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플랫폼> 포스터

영화 <더 플랫폼> 포스터 ⓒ 씨나몬(주)홈초이스

 
인간과 동물의 다른 점을 꼽으라면 흔히 이성적인 사고와 윤리, 그리고 존엄성을 언급한다. 하지만 생존 본능에 위협을 받았을 때도 인간다움이 지켜질 수 있을지 궁금하다. 영화 <더 플랫폼>은 삼대 욕구라고 불리는 식욕, 수면욕, 성욕 중에서 '식욕'에 포커스를 맞춘다.

먹지 못하는 극한으로 몰아넣고는 그 한계를 서서히 지켜보는 '고문 포르노'다. 끔찍하고 잔혹해 차라리 눈 감고 싶다. 한 끼만 굶어도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내가 만약 영화 속 이 감옥에서 깨어난다면 살아 나갈 재간이 없을 거란 생각도 해봤다. 

사회의 축소판 수직 시스템의 질실

영화 시작부터 수위가 높다. 현대 신자본주의 시스템을 그대로 투영한 은유가 돋보인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수직 감옥에서 깨어난 남자 고렝(이반 마사구에)의 시선으로 진행되는데, 이미 1년을 버틴 룸메이트 트리마가시(조리온 에귈레오)가 그동안 모은 정보를 조금씩 꺼내놓는다. 고렝은 정보를 확인하고 또 다른 정보를 찾으며 탐색 중이다.
 
 영화 <더 플랫폼> 스틸컷

영화 <더 플랫폼> 스틸컷 ⓒ 씨나몬(주)홈초이스

 
그의 말에 따르면 하루에 한 번 위에서 음식을 담은 플랫폼(식탁)이 내려오고 한 달 주기로 방이 랜덤으로 바뀐단다. 층을 이동할 때마다 새 계급을 받는 것 같다. 그래서 아랫사람을 업신여기고 위층 사람과는 말을 섞지 않는다. 배설물은 물론, 다른 사람도 먹지 못하도록 멀쩡한 음식도 망가뜨리는 일을 서슴없이 한다. 랜덤으로 바뀌는 층은 인간의 이기심을 드러내기 좋은 수단이 된다. 어떤 층에서 깨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보복은 되도록 자제하는 것이 좋다. 방이 무작위로 재배치되면 계급은 언제든지 전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위 구덩이라 불리는 건물은 몇 층까지인지 알 수 없어 절망적이다. 누구라도 꼭대기에서 밑바닥까지 추락할 수 있다는 예측불허성이 팽팽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마치 돈이 있을 때와 돈이 없을 때가 확연히 달라지는 우리 사회의 축소판인 것 같아 씁쓸함이 커진다.

확실한 것은 아래층으로 내려 갈수록 먹을 음식은 줄고, 분노와 욕심이 커진다는 것이다. 꼬리 칸에서 머리 칸까지 직진하는 <설국열차>의 수직 버전 같다. 꼭대기에 있는 자, 바닥에 있는 자, 추락하는 자만 있는 서열화의 표본, 명확한 피라미드다. 궁지에 몰린 인간이 앞서 말한 동물과의 차별성을 끝까지 지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영화는 타인과의 연대, 고착된 시스템을 바꾸는 게 얼마나 힘든지를 이미지로 보여준다. 음식은 플랫폼 위에 있을 때만 먹을 수 있으며 음식을 쟁여 놓을 경우 제약이 가해진다. 때문에 더더욱 먹어야만 하는 강박이 생긴다. 통제된 시스템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은 서서히 묵살된다.
 
 영화 <더 플랫폼> 스틸컷

영화 <더 플랫폼> 스틸컷 ⓒ 씨나몬(주)홈초이스

 
점점 '먹을 만큼만 먹는다'는 말을 절대로 지킬 수 없게 된다. 마치 뷔페에서 먹지도 못할 음식을 접시 가득 담아오는 것과 비슷하다. 배가 고파서 먹는 것인지, 남이 먹기 전에 내가 먹으려는 욕심인지 모르겠다. 굶주림은 인간의 광기를 자극해 먹히는 것보다 먹는 편이 낫다는 인식을 키운다. "어떻게 인간으로서 저럴 수가 있을까"라는 경악스러운 행동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 

고렝이 이곳에 들어온 경위는 사실 좀 다르다. 6개월을 버티면 학위를 준다는 말에 덜컥 지원한 것이다. 이참에 담배도 끊고 책이나 보자는 심산으로 <돈키호테>를 가지고 들어왔다. 고렝은 세상을 향해 저돌적으로 직진하는 고독한 돈키호테를 자처한다. 그래서 책을 고른 건 다소 의아하다. 누구나 딱 한 가지의 물건만 반입할 수 있는데 책을 가지고 온 사람은 그가 처음이었다.

고렝은 처음에는 역겨워하며 음식을 먹지 못하지만 차차 시스템에 순응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아직까지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작지만 이타심이 살아 있다. 그렇게 폭력과 충격을 받아내던 고렝은 최후의 수단을 선택한다. 바로 바하랏(에밀리오 부알레)과 함께 플랫폼을 타고 바닥으로 내려가는 것. 가만히 6개월만 버티면 나갈 수 있는 길을 버리고 고난을 자처하게 된다. 그는 한 층씩 내려가며 그동안 먹지 못했던 사람들을 위해 음식을 지켜낸다.

새로운 시스템이 살아남기 어려운 이유
 
 영화 <더 플랫폼> 스틸컷

영화 <더 플랫폼> 스틸컷 ⓒ 씨나몬(주)홈초이스

 
민주주의 사회에선 나만 살고자 하는 이기심, 개인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다 같이 생존 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그렇게 설계되어 있지 않다. 조금씩만 갖고 서로 연대하면 오래 지속할 수 있지만, 어리석은 인간은 머리로만 알 뿐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 

때문에 이 시스템에서 25년간 일했던 이모구리(안토니아 산 후안)의 주장이 꽤 의미심장하다. 회사의 사무직이었던 그녀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수직감옥에 들어왔다. 그녀는 접시에 챙겨둔 것만 먹고 2인분의 접시를 따로 마련해 놓자고 제안한다. 배식의 칼로리를 나누면 모두가 살 수 있는 자발적 연대를 주장한 것이다. 하지만 연대의식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이는 오래된 시스템을 밀어내고 새로운 시스템이 자리잡기 힘든 이유를 보여준다.

영화는 '어쩔 수 없고 뻔한 것'이라 포기해 버리면 자신마저 거대 시스템의 한낱 부품으로 희생될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다. 또 오늘은 운 좋게 안 걸렸더라도 내일은 내가 그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공포가 영화 전반을 지배한다. 

영화 속 사람들은 굶어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인간성을 저버린다. 작품은 한정된 음식 배급으로 이를 보여주었다. 열심히 살려고 안간힘을 써도 결국 가난과 허기를 벗어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계급은 고작 6미터의 층간 높이였다.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계급이 존재하는 시대에 <더 플랫폼>은 묻고 있다. 지금 시스템에 순응할 것인가 6미터를 넘어 바꿀 것인가.
더 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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