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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MBC에는 4년 차부터 22년 차까지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구성된 노동조합, 전국언론노동조합 대구MBC비정규직다온분회가 있습니다. 노동자의 권리를 되찾고 방송사 내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려는 현장의 목소리를 전합니다. [기자말]
 '노란조끼 입고 업무하기' 중인 대구MBC비정규직다온분회 조합원들
 "노란조끼 입고 업무하기" 중인 대구MBC비정규직다온분회 조합원들
ⓒ 대구MBC비정규직다온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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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역 방송사인 대구MBC에서 일하고 있는 10년 차 비정규직 방송노동자다. 뉴스 부조정실에서 3교대 근무를 하며 뉴스 시간에 맞춰 컴퓨터그래픽(CG), 뉴스 자막, 뉴스 생방송 자막을 운영한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 어릴 때부터 늘 부르고 들어왔던 노래처럼, 텔레비전에 그것도 MBC에, 물론 '나'는 아니지만, 내가 작업한 자막이, 그림이 나오는 게 신기하고 뿌듯했다.

회사에서는 나를 자막CG 프리랜서라고 한다, 처음엔 프리랜서란 말조차도 멋져 보였다. 내가 생각한 프리랜서는 고수익에,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고, 전문적 지식으로 능동적으로, 자유롭게 일하는 커리어 우먼처럼 느껴지는 단어였다.

이곳에 와서 알게 된 것은 정규직 아래, 계약직 아래, 그다음이 '프리랜서'였다. 이곳에서 '프리랜서'라 불리는 노동자는 야간에 일하거나 연장근무를 해도 정해진 주급을 그대로 받을 뿐이었고, 4대 보험 가입도 배제되었다.

쳇바퀴 돌 듯 매일 뉴스 생방송을 쳐내며 힘든 일도 많았지만, 2년마다 지방선거, 총선, 계절마다 중계, 특집방송, 스포츠 특집, 매일 들어가는 날씨 개황CG 등 그래도 방송일은 대체로 재밌었다. 정신없이 일하다 보니 연차는 높아지고 업무 숙련도도 높아지는데, 이상하게도 급여는 잘 오르지 않았다. 오른다고 해도 너무 조금이라 어느 순간부터는 점점 더 상황이 나빠져 그해의 최저임금과 비슷한 수준이다.

2017년 9월 MBC는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한 파업에 돌입했다. 나는 2012년 파업 이후 두 번째로 겪는 파업이었다. 비조합원으로 투쟁을 함께할 수는 없었지만, 마음만으로는 선배들을 응원했다. 파업 시작과 동시에 모든 뉴스 제작이 중단되었다. 제작이 중단되니 급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나는 고용불안과 생계비 걱정에 시달렸지만, 대의를 인정하고 묵묵히 파업을 지지했다.

회사는 우리에게 급여가 인건비가 아니라 제작비에서 지급되는 거라서, 뉴스를 제작하지 않을 경우 제작비를 청구할 수 없다고 했다. 우리는 부당함을 느꼈다. 이번엔 제대로 이야기해 보고 싶었다. 우리 CG팀의 처우개선에 관해. 커피 마시면서 사담하는 가벼운 분위기가 아닌, 이번엔 제대로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 처우개선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했다. 내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고 싶었다.

망설이고 또 망설이고 고민하고 또 고민했는데
 
 피케팅에 나선 대구MBC비정규직다온분회 분회장과 조직부장
 피케팅에 나선 대구MBC비정규직다온분회 분회장과 조직부장
ⓒ 대구MBC비정규직다온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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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역 MBC 전 계열사에 전화를 걸어 우리와 같은 직군의 노동 실태를 조사했다. 우리가 얼마나 열악한 상황에 있는지, 처우 개선이 왜 필요한지 한눈에 알 수 있는 자료를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의기투합해서 매 주말 시간을 내 회의를 하고 자료를 모았다. 처우개선을 해주지 않는다면 우리끼리라도 파업하자는 결의를 다지면서.

회사에 면담을 요청하는 공문을 준비하고 우리의 요구안을 만들었다. 계약해지의 두려움을 안고 관련 담당자에게 공문을 전달하려 했지만 받아주지 않았다. 공문조차 받아주지 않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기에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나름의 방법을 찾아, 지방선거 이후 사장님과 회식 자리에서 사장님에게 직접 요구안을 전달했다. 그 후 처음으로 관련 담당자와의 자리가 마련되었지만, '내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바란다'는 우리의 말에 "노동이라기보다는 서비스의 제공이에요", "쉽게 얘기해서 사람이라기보다는 서비스를 제공받는 거예요"라는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머리가 하얘지고 몸이 떨렸다. 우리는 구성원이라 생각하고 부당하다고 생각이 들 때에도 묵묵히 맡은 일을 해왔는데 '서비스 제공'이라는 한마디에 10년 동안 일을 하면서 느꼈던 보람, MBC에 대한 동경, 자부심이 모두 무너졌다. 함께 일을 해왔는데 아니었다. 우리를 그저 소모품으로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권리를 찾기 위해 깨어나기로 했다. 노조를 만들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분회장은 처음부터 노동조합을 만들자고 CG팀원들을 설득했지만 팀원들과 나는 노동조합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았다. 나에게 노동조합이란 뉴스 리포트에서나 보던 것들이었다.

