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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창읍성(사진=문화재청)
 고창읍성(사진=문화재청)
ⓒ 심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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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읍성은 조선 단종 원년에(1453)에 외침을 막기 위해 도민들이 유비무환의 목적으로 축성한 자연석 성곽이다. 축성연대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읍성의 관아건물 보수 당시 나타난 상량문과 각종 문헌 및 성돌에 새겨진 글자들의 내용으로 축성연대를 짐작할 수 있다.

고창읍성을 다른 이름으로는 모양성(牟陽城)이라고도 불렀는데 백제 때 고창지역을 모량부리로 부른 데 따른 것이다. 고창읍성에 관한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고창현성곽조(高敞縣城郭條)에 처음 나타타나 있으며, 나주진관의 입암산성과 연계되어 호남내륙을 방어하는 전초기지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조선시대 읍성에서 쉽게 보기 어려운 주초와 문짝을 달던 홈이 파인 누문(樓門)을 가지고 있으며, 평양 고구려 시대의 성문과 보은 삼년산성이나 강화읍성 등에서 볼 수 있는 양식과 비교되어 성곽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성벽(사진=문화재청)
 성벽(사진=문화재청)
ⓒ 심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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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 있으며 최근 보수공사를 통해 원형에 가깝도록 복구하였다. 전체 성 둘레는 1,684m이고, 동·서·북문과 옹성이 3개소, 장대지 6개소와 해자들로 된 전략적 요충시설이 갖춰져 있다. 고창군청 문화관광과 박병섭 팀장은 "성 안에는 동헌·객사를 비롯하여 22동의 관아건물들로 되어 있었으나 대부분 손실되었고 일부가 복원되었다. 1976년부터 성곽과 건물 14동을 복원·정비했는데 이후로도 추가 보완하는 작업을 계속 진행중이다"고 전했다.

고창읍성에서는 매년 10월 성제기간에 성 밟기 행사가 열린다. 손바닥 정도의 작은 돌을 머리에 이고 성을 세 바퀴 돈 다음 일정한 곳에 그 돌을 쌓는 형식이다. 액운을 쫓고 복을 비는 의식의 하나인 성밟기는 윤달에 밟아야 효험이 있다고 전해진다.
 
 답성놀이하는 아낙네. 머리에 작은돌을 이고있다.(사진=CPN문화재TV심연홍기자)
 답성놀이하는 아낙네. 머리에 작은돌을 이고있다.(사진=CPN문화재TV심연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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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청 관계자는 "성밟기의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으나 머리에 이고 온 돌을 일정한 곳에 쌓아놓고 유사시의 석전(石戰)에 대비한 유비무한의 지혜라고 생각된다. 이런 의도에서 시작된 탑성놀이가 민간에 의해 다리병이 낫고 무명장수 한다는 민속놀이로 발전했다고 본다"고 하였다.

답성놀이할 때 성을 세 바퀴 돌면 극락 승천한다고 하며, 윤삼월의 효험을 특히 강조하고 있는 것은 불교적 민속신앙도 곁들여진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전해오는 민속놀이로서 고창읍성의 답성놀이는 우리조상들의 삶과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소중히 보존해야할 문화이다.

코로나19가 멈추고 나면 전라도 고창읍성에 들러, 조상들의 숨결을 느끼며 성밟기를 해본다면 우리 민속문화를 체험하는 의미 있는 경험이 될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CPN문화재TV에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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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N문화재TV 심연홍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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