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3일 개봉을 앞둔 <애프터 웨딩 인 뉴욕>의 원작 <애프터 웨딩>(2006)은 예기치 못한 상황을 앞두고 고뇌하는 두 남자의 부성애를 다룬 덴마크 영화다. 참고로 <애프터 웨딩>을 리메이크한 <애프터 웨딩 인 뉴욕>은 주인공들의 성별을 바꿔, 미셸 윌리엄스, 줄리안 무어 등 할리우드의 쟁쟁한 여성배우들이 영화 전면에 나선다. 

2018년 넷플릭스 공개와 함께 역대 최고 오프닝을 기록한 <버드 박스> 연출자 수잔 비에르 감독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리는데 일조한 <애프터 웨딩>은 인도 빈민 아동 구호에 헌신하는 야콥(매즈 미켈슨 분)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자신이 운영하는 고아원의 경영난에 시달리던 야콥은 덴마크 부호 욜겐(롤프 라스가드 분)에게 다소 황당한 투자 제안을 받는다. 투자를 받고 싶으면 무조건 덴마크에 와야하고 욜겐의 딸 결혼식에 참석해야 하는 것. 썩 내키지는 않지만 곧 문을 닫을 위기인 고아원을 생각해서 어쩔 수 없이 덴마크 행 비행기를 타야 했던 야콥은 그곳에서 상상도 하지 못했던 충격적인 진실과 마주한다. 

욜겐의 딸 안나 결혼식에 참석한 야콥은 욜겐의 부인인 헬렌느가 자신의 전 애인이고, 안나가 자신의 친딸이라는 사실을 알고 큰 충격에 빠진다. 욜겐을 친아버지 그 이상으로 의지했던 안나 또한 야콥의 존재를 알고 대혼란에 빠진다. 야콥과 헤어진 후 연락이 되지 않았던 헬렌느 또한 이 상황이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욜겐의 계획에 의해 성사된 필연
 
 영화 <애프터 웨딩>(2006)

영화 <애프터 웨딩>(2006) ⓒ IFC Films

  
우연이라고 하기엔 짓궂다 못해 가혹하기 짝이 없는 만남. 알고 보니 이는 욜겐의 계획에 의해 성사된 필연이었다. 불치병에 걸려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던 욜겐은 자신의 가족을 맡길 적임자로 아내의 전 애인이자 딸의 생부인 야콥을 떠올렸고, 거액의 후원을 미끼로 그를 덴마크로 불러들인 것이다. 

고대 유목민족 사회에서 형이 죽으면 동생이 그의 아내와 재산을 가진다는 '형사취수제' 풍습은 많이 들어봤지만, <애프터 웨딩>처럼 자신의 연적(?)에게 아내와 자식을 맡기는 남자는 좀 특별하게 다가온다. 어떻게 보면 아예 남보다 못한 사람에게 손을 내밀 정도로 가족의 안위가 먼저인 남자의 가슴 절절한 부성애 아닌가. <애프터 웨딩>이 개봉 당시 특별한 가족 멜로 드라마로 화제를 모으며, 미국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오른 것도 이 독특한 설정에 있었다. 

그러나 기존 부계 중심 가족 모델에서 벗어나 다양한 가족 형태가 자리 잡은 2020년에 이 영화를 다시 보니, 아내와 가족의 미래를 새로운 가부장제에게 일임하는 남자의 선택이 다소 불편하게 다가온다. 고대 사회에서 형사취수제 풍습이 존재했던 것은, 여성은 경제권을 가질 수도 없었고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능력이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욜겐이 아내의 전 남자친구이자 딸의 생부인 야콥에게 가족의 미래를 맡긴 것도, 평생을 전업 주부로 살아온 아내가 가족을 부양하고 책임질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욜겐에게는 또래 남성과 결혼을 앞둔 장성한 딸이 있었지만, 그녀를 부양할 수 있는 남자(들)의 보살핌이 필요한 존재로만 여겨진다. <애프터 웨딩> 속 여성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스스로 선택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그저 남자들에 의해 선택되어질 뿐이다. 

주인공들의 성별 바꿔 '리메이크'
 
 영화 <애프터 웨딩 인 뉴욕>(2019)

영화 <애프터 웨딩 인 뉴욕>(2019) ⓒ 영화사 진진

 
<애프터 웨딩>의 주인공들의 성별을 바꿔 리메이크한 <애프터 웨딩 인 뉴욕>에도 이와 비슷한 설정이 등장한다. 고아원의 재정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뉴욕의 성공한 사업가 테레사(줄리안 무어 분)의 초대에 응해야 했던 이자벨(미셸 윌리엄스 분)은 테레사의 딸 그레이스(애비 퀸 분)가 자신이 오래전에 낳자마자 버린 친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이의 미래를 책임질 수 없어 딸의 양육을 거부한 여성과 예술가인 남편을 대신해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 온 또 다른 여성의 삶은 욜겐이 야콥에게 가족을 맡긴 것과는 다른 결로 느껴진다. 남편의 전 애인이자 딸의 친모인 이자벨에게 매우 어려운 부탁을 건네는 테레사는 아직 어린 두 쌍둥이 아들의 앞날이 걱정될 뿐, 남편과 큰 딸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다. 그저 남편과 딸과 함께하는 좋은 친구가 있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이는 전적으로 이자벨의 선택에 달려있다. 

이처럼 <애프터 웨딩 인 뉴욕>은 주인공의 성별만 바꿨을 뿐이지만, 원작이 가지고 있던 시대착오적인 젠더 관습을 과감히 비틀며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가족을 위해 헌신적인 삶을 살았지만 자신의 소유물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부장과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았지만 그들 각각을 독립된 개체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여성의 삶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아내와 딸의 앞날을 독단적으로 다른 남자에게 위임하는 가부장적인 욜겐과 이자벨은 물론 남편과 딸이 각자의 운명을 선택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테레사 사이에서 현재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인간상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변화하는 가족의 유형과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비교해서 보는 재미가 쏠쏠한 <애프터 웨딩>과 <애프터 웨딩 인 뉴욕>이다. 
 
 영화 <애프터 웨딩>(2006)

영화 <애프터 웨딩>(2006) ⓒ IFC Fil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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