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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이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전국공동행동 기자회견을 열고 코로나19 해고금지 총고용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민주노총이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전국공동행동 기자회견을 열고 코로나19 해고금지 총고용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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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3일 민주노총 부설 민주노동연구원은 「문재인 정부 코로나19 대응 비판」(민주노동연구원, 이슈페이퍼 2020-06)을 통해, 정부가 천문학적 규모의 기업지원 조치를 발표했지만, 그에 비해 고용·실업 및 노동자 지원대책은 매우 부실하다고 비판했다. 금융시장 안정화에 100조원 이상, 코로나 19 피해 수출입해외진출기업에 대한 긴급 금융지원 20조, 36조 이상의 수출활력 제고 방안, 2.2조 원 규모의 스타트업·벤처 지원방안이 발표됐다. 이에 비해, 고용․실업 및 노동자 지원대책에 새롭게 증액된 예산 규모는 현재 논의가 진행 중인 재난지원금(14조 가량)을 제외하면 1조 5783억 원에 불과하다.

게다가 고용충격에 대비한 대책도 기존의 고용유지지원금과 일자리안정자금을 확대하는 방식이어서, 해당 제도의 문제점이 그대로 반복된다. 예를 들어, 고용보험 미가입자, 특수고용 노동자, 파견·용역·사내하청 등 간접고용 노동자,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은 법적 혹은 실질적으로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남아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경총과 전경련은 지난 3월 말 "경제활력 제고와 고용·노동시장 선진화를 위한 경영계 건의", "코로나19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경제계 긴급제언"을 통해, 일상 해고를 포함한 노동유연화와 법인세·소득세〮 상속세 인하 등 기업 비용 축소, 규제 완화 등을 요구했다. 코로나 19를 핑계로 대고 있지만, 사실상 재계가 지속적으로 요구하던 규제완화 내용이다. 경총과 전경련의 제안은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어, 전경련의 경제계 긴급제언 중 노동자 건강 및 안전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조항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코로나19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경제계 긴급 제언(2020.03.25)
 코로나19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경제계 긴급 제언(2020.03.25)
ⓒ 전경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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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빙자한 노동시간 연장 시도

눈에 띄는 것 중 하나는 노동시간과 관련된 규제 완화 요구가 대거 들어있다는 점이다. 2018년 주 52시간까지로 노동시간을 제한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이 있었지만, 300인 이상 사업장에만 먼저 시행됐고, 겨우 올해부터 50인 이상 사업장에도 적용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노동시간 제한의 예외가 되는 특별연장근로 인가 대상을 확대하라는 요구가 포함돼 있다. 그리고 노동부 장관은 코로나19와 관련한 지원 때문에 바빠진 금융기관의 경우 특별연장근로 인가를 빠르게 추진해주겠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지난해 말,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특별연장근로가 가능한 사유를 대폭 늘릴 수 있게 준비해두었다. 원래 인가 대상이던 '자연재해, 재난 또는 이에 준하는 사고의 수습'과 같은 제한적인 경우뿐 아니라, '통상적인 경우에 비해 업무량이 대폭 증가한 경우로서 이를 단기간 내에 처리하지 않으면 사업에 중대한 지장이 초래되거나 손해가 발생되는 경우'까지 포함시켜놓았던 것이다. 이 개정 내용이 코로나 국면에서 방역업체, 마스크 생산 업체로 적용되더니, 이제 금융기관까지 확대되려는 것이다.

재계는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연장도 요구하고 있다. 주52시간으로 노동시간 연장이 제한되면서부터 지속적으로 요구해오던 것이다. 탄력적 근로시간 기간 동안에는 주당 최대 64시간까지 일할 수 있는데, 그 단위 기간이 늘어나면 연달아 64시간까지 일하는 기간도 늘어난다. 단위기간이 6개월만 돼도, 3개월 연속 주당 64시간 일할 수 있어 뇌심혈관질환이나 정신질환 위험이 크게 증가한다.

특별연장근로 인가 확대나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연장 요구는 모두 노동시간 제한을 무력화시키려는 시도다. 자본이 꿈꾸는 코로나 이후의 세상은 아마도 과로와 실업이 공존하는, 일자리 때문에 과로도 감지덕지하는, 그래서 노동시간 제한이 필요 없는 사회인 것 같다.

안전도 상생도 뒷전으로

그 외에도 대형마트 의무휴업을 폐지하라는 요구나 화물차 안전운임제도 유예기간 연장 요구 역시 해당 산업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늘리고, 노동환경을 악화시키게 된다.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지정의 주요 근거는 소상공인 살리기였지만, 그 덕에 마트 노동자들의 노동시간도 단축되었다. 특히 남들 쉴 때 쉬는 '사회적 휴일'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본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 필수적인 업무가 아닌 다음에야 불필요한 야간 노동, 휴일 노동을 해서는 안 된다. 이런 측면에서의 작은 성과를 없던 것으로 하자는 주장이다. 유통업계에서는 대형마트가 더 이상 유통업계의 강자가 아니라고 하지만, 코로나19로 대형마트의 온라인 매장 매출액이 오히려 증가했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는다.

