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프로야구 개막일인 5일 오후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NC 다이노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가 무관중으로 진행되는 가운데 삼성 마스코트가 홀로 관중석에 있다.

2020 프로야구 개막일인 5일 오후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NC 다이노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가 무관중으로 진행되는 가운데 삼성 마스코트가 홀로 관중석에 있다. ⓒ 연합뉴스


지난 5일 개막된 2020시즌 프로야구 KBO리그, 대구에서 열린 삼성과 NC의 경기에서는 흥미로운 장면이 나왔다. 6회 NC 모창민이 박석민에 이어 솔로홈런을 터뜨리면서 배트를 던지는 세리머니를 선보였다.

이 경기를 중계하던 미국 스포츠 전문매체 ESPN 중계진은 "한국 프로야구에서 올시즌 첫 번째 배트 플립(Bat flip)이 나왔다"고 설명하며 열광적으로 반응했다. SNS 등에서도 한국식 배트 플립에 대한 미국 야구팬들의 다양한 반응과 관심이 쏟아졌다.

미국 ESPN은 사상 처음으로 올해 한국 프로야구를 생중계하고 있다. 미국 메이저리그(MLB)가 코로나19 사태로 인하여 개막이 수개월째 미뤄지면서 부족한 스포츠 콘텐츠를 대체하기 위하여 KBO리그 중계권을 사들인 것. 미국 방송에서는 메이저리그와는 또 다른 한국야구의 개성과 문화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한국야구만의 독특한 문화로 현지에서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이 바로 배트 플립이었다. ESPN은 이미 경기 중계 전부터 한국프로야구 선수들이 배트 플립을 시도하는 영상만을 따로 편집하여 보여주기도 했다.

배트 플립은 타자들이 타구를 때려내고 그 자리에서 방망이를 내던지는 동작으로 자신의 타격을 과시하는 세리머니를 의미한다. 국내에서는 비속어지만 '빠던'(빠따 던지기)이라는 한국식 표현으로 더 친숙하다. 보통 홈런성 타구를 날린 이후에 많이 선보이는데, 승부를 뒤집거나 결정짓는 극적인 상황일수록 배트 플립이 등장할 확률이 높아진다.

야구에서 대개는 타격을 한 이후 방망이를 타석에 가만히 내려놓고 누상으로 질주하는게 정석이지만, 홈런을 날렸을 때는 마치 투척을 하듯 방망이를 타석 뒤편으로(사람이 없는 방향으로) 힘차게 내던지는 게 포인트다. 정작 방망이를 내던지고도 타자 본인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쿨한 표정으로 타구가 날아간 방향을 잠시 응시하거나, 홈런의 여운을 즐기며 천천히 누상을 산책하는 듯 통과하는 과정까지 추가하면 완벽한 배트 플립 세리머니의 완성이다.

비교하자면 축구 선수들이 골을 넣고 각종 자신만의 '시그니처 포즈'로 세리머니를 하는 것과 같다. 다수의 국내타자들은 홈런을 친 후 시원스런 동작의 배트 플립을 종종 선보이곤 한다. 특히 황재균(kt)이나 전준우(롯데), 박병호-김하성(키움) 등은 이른바 폼나는 배트 플립으로 유명한 선수들이기도 하다. 물론 이승엽(은퇴)처럼 누구보다 많은 홈런을 날리고도 상대에 대한 존중 차원에서 별다른 세리머니 없이 조용히 반응했던 선수들도 많다.

배트플립은 상대와의 기싸움의 일환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2015년 프리미어12 준결승에서 오재원은 일본을 상대로 장타를 날린 뒤 그림같은 배트 플립을 선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KBO리그에서는 전투적인 경기매너 때문에 평가가 엇갈리는 오재원이었지만, 이 장면으로 '오열사'라는 애칭을 얻기도 했다.

물론 자신감이 지나치면 망신을 당할 때도 있다. 당시 오재원을 비롯하여 몇몇 타자들은 멋지게 배트 플립 세리머니를 먼저 했다가, 정작 타구가 담장을 넘기지 못하고 수비에 잡히면서 오히려 머쓱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하지만 타자들의 '설레발'로 인한 뜻밖의 웃음포인트조차도 배트 플립이 주는 볼거리의 일부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는 성향과 상황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야구의 재미를 더해주는 하나의 퍼포먼스 차원으로 이해하는 분위기다.

배트 플립 바라보는 미국의 평가 엇갈려

하지만 야구의 본고장이라고 할만한 미국에서는 배트 플립을 바라보는 평가가 아직 엇갈린다. 미국에서는 배트 플립을 투수와 상대팀에 대한 도발로 간주하는 게 불문율이기 때문이다. 배트 플립 외에도 타자가 홈런을 날리고 투수를 정면으로 쳐다본다든지, 타구를 응시하거나 누상을 천천히 돌며 시간을 지체하는 것 또한 상대를 자극하는 행위로 받아들여진다.

만일 이런 행동을 저지르면 불문율을 위배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곧바로 다음 타석에서 빈볼이 날아오는 등의 응징을 당하기 십상이다. 상대적으로 배트 플립에 너그러운 KBO리그에서도 미국식 야구문화에 익숙한 외국인 선수들의 경우에는 한국 타자들의 배트 플립 세리머니에 발끈하는 모습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실제로 메이저리그에서는 배트 플립 문제 때문에 빈볼 시비는 물론이고 심할 경우 벤치클리어링 등 난투극까지 치닫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2015 포스트시즌에서 토론토 소속의 호세 바티스타는 텍사스 전에서 홈런을 날린 이후 그림같은 배트 플립 세리머니를 선보였는데 미국에서도 팬들과 전문가들 사이에서 반응이 첨예하게 엇갈릴 정도로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기도 했다. 이 사건 이후 상대적으로 한국야구의 배트 플립 문화가 더 주목받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미국도 달라진 시대 분위기에 따라 배트 플립을 바라보는 시각이 변화하고 있다. 오늘날 자기 표현에 익숙한 젊은 신세대 팬들의 여론은 배트 플립에 대하여 우호적인 반응이 많다. 메이저리그 사무국도 공식 홈페이지에 배트 플립 하이라이트 장면을 올리거나, 관계자들의 인터뷰를 빌어 배트 플립 자체를 긍정적으로 언급하는 등, 야구 콘텐츠의 하나로 바라보는 분위기다.

오늘날 배트 플립은 결국 행위 자체보다는 수위의 문제에 가깝다. 골세리머니가 일상적인 축구나 농구에서도 상대팀 선수나 벤치 혹은 관중을 직접적으로 도발하는 듯한 행위는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2015년 바티스타의 배트 플립이 문제가 됐던 것도 사실 배트를 던진 것보다 당시 양팀의 신경전이 이미 과열된 상황에서 의도적으로 상대 벤치를 도발하는 듯한 제스쳐를 취한 것이 더 결정적이었다. 자신의 기쁨을 표시하기 위한 세리머니라도, 상대를 무시하거나 도발로 느껴질 정도의 선을 넘어서는 곤란하다.

다른 분야들과 마찬가지로 스포츠 역시 점점 더 유행에 민감해지고 있으며 시대의 흐름에 많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번 기회를 통해 미국인들이 배트 플립은 물론, 미국이나 일본과는 또 다른 고유의 개성을 구축해가고 있는 한국 야구 문화에 색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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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플립 야구불문율 빠던 KBO리그중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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