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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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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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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25개 자치구 중 7곳이 인권 기본조례를 제정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17일 서울지방변호사회(회장 박종우)는 서울특별시와 서울특별시의회, 서울특별시 25개 자치구 및 구의회에 '인권 기본조례 제정 촉구 의견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인권조례 진가 발휘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사회적 약자와 시민의 인권을 일상에서 실질적으로 보호하기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의 인권정책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지난 2012년 국가인권위원회가 각 지방자치단체에 인권조례 제정을 권고했다고 짚었다. 

당시 인권위는 권고와 함께 '인권 기본조례 표준안'을 마련해 각 지방자치단체에 송부했고, 권고 이후 전국적으로 많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인권 기본조례를 제정해 지방자치단체 수준의 다양한 제도가 만들어졌다. 

대표적인 예시로는 ▲주민과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인권위원회 구성 및 활동 ▲인권 침해 구제 목적 인권보호관제도 운영 ▲정책 사전 심의 과정으로서의 인권 영향평가 시행 등이 있다. 

이에 대해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인권 기본조례 제정과 인권 관련 제도, 정책, 사업을 통해 지방자치단체 수준에서 인권 보호 거버넌스가 갖추어지고 대응 역량이 향상됐으며, 최근 코로나19와 같은 위기 상황에서 그 진가가 발휘됐다"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최근 코로나19 위기 국면에서 지방자치단체 수준 인권 보호 거버넌스의 역할과 성과는 주목을 받았다. 대표적으로 긴급생활 안정자금 지급 대상에 외국인 주민을 포함한 경기도 안산시, 성소수자를 고려하여 코로나19 익명검사를 결정한 서울시의 사례가 언급된다. 

해당 사례에서 지방자치단체 인권 보호 거버넌스는 시민사회와 소통 창구의 역할은 물론 인권침해 사전 예방 및 사후 권리구제 역할을 적절히 수행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서울시 7개 자치구에 인권기본조례 제정 안 해

이처럼 코로나19 위기 속 지방자치단체 인권 보호 거버넌스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30%에 육박하는 자치구가 사업의 법적 근거 역할을 하는 인권 기본조례를 제정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지방변호사회에 따르면, 2020년 6월 기준 서울시 자치구 중 강남구, 강동구, 강서구, 광진구, 마포구, 송파구, 용산구 등 7개 자치구에는 인권 기본조례가 제정되어 있지 않은 상태다. 

해당 자치구에서 인권 기본조례를 제정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례로 마포구의 사례를 살펴보면, 지난 2012년 인권위 권고에 따라 마포구 역시 '인권 보호 및 증진에 관한 조례' 제정 추진 방침을 세워 구청 주도로 인권조례를 제정하려고 했다. 

그러나 지역 인권 시민사회단체로부터 "조례의 실효성 확보를 위해서는 조례제정위원회 구성 등 조례 제정 과정에 주민 참여가 적극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었고,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치면서 구청이 소극적인 자세로 조례 제정을 차일피일 미루는 모습을 보였다. 

당시 마포구청은 지역 시민사회단체의 의견을 수렴하는 토론회에 담당자를 참석 시켜 "2013년 4/4분기에 인권조례 초안을 공개할 계획"이라고 밝혔으나, 마포구의회 6대 구의원 임기가 종료되는 시점까지 조례안을 발의하지 않았다. 

실제로 지난 2013년 12월 10일, 마포구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록을 살펴보면, 오진아 당시 구의원이 "올해 감사담당관실 업무계획 주요 목표로 인권조례 추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말이 되도록 추진이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질의하자, 당시 마포구청 감사담당관은 "여러 사정상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답하며 구체적인 답변을 회피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 7대 마포구의회 임기 중인 지난 2015년, 당시 마포구청 감사담당관은 구의회에 출석해 ▲2012년 홍대 앞 퀴어문화축제 승인 여부를 둘러싼 견해 충돌 ▲2013년 성북구 주민 인권선언문 선포 파행 ▲2014년 서울시민인권헌장 선포 관련 갈등을 언급하며 "인권위 권고에 따라 인권조례 제정 등 인권 관련 사업을 추진해왔으나 갈등 관련 사항 추이 경과를 지켜보며 추진해도 늦지 않겠다는 판단하에 계획했던 사업을 축소했다"라고 밝혔다. 

이처럼 마포구가 인권조례 제정을 사실상 무기한 연기함에 따라, 해당연도 구민 인권 보호 및 증진 사업 집행률은 25%에 그쳤다. 인권 거버넌스 활동을 위해 활용되어야 할 세금이 적절히 쓰이지 못한 것이다. 이후 2018년 7월 임기를 개시한 현재 8대 마포구의회에서는 인권조례 관련 논의가 전무한 것으로 파악됐다.

인권 관련 갈등 해소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지방자치단체가 책무를 회피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는 대목이다.

국가인권위 "인권조례 폐지는 인권의 지역화에 역행"

위와 같이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가 인권조례 제정에 부담을 느끼게 된 까닭은 인권조례 제정에 대한 조직적인 반대 행동에 있다. 

2012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 기본조례 제정을 권고한 이후 많은 지방자치단체에 인권 기본조례를 비롯한 다양한 인권 관련 조례가 발의 및 제정되자, "인권조례는 동성애를 옹호, 조장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보수 개신교 단체를 중심으로 한 항의가 빗발치기 시작한 것이다. 

조직적인 반대 행동으로 인한 지역 인권 거버넌스의 피해는 현실화되고 있다. 실제로 충청남도의 경우, 지속적으로 '인권조례를 폐지하라'는 압박이 가해지자 지난 2018년 도의회가 나서 인권조례 폐지안을 가결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는 "인권의 지역화에 역행해 지방자치단체의 인권 보호 의무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며 인권조례 폐지에 대한 명확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인권 기본조례 뿐만 아니라 조례 이름에 '인권', '성평등', '다양성' 등의 표현이 포함된 모든 조례가 발의 철회 또는 부결시켜야 하는 타깃이 되면서 지역 주민의 인권 보호 및 증진을 위한 지방자치단체의 제도적 기반은 위태로운 상황이다.

상당수의 '학생인권조례', 청소년 노동 인권조례', '성평등 기본조례', '문화다양성조례' 등이 전화 폭탄, 대규모 항의 집회 등의 조직적 반대 행동 이후 발의가 철회되거나 부결되는 수모를 겪었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헌법을 비롯한 국내법, 국제 인권법에서 정하고 있는 '인권보장'은 선언을 넘어 구체적으로 시민들의 삶에 와닿을 수 있어야 비로소 생명력을 가진다"며 "특히 감염병과 같은 외부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각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정부 정책의 빈자리를 실질적으로 메우는 역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인권 기본조례 제·개정과 관련하여 각 자치구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필요 시 산하 인권위원회 위원들이 인권조례의 제정 등을 비롯한 각 지방자치단체 관련 업무 추진에 적극적으로 조력할 계획이다.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지역 인권 거버넌스 마련 및 확충이라는 화두를 제시하고 향후 적극적인 활동에 나설 계획임을 밝힘에 따라, 각 지방자치단체에서의 인권 기본조례 제·개정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질 것으로 보여 귀추가 주목된다.  

태그:#인권조례, #서울지방변호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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