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우내 진행되었던 메이저리그의 사인 훔치기 의혹과 관련된 수사가 모두 종결됐다.

4월 23일(이하 한국 시각)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2018년 레드삭스 구단의 사인 훔치기와 관련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메이저리그 홈페이지를 통해 15쪽 분량의 공식 보고서를 공개하고 그와 관련된 징계 방안을 발표했다.

비디오 리플레이 담당 직원이 주도

사무국의 발표에 의하면 레드삭스의 사인 훔치기는 비디오 리플레이 담당 직원이었던 J.T. 왓킨스에 의해 행해졌다. 왓킨스는 경기 중 비디오를 통해 상대 팀의 사인을 파악하고, 이를 일부 선수들에게 몰래 전달한 것으로 밝혀졌다.

다만 왓킨스 이외의 다른 직원들은 관여하지 않았고, 왓킨스 혼자 일탈 행위를 했기 때문에 선수단 전체가 조직적으로 관여할 틈은 없었다. 사인 훔치기가 행해진 비율은 2018 시즌 레드삭스 타자들 전체 타석 중 19.7%였다.

비록 일부 선수들만 사인을 전달받았다고 하더라도 경기 중 부정행위는 명백한 잘못이다. 이에 메이저리그의 커미셔너 롭 만프레드는 왓킨스에 대해 2020년 1시즌 직무 정지 징계를 부과했다. 2021년 야구 관련 업무에 복귀할 수는 있지만 리플레이 관련 근무는 금지된다.

지난 2017년 휴스턴 애스트로스가 사인 훔치기로 구단 차원의 징계를 받았던 것처럼 레드삭스에도 구단 징계가 내려졌다. 그러나 일부 선수만 관여했기에 레드삭스는 올해 예정된 신인 드래프트에 한하여 2라운드 지명권만 박탈됐다.

선수들에게는 징계하지 않겠다는 사무국의 사전 발표에 의거해 애스트로스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2018년 레드삭스에 있었던 선수들도 별도의 징계를 받지 않았다.

감독과 코치들도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여 사퇴한 알렉스 코라 전 감독에게는 기존 징계만 유지됐다. 코라 전 감독은 2017년 애스트로스 벤치코치로서 사인 훔치기에 관여했던 이력으로 2020년 1시즌 자격 정지 징계를 받은 바 있다.

벤치코치로서 임시 감독으로 임명되었던 론 로니키 역시 사인 훔치기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이 밝혀졌다. 이에 레드삭스 구단은 사무국의 조사 결과 발표와 동시에 로니키를 정식 감독으로 임명했다.

리플레이 분석실 출입 제한 강화

이번 사인 훔치기는 두 팀의 사례 모두 비디오 판독 신청을 담당하는 리플레이 분석실을 통해서 시작되었다. 경기 도중 상대 팀의 포수 사인을 카메라로 포착한 뒤 해독하여 타자에게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때문에 메이저리그에서는 2020 시즌부터 리플레이 분석실 출입 제한을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리플레이 분석실은 클럽하우스에서 가까운 장소에 놓을 수 없으며 별도의 독립된 공간으로 옮겨진다. 경기 중에는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파견한 경비 직원을 투입하여 출입 제한을 강화한다.

사실 리플레이 분석실에 경비 인력 투입을 투입한 것은 2018년 포스트 시즌부터였다. 2017년 포스트 시즌 이후 논란이 커지자 2018년 포스트 시즌에는 리플레이 담당 직원과 구단 관계자의 의사소통 내용을 모두 기록했다. 레드삭스의 담당 직원이었던 왓킨스는 당시 분석실이 클럽하우스 근처라 이를 뚫고 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리플레이 분석실을 옮긴 뒤에는 경비 인력을 정규 시즌에도 상시 투입한다. 또한 경기 도중 클럽하우스 내부나 근처에서 기술 담당 직원이 플레이를 기록하는 것도 금지되며 경기 도중 타자들이 타석 분석을 위해 사용하는 비디오는 포수 사인을 가리고 제공되는 방안도 논의됐다.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SI)에 의하면, 이에 대한 논의가 상당히 진행되었지만 코로나바이러스-19(이하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하여 중단된 상태다. 워낙 중대한 사안이라 시즌 재개가 결정되면 이에 대한 논의를 마무리하고 방침을 확정할 것으로 보인다.

코라 전 감독의 성명 발표, 사무국의 결정 존중

사무국의 결정이 내려지고 난 뒤, 징계 대상자 중 코라 전 감독이 성명을 발표했다. 코라 전 감독은 애스트로스 벤치코치였던 2017년 선수단의 집단 사인 훔치기에 관여했던 이력으로 1년 자격 정지 징계를 받은 상태다.

