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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경기도 이천시의 한 물류창고 공사장 화재 현장에 1일 오후 한 시민단체가 기자회견 후 놓아둔 국화꽃이 놓여 있다.
 38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경기도 이천시의 한 물류창고 공사장 화재 현장에 1일 오후 한 시민단체가 기자회견 후 놓아둔 국화꽃이 놓여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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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이천 냉동창고 화재 사건이 터졌을 때 사업주는 2000만 원의 벌금만 물었다. 당시 40명이 죽었으니 한 사람당 50만 원씩 낸 셈이다. 사람 목숨을 50만 원으로 친 건데, 이번 사고에서 38명이 죽었으니 이대로라면 1900만 원만 내면 되는 거다."

2018년 4월 경기도 수원시 고색동 건설현장에서 추락해 사망한 청년노동자 고 김태규씨의 누나 김도현씨가 2일 오후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과연 이번에는 한 사람 목숨값을 얼마로 계산하겠느냐"면서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김씨는 "사람 목숨값이 눈앞에 이득보다 못한 상황이다. 이번에는 과연 얼마나 달라지겠느냐"라고 말했다.

2008년 냉동창고 화재와 똑 닮은 2020년 물류창고 참사

지난달 29일 경기 이천시에 있는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신축공사 현장에서 화재로 38명의 노동자가 사망하고, 10명이 다쳤다. 화재는 29일 낮 1시 32분 발생해 오후 6시 42분께 진화됐다.

소방당국은 공사현장 내 우레탄폼 작업 중 발생한 유증기(기름 증기)와 엘리베이터 설치 작업 중 튄 불꽃이 결합해 순식간에 폭발한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건물 내부가 화염으로 상당 부분 녹아내리면서 원인 분석에 난항을 겪고 있다. 가연성 물질을 다루는 공사와 용접 등 발화 우려가 있는 공사를 동시에 진행하는 것은 안전수칙에 어긋나는 일이다.

불이 난 곳은 전체면적 1만1000㎡ 규모의 지하 2층·지상 4층짜리 물류창고 공사현장으로, 사고 발생 당시 9개 업체 78명이 동시에 작업하고 있었다.

앞서 40명의 목숨을 앗아간 2008년 이천시 냉동창고 화재 역시 당시 창고 지하에서 57명의 노동자가 전기배선 설치와 냉매 주입 등의 작업을 진행하던중 전기용접을 위해 불을 붙이는 순간 공기 중에 차 있던 유증기가 폭발해 사고로 이어졌다.
 
 
고 김태규씨의 누나 김도현씨는 동생이 사망한 후 1년 동안 진상규명을 위해 달려왔다. 8일 오후 인터뷰 후 그에게 거리에 서 줄 것을 부탁했다.
 고 김태규씨의 누나 김도현씨는 동생이 사망한 후 1년 동안 진상규명을 위해 달려왔다. 8일 오후 인터뷰 후 그에게 거리에 서 줄 것을 부탁했다.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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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화 대신 오래된 운동화 신고 작업... '안전'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날 김도현씨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 앞서 경기도 이천시에 위치한 '서희청소년문화센터'로 향하고 있었다. 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는 지난달 30일 희생자를 기리는 합동분향소가 마련됐다.

김씨는 "고인에 대한 조의를 표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사고 첫날부터 현장에 가 의자라도 나르고 도움을 드리고 싶었지만, 일반인 분향이 제한된다는 이야기에 이제야 '다시는' 가족들과 함께 가게 됐다"라고 밝혔다.

