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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해고자 김용희씨가 서울 서초구 강남역 삼성생명 빌딩앞 CCTV철탑위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 CCTV탑 고공농성중인 삼성해고자 김용희씨 삼성해고자 김용희씨가 서울 서초구 강남역 삼성생명 빌딩앞 CCTV철탑위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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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클라쓰>라는 드라마가 있다. 거기 나오는 대한민국 최대 요식업계 창업주는 아들에게 이렇게 가르친다. "네가 부리는 사람은 인간이 아니라 개라고 생각하라"고. 개가 주인을 몰라보고 기어오르면 가차없이 잘라, 그가 자신과 같은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라고.

그 창업주의 아들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모든 사람들은 그의 돈 앞에 고개를 숙였다. 교사, 교장, 경찰, 같은 반의 모든 아이들까지. 그들은 자발적으로 개가 됨으로써, 부자를 무소불위의 권력자로 만들었다.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 돈 많은 집 자식이라 해서 급우에게 폭력을 저지를 권리를 가지진 않았다는, 그 단순한 상식을 지킨 한 사람은 그 대가로 학교에서 잘리고, 감옥에 갔으며, 그의 아버지는 직장을 잃는다.

아버지는 결국, 망나니 자식에게 죽음까지 당하지만, 또 돈이 모든 걸 해결한다. 돈 앞에서 무릎 꿇을 줄 모르는 주인공은 "사회성이 부족한 또라이" 취급을 당하면서도, 생각을 굽히지 않으며 단단한 태도로 살아간다. 드라마는 물론 이 모든 불의를 뒤엎고 소신을 지킨 사람의 승리로 끝났고, 많은 사람들은 이 드라마에 열광했다. 그러나 현실의 대한민국에선 어떤 일이 진행 중인가?

김용희란 사람이 있다. 그는 서울 강남역 사거리 CCTV 타워 위에서 300일이 넘도록 고공농성 중이다. 그는 대한민국 헌법이 규정하는 권리인 노조활동을 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은 대가로, 자신의 삶이 철저하게 파괴된 것은 물론 부모와 아내까지 혹독한 고초를 겪었다.

그는 대한민국이 법치국가임을, 기업은 자본가와 노동자가 협력하여 이뤄나가는 것이라는 상식을 믿었다. 그러나 삼성은, 노조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며, 노조활동을 하고자 했던 그의 삶을 철저히 파괴했다. 삼성은 노동자를 주는 대로 받아먹고 기업주를 위해 충성을 바쳐야 하는 대상으로 여겼고, 함께 마주앉아 협상을 할 수 있는 존재라 여기지 않은 것이다. 

드라마에선 10여 년만에 마침내 상황이 역전됐지만, 김용희씨의 투쟁은 39년째 진행 중이다. 김용희씨의 증언에 기초해 그가 삼성에서 겪은 일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 1982년 삼성항공 창원공장에 입사한 김용희는 삼성이 노조 대신 만들어놓은 노사협의회 위원으로 당선됐다. 그러나 노동환경을 개선해보려는 그의 노력은 온갖 탄압으로 돌아왔다.

- 1984년 견디다 못한 그는 농약을 마시고 자살을 시도했으나, 살아서 출근한 그에게 사측은 도박 빚 때문에 자살을 시도했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 1989년에는 각목 테러를 당해 뇌진탕으로 20일을 입원하기도 했고, 야근 작업 도중 프레스에 손가락이 절단된 노동자의 응급치료와 산재처리를 했으나 무재해 목표 달성 무산시켰다는 이유로 오히려 징계를 당했다.

- 1991년 드디어 노조 설립을 앞두었지만 회사 여직원 성추행 누명으로 징계해고 된다. 그 성추행이 조작이라는 여직원의 증언을 토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어이없게 패소한다. 당시 소송을 맡은 문재인 변호사 사무실의 사무장이 여직원 증언이 담긴 공증서류를 재판부에서 제출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과정에서 아버지는 회사의 협박 후 아들의 투쟁을 만류하는 유언장을 남기고 지금까지 행방불명이며, 아내는 경찰에게 성폭행을 당할 뻔했다.

- 1994년 우여곡절 끝에 삼성종합건설로 복직됐지만 러시아 스몰렌스키 지부로 발령받았다. 그곳에서 그는 직장 동료들에 의해 간첩이라며 신고당하기도 한다.

