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드라마 <더 킹 : 영원의 군주> 관련 이미지.

SBS 드라마 <더 킹 : 영원의 군주> 관련 이미지. ⓒ SBS


SBS 드라마 <더 킹: 영원의 군주>에는 대한민국이 있는 우주와 별도로, 대한제국이 있는 우주가 등장한다. 동일한 한반도 위에 두 개의 우주가 공존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한제국이 있는 우주에서는 한국인들이 '폐하', '마마' 등의 표현을 써가며 군주체제에 경의를 표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과거에 황제국을 칭하는 나라들은 자국 중심의 천하관(세계관·우주관)을 표방했다. 세상을 자국 중심으로 해석한 것이다. 이러다 보니, 국제적 시비가 생길 가능성이 많았다. 1897년에 고종 임금이 대한제국을 선포할 때도 국제사회에서 '황제국이 될 만하냐'는 지적들이 많았다. 황제 체제를 유지하려면 이처럼 시비를 거는 다른 나라를 상대할 능력도 갖추고 있어야 했다는 뜻이다.
 
<더 킹> 속의 대한제국은 민주체제를 경험한 적이 없다. 이런 상태에서 황제체제를 선택했으므로, 이 나라 역시 독자적 천하관을 표방할 수밖에 없다. 주변국들의 시비를 감당할 능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드라마 속의 대한제국은 일본을 상대로 그런 능력을 과시했다. 일본 해군이 시비를 걸며 대한제국 영해를 침범할 듯이 하자, 황제 이곤(이민호 분)은 직접 전함을 이끌고 나가 일본군의 기를 꺾었다. 전쟁을 불사할 듯이 함으로써 상대국 전함의 뱃머리를 돌리게 만든 것이다.
 
미국 대외정책의 '양면성'

만약 대한제국이 일제강점기를 거치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면, 또는 일제강점기가 끝난 1945년경에 대한제국이 부활했다면, 이 나라가 가장 크게 신경을 써야 할 대상은 실상 일본이 아니라 미국이다. 1945년 이후 미국은 핵무기를 사용하면서 세계 최강에 등극했다. 따라서 대한제국은 황제체제의 특징인 권력세습과 관련해 미국의 시비를 감당할 능력을 갖추어야 했다.
 
오늘날 미국은 북한이 실질적인 왕정체제라는 점을 비판한다. 북한 최고권력이 혈통에 의해 세습되고 있다는 점을 공격하는 것이다. 전직 대통령이 된 조지 부시(아들 부시)도 2011년 3월 29일 경남 진해 해군사관학교 강연에서 "북한의 3대 세습은 국민의 동의 아래 권력이 이양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 간에 이뤄지는 세습"이라며 북한 체제를 비판한 바 있다.
 
1776년에 개시된 미국 독립전쟁은 왕정국가인 영국을 상대로 하는 민주주의 투쟁의 성격도 띠었다. 이것은 1789년 프랑스 혁명보다 13년이나 앞선 것이었다. 또 미국은 여타 국가들보다 훨씬 빠른 1789년에 대통령제 정부형태를 등장시켰다. 서구식 민주체제에서 만큼은 가장 선진적인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어느 국가든 간에, 힘만 있으면 자국 정치체제를 퍼트리고 싶어 한다. 국가 권력들은 자국과 똑같은 정치체제가 세계적인 보편성을 띠고 있음을 증명하고 싶어한다. 자국 체제가 보편적이라는 인식이 확산돼야만 자국 민중의 저항을 최소화할 수 있다. 미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미국이 서구식 민주체제를 확산시키려 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이것은 19세기 미국이 아시아 정치체제를 혐오한 이유와도 관련이 있다.
 
