성애는 찬반 문제가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그럼에도 기감 교단은 관련 조항을 근거로 이 목사를 기소했다. 

더구나 교단법이 동성애를 마약·도박과 같은 선상에 둔 점도 논란거리다. 이에 대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여성위원회 위원장인 민숙희 대한성공회 사제는 "이웃 교단인 감리교에 성소수자 축복을 마약·도박과 같은 선상에 놓은 법조항이 있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며 "하느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사람을 축복하는 게 죄인가? 그것을 죄로 인정하는 사람들이 정말 죄인이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성소수자를 축복했다는 이유로 기감 교단 소속인 영광제일교회 이동환 목사가 교단 법정에 회부됐다. 이러자 대책위는 24일 교단 본부가 있는 광화문 동화빌딩 앞 광장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가졌다.
 성소수자를 축복했다는 이유로 기감 교단 소속인 영광제일교회 이동환 목사가 교단 법정에 회부됐다. 이러자 대책위는 24일 교단 본부가 있는 광화문 동화빌딩 앞 광장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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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를 축복했다는 이유로 기감 교단 소속인 영광제일교회 이동환 목사가 교단 법정에 회부됐다. 이러자 대책위는 24일 교단 본부가 있는 광화문 동화빌딩 앞 광장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가졌다.
 성소수자를 축복했다는 이유로 기감 교단 소속인 영광제일교회 이동환 목사가 교단 법정에 회부됐다. 이러자 대책위는 24일 교단 본부가 있는 광화문 동화빌딩 앞 광장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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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를 축복했다는 이유로 기감 교단 소속인 영광제일교회 이동환 목사가 교단 법정에 회부됐다. 이러자 대책위는 24일 교단 본부가 있는 광화문 동화빌딩 앞 광장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가졌다.
 성소수자를 축복했다는 이유로 기감 교단 소속인 영광제일교회 이동환 목사가 교단 법정에 회부됐다. 이러자 대책위는 24일 교단 본부가 있는 광화문 동화빌딩 앞 광장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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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당사자인 이동환 목사는 "어떤 이들은 흑백논리를 앞세워 성소수자에 대해 찬성이냐 반대냐를 묻는다. 그러나 어떤 존재도 찬반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처벌 근거가 된 교단법 개정에 나서겠다며 연대를 호소했다.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고, 차별에 앞장서는 작금의 교회의 모습은 기독교의 본질인 사랑에서 멀어져 있습니다. 저는 있는 모습 그대로 환대받는 공동체, 다양성이 인정되며 평등하고 자유로운 교회를 꿈꿉니다. 마음껏 사랑하고 마음껏 축복할 수 있는 감리교회를 꿈꿉니다. 물론 감리교 목회자로서 교리와 장정을 존중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정신에서 어긋나 있는 법은 고쳐져야 합니다. 그렇기에 함께하는 이들과 더불어 교단 내에 차별적 조항을 바꾸어 나가는데 힘을 다할 것입니다."

태그:#이동환 목사, #인천퀴어축제, #성소수자, #기독교대한감리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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