- 1995년 결백을 입증하고, 귀국 후 새로 발령받은 삼성시계로 출근했지만 사측은 노조포기 각서를 요구하며 그를 막았다. 또 10억을 주겠다며 회유했지만 거절했다. 그리고 한 달 뒤, 삼성시계는 해고통보서 없이 구두로 그를 해고했고 김용희는 지금까지 투쟁 중이다.

 
2019년 7월 삼성해고자 김용희씨가 서울 서초구 강남역 삼성생명 빌딩앞 CCTV철탑위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2019년 7월 삼성해고자 김용희씨가 서울 서초구 강남역 삼성생명 빌딩앞 CCTV철탑위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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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삼성은 김용희씨가 일하던 삼성시계가 문을 닫았고, 너무 오래된 일이라며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몇 번의 단식에도 요지부동이자 김용희씨는 지난 4월 5일부터 언제 끝날지 모르는 단식을 시작했다.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삼성은 노조탄압은 물론, 한 인간과 그 가족을 향해 협박과 폭력, 모함, 허위사실 유포 등 숱한 범죄를 저질러 왔다. 그러나 법은 김용희씨를 지켜주지 않았고, 삼성을 벌하지 않았다. 이것은 김용희 단 한사람이 겪은 일인가?

기록되지 않은 숱한 죽음들, 모욕, 비하, 자라날 틈도 없이 짓밟힌 존엄... 그것들이 쌓여 우리가 사는 세상은 노동자의 지옥이 되었다. 그 세상은 돈만 가지면 인간을 개로 부릴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모든 권력을 가진 세상이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을 만들다 만들다 n번방도 나왔다. 세상은 돈이면 다라고 배운 10대와 20대가 만들고 운영해 온 그 악마의 소굴에 돈을 내고 입장한 다수의 사람들은 30, 40대 성인 남성들이었다.

경찰도, 법원도, 국회도, 정부도 삼성 앞에서 움츠러든 결과, 삼성은 숱한 반헌법적 행위를 짓고도 여전히 만인이 두려워하는 권력 위에 건재한다. 삼성이 짓밟는 것은 노동자들만이 아니다. 지금, 삼성생명 암보험에 가입했으나, 제대로 보험금을 지급받지 못한 피해자들의 삼성생명 고객센터 점거농성이 80일이 넘었으며, 삼성물산의 재개발 사업에 희생당한 과천의 철거민들이 16년째 싸우고 있다. 삼성은 자신들이 휘두르는 권력 앞에서 고개를 쳐드는 모든 이들을 향해 만용을 저지른다. 법과 공권력이 그들 앞에선 멈춰서기 때문이다.

김용희가 요구하는 것은 단순하다. 죄 지은 사람이 벌 받는 것. 즉, 노동3권을 가루로 만들어온 삼성이 그 대가를 치르는 것. 마침내 그가 삼성으로부터 사과받고 복직하는 것. 그리고 삼성이 무노조 경영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의 모든 요구는 대한민국에 법이 작동한다면, 당연히 이뤄졌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촛불로 세상이 바뀌고 박근혜에 이어 이재용이 수감된 이후에도 노동자들에게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돈 받은 박근혜는 감옥에 있지만, 돈을 준 이재용은 2년 전, 2심에서 집행유예로 나온 뒤, 오늘도 자유롭게 기업인으로 활동 중이다. 코로나로 세상이 멈춘 이후에도, 노동자들은 여전히 끼어죽고, 갈려죽고, 떨어져 죽고 있다. 코로나를 멋지게 극복한 사람들을 기다리는 곳이 자본이 법을 뭉개고 서 있는 노동의 지옥이라면, 거기서 우리는 무엇을 환호해야 하는가?

한 가지만 하면 좋겠다. 우리나라 헌법에서 노동3권을 파버리든가, 아님, 삼성을 그 법으로 벌하든가. 삼성이 벌을 받지도, 사과를 하지도 않고, 김용희씨가 지난 세월을 보상받지도 못한 채, 일주일 전 다시 단식을 시작한 김용희가 60의 인생을 고공에서 끝내 마감한다면, 그것은 한 해직노동자의 패배가 아니라 삼성 앞에 엎드린 초라한 대한민국을 공언하는 일이 될 것이다.

태그:#김용희,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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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글을 쓰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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