19세기에 미국은 동아시아에 진출한 자국 기업이나 상인들이 현지의 정치체제로 인해 피해를 입지 않을까 염려했다.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한미수호통상조약)에 치외법권 조항을 넣은 것도, 조선왕조의 시스템으로 인해 자국 기업의 활동이 지장을 받고 이 때문에 자국의 조세 수입이 줄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서였다. 치외법권 조항을 넣은 데는 다른 이유들도 있지만, 이것도 중요한 이유였다.
 
그런 사례에서 느낄 수 있듯이, 서구식 민주체제가 확산되면 미국 정부의 정통성이 높아질 뿐 아니라 미국 기업과 정부의 수입도 늘어날 수 있다. 이런 이해관계를 가진 미국이 지배권을 행사하는 1945년 이후의 세계질서 속에서 한민족이 황제국 체제를 유지한다면, 미국으로부터 이런저런 간섭을 일상적으로 받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볼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같은 인물이라면 한국으로부터 금전을 받아내고자 할 때 이런 문제를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미국은 모순적인 나라다. 앞뒤가 맞지 않을 때가 많다. 북한의 세습체제를 비판하고 서구식 민주체제를 홍보하면서도, 가장 강력한 군주제 국가 중 하나인 사우디왕국과 혈맹에 가까운 동맹을 유지해왔다. 요즘에는 사우디와의 관계가 좀 삐걱거리지만, 미국은 이스라엘과 더불어 사우디를 자국의 중동정책 대리인으로 내세우고 있다.

미국이 중동 지역에 사우디와 이스라엘이라는 두 개의 동맹국을 둘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선, 미국 경제를 지배하는 유대인들 때문에라도 이스라엘을 보호해야 한다. 그렇다고 이스라엘 하나만 내세울 경우 다른 중동 국가들의 격렬한 반발을 피할 수 없다.

미국은 패망한 일본을 부흥시키면서 일왕제(천황제)도 함께 부활시켰다. 실권이 없어지기는 했지만, 일왕은 여전히 일본 국가의 구심점으로 남아 있다. 그 호칭도 그냥 황제가 아니라 무려 '천황'이다. 미국은 그런 일본을 동아시아 정책의 대리인으로 내세우고 있다.
 
미국은 영국과도 긴밀한 동맹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의 유럽 대리인이라 할 수 있는 영국은 입헌군주제이기는 하지만 군주제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미국은 과거의 앙금을 씻고 영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유럽·중동·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위상이 추락하면, 미국의 세계 패권은 힘없이 소멸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미국은 이 지역들에 대리인을 두고 자국의 위상을 관리하고 있다.
 
그런데 그 지역들에 있는 4개의 대리인 중에서 이스라엘을 제외한 나머지 3개국은 입헌제 혹은 실질적인 왕정국가다. 이는 서구식 민주체제를 옹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왕정국가들과 긴밀한 동맹을 유지하는 미국의 모순적인 대외정책을 잘 보여준다.
 
미국의 '지역 대리인'이 갖는 공통점
 
 SBS 드라마 <더 킹 : 영원의 군주> 관련 이미지.

SBS 드라마 <더 킹 : 영원의 군주> 관련 이미지. ⓒ SBS

 
그렇다면, <더킹>에서처럼 대한제국이 지금껏 유지되고 있다면, 이 나라도 미국의 동아시아 대리인이 되는 방법으로 군주체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간과 쓸개를 미국에 다 빼준다면 모를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대한제국이 일본처럼 미국의 동아시아 대리인이 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은 실증적으로 충분히 입증될 수 있다. 미국의 지역 대리인인 4개국의 공통점을 추출하면, 미국이 어떤 나라를 지역 대리인으로 만드는지가 단번에 드러난다.
 
영국은 제1차 아편전쟁이 끝난 1842년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까지 세계 최강 지위를 누리긴 했지만, 지정학적으로 볼 때 이 나라는 유럽의 변방에 불과하다. 브렉시트라는 사건에서 상징적으로 표현되듯이, 영국은 바다 건너 유럽대륙 쪽과 이질성을 갖고 있다.
 
