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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에게서 받은 안내문. 휴교령 내린 지 사흘 만에 원격수업에 안내와 지침과 방법이 이메일로 왔다.
 교장에게서 받은 안내문. 휴교령 내린 지 사흘 만에 원격수업에 안내와 지침과 방법이 이메일로 왔다.
ⓒ 이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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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4일, 호주 멜버른의 모든 초중고등학교가 공식적으로 폐쇄되었다. 코로나19 확산이 전 세계적으로 심상치 않게 흐르자, 가을 방학(3월 30일 ~ 4월 13일)을 나흘 앞두고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폐쇄령이다. 호주는 4월 2일 기준으로 코로나19 확진자는 5108명이고 사망자는 24명이다.
      
기자가 공부하고 있는 보조교사 자격증 과정도 24일부터 바로 온라인 화상 수업으로 대체되었다. 23일 강사 에릭이 접속할 주소를 수강생에게 보내줬다. 다음 날 아침 10시, 수강생 17명이 각자의 집에서 동시에 줌(ZOOM)을 통해 수업을 했다. 60세가 넘는 헤일리도 한 시간 정도 지나자 안정적으로 수업에 참여할 수 있었다. 모두에게 신선한 첫 원격 수업이었다.

3월 27일,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 교장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2주간의 방학이 끝나고도 개학을 할 수 없는 경우를 대비한 원격 수업(온라인 수업) 안내였다. ▲ 교육부 지침을 참고해 교사들과 협의하고 학교 상황에 맞게 준비하고 있다는 내용 ▲ 웹엑스(Webex)를 통해 매일 담임과 일대일 화상 소통을 15~20분간 진행할 것이란 안내 ▲ 각종 과제에 대한 안내와 제출 등은 학급 구글 클래스룸을 통해 이뤄질 것이란 내용이었다.

같은 날 오후, 담임에게서도 이메일이 왔다. ▲ 학생들이 구글 클래스룸에 접속할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생성되었고 이용 방법을 학교에서 숙지시켰다는 점 ▲ 구글 클래스룸 설치에 대한 안내와 접속 방법 ▲ 원격 수업 확정시 구글 클래스룸을 통한 학교와 학생 간의 소통 계획 등이 담겨 있었다.

3월 28일, 초등 3학년 아이와 함께 구글 클래스룸을 설치했다. 아이는 학교에서 교사가 가르쳐 준 대로 잘 따라 했다. 담임은 제일 먼저 '인터넷 사용 에티켓'을 올려놓았고, 사진이나 사생활 정보가 담긴 내용을 올린 학생에게는 '사생활 보호'에 대한 안내와 내용 수정에 대해 조언했다. 아들은 하루에 한 번씩 구글 클래스룸에 들어가 친구들의 일상을 확인하고 본인의 일상도 올려본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멜버른에서는 휴교령이 내린 지 3~4일 만에 교육 주체 간(교육부-학교-학부모-학생) 소통이 이메일 몇 통으로 이뤄지고 원격수업 대비가 끝난 셈이다.

IT 강국의 우왕좌왕

한국에서 고등학교에 근무하는 친구와 통화를 했다. 아직 개학도 못 해서 얼굴도 본 적 없는 학생들의 부모에게 하루 종일 전화를 돌렸다고 했다. 개인 핸드폰 번호가 노출되어서 망설여졌지만 비상사태이니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부모들은 바쁘거나 스팸 전화인 줄 알고 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도 했다. 이름이 비슷하거나 같은 애들이 있고 얼굴도 모르니 너무 혼란스러워서 실수를 했다고 했다. 학생을 헷갈려 상담하는 자신을 보고 학부모와 같이 웃었다고 했다.

"근데, 호주는 온라인 수업 준비 어떻게 해? 거기도 여기처럼 정신없어?"

이미 학교와 가정에서 준비가 끝났고 정부의 결정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하자 친구는 물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해?"

정보기술(IT) 강국이란 자부심이 대단한 나라에서 한 달 넘게 이어지는 휴교령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원격 수업에 대한 갈피를 잡지 못했다 한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교사들의 타임라인에는 원격 수업에 대한 근심과 회의가 밀려들고 처음 경험하는 행정 업무에 지친 하소연이 계속 올라왔다.

호주는 느린 인터넷 속도 때문에 원성이 자자한 곳이다.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는 스마트폰을 소지한 학생을 찾아보기 어렵다. 지인들은 그런 나라에서 어떻게 휴교령이 내려지고 단지 며칠 만에 준비가 된다는 건지 의아해 한다.