투쟁, 시위, 교섭, 단어부터 모두 무섭게 느껴졌다. 노조는 겁나고 뭔가 회사에 죄짓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 '그런 거 나랑 안 맞아, 난 그냥 편하게 살고 싶어, 처우개선만 된다면 난 크게 바라는 거 없어'라고 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개선은 이뤄지지 않았다.

회사는 언제나 기다리라는 말뿐. 회사와 우리들 사이엔 큰 벽이 있었고, 그 벽은 우리 개개인의 힘으론 절대 깰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평생 노조라는 걸 모르고 살다가 노조를 만든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망설이고 또 망설이고 고민하고 또 고민했는데, 생각해보니 우리와 매일 함께 일하는 정규직 선배들은 거의 대부분 노동조합에 가입되어있는 조합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2년 전 우리처럼 혼자 울고 있을 이들을 위해
 
 대구MBC비정규직다온분회의 로고
 대구MBC비정규직다온분회의 로고
ⓒ 대구MBC비정규직다온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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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뭐가 그렇게 무서웠을까. 아, 또 내가 바보 같은 선택을 하려 했구나.'

선배들이 보여준 것처럼 투쟁할 일이 있으면 투쟁하면 되는 건데. 나는 선배들을 본받기로 했다. 가까운 곳에 롤모델이 있었다. 보도국 내 프리랜서란 이름의 비정규직 노동자 10여 명 모두 처우에 대한 불만이 가득했다. 함께 노조를 만들자고 설득했다. 하지만 내가 노동조합을 하기로 결심하는 게 쉽지 않았던 것처럼 설득은 어려웠다.

연차가 오래될수록 설득은 더욱 힘들었다. 회사가 바뀌지 않을 걸 알아서, 조금은 회사에 희망을 품고 있어서, 더러워서 그만둘 것이라는 등 여러 가지 이유였다. 이해는 하지만 속상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쉽지 않은 과정을 거치며, 우리 CG팀만이라도 노조를 만들어야 하나 고민하던 중 한 줄기 빛처럼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하던 기술국 마스터 디렉터(MD) 친구들이 나타났다. 가까이서 일하고 있었지만 서로 잘 몰랐다. 함께 연대하는 친구들이 나타나니 일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타국의 프리랜서란 이름으로 일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한 명 한 명 만나 이야기를 듣고 설득을 했다. 모두가 각자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우리의 처지는 정말 어쩜 그리 똑같던지. 이 회사에 또 다른 내가 어디든 존재하고 있었다.

문제는 심각했다. 프리랜서라는 이름으로 묶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느끼는 보편적인 부당함과, 저임금의 굴레 속에 있지만, 그 누구 하나 우리를 위해 나서주지 않는 슬픈 현실. 하지만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서로 힘이 되었다.

결국 2019년 1월 31일, 좋은 일이 다 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은 '다온'이라는 이름으로 '비정규직 차별 철폐!', '우리는 소모품이 아닌 노동자다!', '우리가 뉴스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전국언론노동조합 대구MBC비정규직다온분회 설립총회를 열었다.

우리는 함께 두려움을 떨치고 노동자로 당당히 일어서기 위해 한 발자국 내디뎠다. 그 한 발자국 내딛는 데 1년이 걸렸다. 이제 시작했다. 더 이상 부당함에 혼자 숨죽여 우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내 인생에 '노동조합'이라는 단어가, '투쟁'이라는 단어가 들어올 줄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 바보 9년에서 깨어나며 앞으로는 그렇게 살지 않을 것이라 다짐한다. 대부분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처한 이런 상황을 더이상 모른 척할 수도 없었다. 조금 어려웠지만, 이제부터라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한다.

투쟁으로 나아가 앞으로 비정규직 조직화에 우리가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 더 많은, 혹시 2년 전의 우리처럼 혼자 울고 있을지도 모를 비정규직 종사자들과 함께 연대하며 투쟁할 수 있길 바라본다.

[비정규직 방송계 종사자로 산다는 것 ①] 방송국에서 밤새워 일해도 급여는 '정액제'
 

덧붙이는 글 | 강서윤 기자는 언론노조 대구MBC비정규직다온분회 조직부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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