사우디는 오늘날과 달리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세계 열강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1938년에 거대 유전이 발견되기 전까지, 사우디는 관심권 밖의 나라였다. 투르크족(돌궐족)이 중동·북아프리카·동유럽에 걸치는 오리엔트 권역을 지배한 오스만투르크 제국 시절에도, 사우디 땅은 오스만투르크의 관심 밖에 있었다.
 
제1차 대전 뒤에 중동을 장악한 영국과 프랑스도 사우디 땅을 불모지로 간주했다. 그리고 영국이 사우디 땅의 지배자로 승인해준 가문은 지금의 사우디 왕실인 사우드 가문이 아니라 하심 가문이라는 또 다른 유력 가문이었다.
 
그런 영국의 정책에 대해 사우드 가문은 정면으로 항거했다. 하심 가문을 몰아내고 1932년에 사우디아라비아왕국을 세운 것이다. 영국·프랑스가 주도하는 중동 질서에 정면 대항했던 것이다. 그래서 사우디는 이 지역의 이단아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이스라엘은 사우디보다도 더한 고립을 겪었다. 이스라엘이 중동에서 겪은 고립의 역사는 구약성경만 읽어봐도 알 수 있다.
 
일본은 오늘날뿐 아니라 과거에도 한국·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대륙국가들의 배척을 받았다. 과거의 한국과 중국은 대륙세력의 관점에서 동아시아 질서를 유지하고자 했고, 이런 속에서 일본은 항상 따돌림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인들이 정상적인 무역 대신 약탈 무역을 선호하고 대규모 왜구를 배출한 이유 중 하나도 거기에 있었다.
 
그런 나라가 1868년 메이지유신 이래 서양열강과 제휴하고 이를 기반으로 동아시아 각국을 침략하다가 1945년에 패망했으니, 1945년 이후의 일본은 동아시아 국가들로부터 더욱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설명에서 4개국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미국의 지역 대리인인 4개국은 한결같이 콤플렉스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군사력이 강하건 강하지 않건 간에 주변 국가들과 이질성을 갖고 있다. 자기 지역에서 따돌림을 받을 가능성이 있어서 외부 동맹국과의 제휴가 절실한 나라들을 지역 대리인으로 내세웠던 것이다.
 
과거의 한국은 동아시아 최강국은 아니었지만 이 지역에서 2위나 3위 정도의 국력을 항상 유지했다. 최강국한테는 이따금 수모를 당했지만, 대마도(1879년 이전)·오키나와나 통일 이전의 여진족한테는 우위에 있었다.
 
거기다가 과거의 한국은 동아시아 비주류인 해양세력이 아니라 주류인 대륙세력의 일원이었다. 1992년 수교 이후로 한국이 공산주의 중국과 잘 지낼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도 그 같은 역사적 경험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은 영국·이스라엘·사우디·일본과는 처지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1945년에 미국이 동아시아를 점령할 당시에 대한제국이 여전히 있었거나 새로 부활했다면, 미국은 대한제국의 군주체제를 존중하기보다는 제동을 걸려 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미국의 지역 대리인이 될 만한 조건을 갖추지 못한 대한제국이 미국과 이질적인 정치체제를 갖고 있다면, 미국은 대한제국의 세습체제에 대해서도 이의를 걸었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이의를 받지 않으려면 대한제국이 이것저것 많이 내주지 않으면 안 됐을 것이다. 그랬다면 <더 킹>의 대한제국처럼 평온함을 누리는 황제국이 아니라 항상 불안과 긴장에 시달리는 나라가 됐을 것이다.
 
그 대한제국이 지금까지도 존재하려면, 미국의 일상적인 시비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능력을 갖춰야 한다. <더 킹> 속의 대한제국이 일본을 상대로 그 능력을 과시하는 것 이상으로, 더 많은 것을 증명해야 한다. 그래야만 1945년 이후 세계질서에서 생명력을 유지해올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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