그러나 이번 레드삭스 조사와 관련해서는 관여가 없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추가 징계는 받지 않게 됐다. 확정된 징계에 의하면 2021년 시즌부터는 다시 지도자로 활동할 수 있으나 본인의 양심과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ESPN을 통해 보도된 코라 전 감독의 성명에 따르면, 그는 만프레드 커미셔너가 레드삭스의 스태프였던 자신이 메이저리그 규정을 위반하지 않았다는 소견을 밝힌 것에 대해 안도함을 밝혔다. 또한 2017년 자신의 행동에 대한 커미셔너의 결정 역시 존중하고 받아들인다고 했다.

레드삭스 감독으로서는 결백이 증명되었으나, 애스트로스 벤치코치로서의 코라는 명백히 부정행위를 저질렀다. 이에 코라 전 감독은 이에 대한 규정 위반과 관련해서는 전적으로 책임을 지겠다고 밝혔다. 

2017년 당시에는 선수였기에 징계를 받지 않았지만 징계와 별개로 자신의 자리에서 물러난 이도 있다. 당시 애스트로스 최고참이었던 카를로스 벨트란은 2017년 월드 챔피언을 끝으로 은퇴 후 2020 시즌부터 뉴욕 메츠 감독으로 선임되었지만 스프링 캠프 지휘도 못하고 감독직을 내려놓게 됐다.

벨트란이 선수 시절 메츠에서 7년을 뛰었던 이력을 감안해 메츠는 벨트란을 제 22대 정식 감독으로 인정하긴 했다(메츠 구단 최초 라틴계 감독). 그러나 사인 훔치기에 관여한 이력 때문에 벨트란은 향후 명예의 전당 입후보 투표에서 좋은 반응을 얻기는 힘들게 됐다.

확정된 두 팀의 징계, 과연 합당할까

이리하여 이번 사인 훔치기 스캔들과 관련되어 두 팀의 징계는 모두 확정됐다. 애초에 이번 조사 과정에서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선수들에게는 별도의 징계를 부과하지 않기로 발표했기 때문에 구단 프런트의 책임자나 관련 직원만 처벌하고 드래프트 지명권을 박탈하는 선에서 끝냈다.

그러나 이번 사무국의 징계 발표와 관련해 논란이 없는 건 아니다. ESPN의 기자 제프 파산은 레드삭스 같은 부자 구단에게 있어 2라운드 지명권 1장 박탈은 그리 심각한 피해가 아닌 점을 꼬집었다.

실제로 레드삭스는 2019년 시즌만 해도 메이저리그 30팀 중 가장 많은 팀 연봉을 지급했다. 메이저리그 선수 신분인 40인 로스터 선수들에게 지급된 연봉은 총 2억 2800만 달러였고, 이에 대하여 1340만 달러의 사치세를 냈다. 드래프트 지명권 1장 정도의 손실은 트레이드 시장이나 FA 시장에서 충분히 메울 수 있는 팀이다.

애스트로스 역시 미국에서 인구가 4번째로 많은 텍사스 주 휴스턴을 연고로 하는 팀이다. 중계권, 입장료 등 각종 수익으로 충분히 재정을 확보할 수 있다. 미래를 봤을 때 조금 타격이 있다면 1라운드와 2라운드 지명권을 2년 동안, 총 4장의 지명권을 쓸 수 없다는 것 정도다.

애스트로스는 2번의 드래프트에서 지명권 2장씩을 박탈당한 것 이외로 제프 르나우 전 단장과 A.J. 힌치 전 감독에 대한 1년 자격 정지로 징계가 끝났다. 사무국 징계와 별개로 구단 징계 차원에서 단장과 감독을 잔여 계약 기간과 관계없이 경질한 것이 추가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훔친 사인을 전달 받아서 실전에 활용했던 선수들에 대한 징계는 없었다.  실제 승부에 영향을 미쳤던 선수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번 조치가 미흡하다는 평가다. 

선수들에게 경각심을 줄 수 있는 보다 확실한 방법이 필요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리그가 중단되면서 흐지부지될 가능성도 있다. 핵심 주도 선수들에 대한 일벌백계가 없다는 점에서 이번 사무국의 조치가 다소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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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 브랜더/서양사학자/기자/작가/강사/1987.07.24, O/DKU/가톨릭 청년성서모임/지리/교통/야구분석(MLB,KBO)/산업 여러분야/각종 토론회, 전시회/글쓰기/당류/블로거/커피 1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있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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