일부 유통재벌만의 욕심은 아닌 것이, 안동시에서 대형마트 의무휴업 한시 철폐가 추진되기도 했다. 생필품 품귀 현상을 막는다는 명분이었다. 결국 부결되어 없던 얘기가 되었지만, 논의가 진행되는 동안 유통업계와 경제지들은 안동시에서 규제가 풀리면 다른 지자체까지 확대되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자본의 공격은 2020년 1월 1일부터 시작된 화물자동차 안전운임제에도 닿았다. 안전운임제는 낮은 운임으로 인해 과로, 과속, 과적의 위험에 내몰리는 화물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제안됐다. 화물노동자가 지급받는 최소한의 운임을 공표하고 지키지 않을 시 과태료를 부과하는 제도다. 화물노동자들의 과로, 과속, 과적으로 인한 사고 발생이나 도로 손상 등 사회적 비용이 크기 때문이다. 그나마 현재 시행되는 안전운임제는 3년 한시적으로 전체 화물노동자 40만 명 중 6.5%에 해당하는 수출입 컨테이너와 시멘트 품목에만 적용되고 있을 뿐이다. 적용대상이 훨씬 넓어져야 한다는 서명 운동도 진행 중이다. 그런데 2월까지였던 유예 기간을 코로나 사태 종료 때까지 연장하자는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계기로 2013년 제정된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이하 화평법)도, 재계가 무슨 일만 있으면 완화와 유예를 요구해오던 법률이다. 이번에도 역시 화학물질 등록 기간을 1년 유예해달라고 요청했다. 환경운동연합 등은 이에 대해 "올해 들어서도 서산 롯데케미칼 폭발사고 등 전국 곳곳의 화학물질을 다루는 공장에서 사고가 발생하고 있고 여전히 노동자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위험에 노출되고 있는 상황"인데, 가당찮은 요구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정부의 생각은 달랐다. 4월 8일 열린 제4차 비상경제회의에서 환경부는 화학물질관리법(이하 화관법), 화평법상 일부 조치를 유예하거나 완화해주었다. 내년 12월까지 한시적으로 화관법상 유해화학물질 취급시설 인허가 패스트트랙 품목을 늘리고, 화평법상 연 1톤 미만으로 신규화학물질을 제조·수입하는 기업이 환경부에 제출해야 했던 시험자료 제출생략 품목을 크게 확대해주는 것이다.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 요구나 안전운임제 유예 연장, 화평법 완화 등은 모두 안전과 상생은 뒷전으로 하고 싶던 기업들의 속내를 보여준다. 재난 상황을 기회로 규제완화의 '뉴 노멀'을 만들고 싶은 모양이다.

어떤 사회로의 회복을 요구할 것인가?

이런 기업들의 요구에 정부가 적극 호응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노동부에서 노동시간 제한을 완화하고, 환경부는 화학물질 관리 책임을 느슨하게 해 준다. 기업활력제고 특별법 적용대상 모든 업종으로 확대하라는 요구에, 정부가 법 개정을 고민하고 있다는 기사도 나왔다. 원샷법이라고 불리는 기업활력제고 특별법은 기업 인수합병을 쉽게 하는 법인데, 정부 스스로도 이 법에 따라 사업 재편을 위한 기업 인수합병이 활발해지면 중장년층 실직자들이 양산될 수 있다고 말해왔다.한국판 재난자본주의가 펼쳐질 수 있다.

전쟁, 자연재해 등과 같은 재난이 사회를 덮쳐, 사람들이 충격을 받고 공포에 빠져 있을 때, 자본이 즉각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높이기 위한 약탈 행위를 재난자본주의라 한다. 1998년 한국의 외환위기도 한 예다. 국가 부도라는 초유의 사태로 '쇼크'를 받은 한국은, "개방하고 민영화해야 국가 부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신자유주의를 '쇼크 독트린'으로 받아들인다.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 확대, 상시적 구조조정과 불안정 고용이 한국사회의 '정상'이 되었다. 구조조정 후 살아남은 노동자들의 노동강도는 높아졌다. 1998년 크게 증가한 자살률은 이후로 20년째 떨어지지 않고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코로나로 인한 감염자 수, 재난지원금만 바라보다 지난 과오를 되풀이 할 수 있다. 경기활력 제고를 앞세운 규제 완화, 일자리를 볼모로 한 노동권 후퇴, 노동관계법 개악이 슬금슬금 진행되고 있다. 고통분담이냐 노동자 사이의 연대냐, 기업 살리기냐 고용 유지이냐, 어떤 기조로 이 시기를 넘어서느냐에 따라 앞으로 마주할 20년이 달라질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최민님이 작성하셨습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잡지 <일터> 5월호에 연재한 글입니다.


태그:#재난자본주의, #쇼크독트린, #재난불평등, #노동시간, #노동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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