김씨는 "고인에 대한 신상파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라 일단은 가서 유가족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볼 거다. 우리는 같은 상황을 겪었으니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가 언급한 산재피해가족 모임인 '다시는'은 수원 건설현장에서 사망한 고 김태규씨를 비롯해 태안화력발전소 근무 중 사망한 고 김용균씨, 백혈병으로 사망한 삼성전자 반도체 노동자 황유미씨, 산업체 현장실습 중 사망한 제주 고교생 이민호군 등 산업재해 피해자 유가족과 피해 당사자, 활동가들이 모여 만든 단체다. 단체명 '다시는'은 피해자들이 겪은 산업재해가 다시는 재발하지 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김도현씨의 핸드폰. '다시는' 홀더와 동생 고 김태규씨의 사진이 있다.
 김도현씨의 핸드폰. "다시는" 홀더와 동생 고 김태규씨의 사진이 있다.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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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김도현씨의 심신은 불안정한 상태다. 이천 물류창고 참사와 동생 고 김태규씨의 상황이 오버랩됐기 때문이다. 김씨는 "(이천 물류창고) 사고를 접한 이후 거의 잠을 못 자고 있다"면서 "수면제를 먹어도 소용이 없다. 이천 물류창고 건물이 (동생) 태규가 사고가 난 건물과 외관이 너무나도 똑같다. 눈을 감으면 계속 떠오른다"라고 말했다.
 
"동생이 사고를 당했을 때 상황 역시 똑같았다. 원청에서는 공사를 빨리 끝내려고 하청에 재촉했다. 하청은 공사기한을 맞춘다고 무리를 했다. 결국, 기본적인 것을 지키지 않아서 또 사고가 났다."

김씨의 동생 고 김태규씨는 2019년 4월 10일 사고 당일, 안전화와 안전벨트 등 기본적인 안전 장구를 받지 못했다. 작업화 대신 자신의 오래된 검은색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작업하다가 사고를 당했다. 안전대와 안전망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천 물류창고 화재 참사 유가족들에 대한 김씨의 걱정이 깊은 것도 이 때문이다. 김씨는 "건설현장을 지날 때마다 동생 생각이 나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면서 "이천 물류창고의 유가족분들도 마찬가지일 거다. 불만 봐도 '내 자식이 불에 타 죽었다'면서 평생을 고통스럽게 지낼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시공사 대표가 와서 1분 동안 무릎 꿇은 뒤 병원에 실려 갔다고 하던데 무릎 꿇는 거라면 나 역시 백 번이라도 할 수 있다. 동생이 살아 돌아온다면 무슨 짓이라도 못할까. 중요한 건 이런 참사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책임자를 처벌하고 법을 정비해야 한다는 점이다."

김씨는 "20대 국회에서 잇따라 발의됐지만, 논의조차 되지 못했던, 국회에 계류 중인 중대재해 기업처벌법(기업살인법)이 제정되어야 한다"면서 "21대 국회는 매년 2400명의 죽음의 행렬, 기업 살인을 이제는 더는 방관하고 방치해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이천 물류창고 화재의 경우 소방안전점검 필증이 발부됐다. 그러나 현장 점검도 없이 발급된 `허위 필증`에 불과했다. 당연히 현장에서 안전교육은 이뤄지지 않았고, 가스 검지 및 경보장치도 없었다. 방화 셔터나 스프링클러도 수동으로 작동하게 돼 있었다.

이재명 "화재나 소방 문제 아닌, 노동현장의 산업안전 문제"

 
29일 이천 물류창고 화재현장을 찾은 이재명 경기도지사
 29일 이천 물류창고 화재현장을 찾은 이재명 경기도지사
ⓒ 경기소방재난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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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지난 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결론적으로 이천 화재사고는 화재나 소방 문제가 아닌, 노동현장의 산업안전 문제"라며 "노동현장에서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가 작동되지 않은 결과"라고 성토한 이유다. 이 지사는 "사람 목숨값 보다 절감되는 공사비가 더 큰 상황에서 돈 대신 목숨이 희생되는 것은 필연"이라고도 했다. 

이재명 지사는 "인화물질로 화재위험이 큰 공사현장에서 불꽃 튀는 용접작업을 제한하는 규정만 제대로 지켰어도, 안전관리자를 제대로 지정하고 규정준수 감시만 제대로 했어도, 서류상의 위험경고를 넘겼다"면서 "안전규정 미준수와 위험방치로 인한 인명피해에 대해서는 실수익자의 엄정한 형사책임은 물론 고의적 위험방치에 대해 과할 정도의 징벌배상을 가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태그:#고용노동부, #이재명, #이천화재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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