반대로 호주에 살아보면, 세상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 속도와 높은 인터넷 보급률, 얼리어답터들이 모인 나라, 어린 학생부터 어른까지 스마트폰 보급률이 현저히 높은 국가에서 왜 우왕좌왕하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학원 보낼 필요가 없다
 
호주 정부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모든 놀이터를 폐쇄했다.
 호주 정부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모든 놀이터를 폐쇄했다.
ⓒ 이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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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다니는 멜버른 공립초등학교의 정보통신기술(ICT) 활용 속사정은 이렇다. 학교마다 사용하는 프로그램이나 활용 방법이 약간씩 다르지만 대부분 대동소이하다고 보면 된다.

아이를 프렙(Prep, 1학년 전 과정으로 초등학교 교육과정에 포함됨)에 입학시키면 학교에서는 학부모 이메일 주소를 등록한다. 이메일 주소는 변경을 자주 하지 않으니 한 번 등록하면 초등학교에서는 7년간 사용 가능하다. 이후로 학교와 가정 간의 소통은 주로 교장을 통해 일주일에 한 번씩 이메일로 진행된다. 담임교사도 가끔 학급 단위의 안내 사항이 있을 때 이메일을 보내온다. 

담임교사의 개인 연락처를 알 필요도 없고 요구할 수도 없다. 학교에 전화할 때는 행정실을 통해서만 가능하니 학부모도 담임과 이메일로 소통하게 된다. 학생의 출결도 학부모가 직접 컴파스(한국의 나이스와 비슷한 시스템)에서 입력해야 하니 자연스럽게 IT 기능을 익히고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프렙이나 1학년 때부터 구글 슬라이드 활용을 독려한다. 학기(1년 4학기)별로 프로젝트 수업이 있고 전 학년 교실에서 아이패드나 노트북을 가지고 IT 접목 수업을 진행한다. 학생들이 주제 발표를 할 때 구글 슬라이드를 이용하도록 수업 중 교사가 간단하고 기본적인 교육을 시행하고 학생들의 수준에 맞도록 발표시킨다.

3~4학년이 되면 구글 독스를 사용해 과제를 제출하도록 훈련받는다. 학생들에게 구글 이메일 주소를 학교 도메인으로 배정하고 비밀번호도 부여한다. 구글 드라이브 사용을 원하면 교사가 직접 교과 과정과 연계하여 교육한다. 가정에서 부모가 따로 교육을 한다거나 학원을 보낼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한국의 교실도 대전환을

교사들로부터 인터넷 예절과 타인의 개인정보에 대한 존중, 검색하는 능력 등을 자연스럽게 배운다. 중등은 말할 것도 없고, 초등학교에서도 학교 수업 중에 개인용 아이패드 사용을 권장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스마트폰 소지한 학생 찾기는 어려워도 아이패드 소지한 학생들은 많다.

교장은 구글 독스로 간단한 설문지를 만들어 학부모에게 이메일로 발송하기도 하고, IT의 교육적 활용과 소통법, 기기 사용에 대한 교사들의 자질 향상을 위해 구글 팀을 불러 연수를 실시하기도 한다. 종이 가정통신문도 없고, 교사와 전화 통화 할 일이 없는 이곳에 살면서 소통의 부재는 딴 나라 얘기다. 반대로 정보 공유가 쉽고 민주적이며 효율적인 시대 흐름에 보조를 맞추는 소통을 경험하며 산다.

코로나19는 전 세계 국가들의 각 분야에 대한 '준비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호주 학교는 원격 수업을 위한 소통의 체계와 플랫폼이 오래전에 마련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미 교사, 학부모, 학생들이 기술과 환경에 익숙해져 있고 소통의 중요한 자원으로 사용하고 있다. 기존 수업 방식에 화상으로 수업하는 형태만 첨가하면 되는 일이니 큰 사회적 비용을 치르지 않고도 전환이 가능한 듯하다.

코로나19가 한국에 급속하게 전염되기 시작할 때, 한국의 선진방역체계와 의료시스템의 진면목을 전 세계에 알렸다. 그 중심에 있는 빠른 인터넷 속도와 스마트기기 사용률, IT 기술을 이용한 각종 시스템이 세계인의 놀라움을 자아냈다.

이제 한국의 교실도 이 흐름에 맞는 방식으로 대전환을 해보면 어떨까 싶다.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에 디지털 기술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될 것이라면, 교실 안에서 교사의 지도 아래 안전하고 올바르게 배우는 게 낫지 않을까? 다행히 기본 조건은 다 갖춰져 있으니 오죽 좋은가.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원격수업, #호주, #코로나 바이러스, #멜버른, #화상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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