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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17년 여름, 제주로 이주한 지 일년도 되지 않았을 때 같이 이주한 친구(주방장 언니)와 한적한 동네에 샌드위치 가게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그해 가을에는 샌드위치 가게 안에 책방을 열어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습니다. 

올 1월까지는 수입이 나쁘지 않은 편이었는데, 코로나19가 급격히 확산된 2월부터 매출도 곤두박질치기 시작했습니다. 동네에 사람들이 안 다니니 가게에도 손님이 오지 않았습니다. 가게에서 운영하던 공방 수업이나 독서 모임도 다 취소됐습니다. 

가게는 서귀포의 한 학교 앞에 있습니다. 평소 학생 손님들이 와서 샌드위치나 음료를 사 먹고는 했으니 개학하면 손님이 그나마 좀 오리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개학이 4월 6일로 연기됐습니다. 이마저도 늦춰지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사실상 수입이 거의 없는 상태로 기약없이 버텨야 하는 셈입니다.

결국 저희는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돈을 빌리기로 했습니다. 이 글은 코로나19로 경제적 위기에 놓인 소상공인들에게 정부가 소상공인특별대출을 지원한다고 해서 지난 2월부터 제가 이리 뛰고 저리 뛴 이야기들을 시간 순서대로 정리한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 보완책도 많이 나왔습니다. 매일 마감하던 온라인 접수는 이제는 계속 신청할 수 있다고 합니다. 다만 지금 신청하면 한두 달 후에 상담이 잡힌다고 하네요. 하루가 절박한 소상공인들이 그 긴 시간을 또 어떻게 기다려야 할지.

그래도 개선안은 계속 나오는가 봅니다. 지난 13일자 기사에 따르면, '지역 신용보증재단을 거치지 않고 정책자금을 취급하는 민간은행에서 보증과 대출을 한 번에 받을 수 있게 된다'니 근처 은행에 꼭 확인해 보셨으면 합니다.

뿐만 아니라, 보도에 따르면 '중기부 산하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운영하는 소상공인 경영안정자금 중 5일 이내 대출 가능한 '직접대출' 비중을 현행 25%에서 30%으로 확대한다'고 해요. 중요한 건 무엇보다 '속도'겠지만요. 부디 모두가 이 위기를 잘 이겨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그럴 수 있겠죠?

1월 31일

코로나19가 퍼지기 시작한 중국에서 우한을 시작으로 봉쇄를 확대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인수공통 감염병이 퍼진 수도권 소도시가 봉쇄되었다는 설정의 정유정 소설 < 28 >이 생각났다. 정체 모를 감염병의 불안과 생필품 부족, 치안 부재 속에서 펼쳐지는 파괴된 도시의 이미지와 함께 우울이 덮쳐 왔다.

낮에 여느 때처럼 바다가 보이는 과수원길로 강아지를 산책시키는데 가슴이 갑자기 조이고 숨이 막힌 듯 가빴다. 큰 숨을 몇 번이나 몰아 쉬었더니 잠시 후에 진정 됐다. 이런 일은 처음이다. 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동시에 유유 출판사 신간 제목 '내가 왜 계속 살아야 합니까'도 떠올랐다.

2월 12일

올해 2월 1일부터 시행된 한라산 탐방예약제가 시범운영 12일 만에 일시 중단됐다. 코로나19로 인한 관광객 급감이 주된 이유다. 12일만의 중단에 대해 왈가왈부가 있었지만, 관광객 감소는 제주도 경제에 직접 영향을 주기 때문에 빠른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2월 14일

유기농 귤 마멀레이드를 만들었다. 손님이 줄어 한가하니 미뤘던 일을 해치웠다.
 
가게가 한가해서 귤마멀레이드도 만들고 금귤콤포트도 만들었다.
▲ 금귤콤포트도 만들었다 가게가 한가해서 귤마멀레이드도 만들고 금귤콤포트도 만들었다.
ⓒ 김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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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7일~21일

올해 1월은 작년 1월보다 매출이 좋았다. 2년 넘게 한 자리를 지키니 이제 조금 볕들날이 시작되려나 했다. 겨울을 지나며 제주 KBS와 제주 MBC에 한 번씩 책방이 소개되기도 했다. 빨갛게 상기된 후덕한 얼굴이라도 좋기만 했다. 대박은 바라지도 않았다. 가게를 유지할 수 있기만을 바랐다.

2월 19일

가게 홍보하려고 쓰는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오늘 코로나19 확진자가 스무명이나 나왔다'라고 썼다. '조금만 아파도 집에서 쉬는 문화를 만들어가요(엄지척 이모티콘) 우리는 헤쳐나갈 수 있을 거예요(하트 이모티콘)'

2월 21일

금요일. 오전에 소상공인을 위한 코로나19 특별정책대출을 신청한다고 주방장 언니가 신용보증재단에 갔다가 바로 돌아왔다. 오늘 상담은 모두 찼다고 한다.

2월 24일

금요일. 분위기 파악 못하고 오전 8시 30분쯤 갔더니 신용보증재단 문 앞에 길고도 긴 업체 목록이 붙어 있었다. 하루 50명만 상담해 준다는데 목록은 100번도 넘은 것 같았다. 아이고야, 오늘도 틀렸구나! 뒤통수에서 머리털이 쭈뼛 일어선다.

주차장에는 시동을 켠 차들이 즐비했고 상호와 이름과 연락처가 있는 절박한 목록 앞에는 사람들이 서성거렸다. 우리처럼 늦게 온 사람이 '아니, 이 종이는 누가 붙인 거예요? 이걸 엊저녁에 쓰고 갔는지 어떻게 알아요?' 하니 다른 사람이 '내가 새벽 2시에 왔을 때는 없었는데 새벽 3시에 오니 붙어 있더라' 하면서 다들 새벽부터 기다렸다고 증언한다.

2월 25일
 
25일 오전 대구시 북구 칠성동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대구 북부센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소상공인 대출 상담을 받기 위해 1천여명의 소상공인이 길게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25일 오전 대구시 북구 칠성동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대구 북부센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소상공인 대출 상담을 받기 위해 1천여명의 소상공인이 길게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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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잠을 설치다 새벽 3시에 깼다. 우리집에서 신용보증재단까지 차로 5분이면 간다. 가서 몇 시간 줄 서 기다릴 생각을 하니 캄캄해서 50번 안에만 들자는 생각으로 옷을 한겨울처럼 단단히 입고 새벽 5시에 나갔다. 도착했더니 딱 50번까지 목록이 차 있다.

사람들이 줄 서 기다리고 있지는 않다. 이럴 줄 알았으면 새벽 3시에 와서 이름만 쓰고 다시 집에 갔다 와도 되는 거였는데. 먹은 것도 없는데 토할 것 같다. 조금만 빨리 왔으면 50번이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단 생각에 화가 나서 견딜 수 없다.

주방장 언니는 침착하게 51번을 쓰고 상호, 이름, 연락처를 적는다. 혹시 모르니까. 그래, 어쩔 수 없지. 맥도날드에 가서 아침이라도 먹고 오자. 아침을 먹고 커피도 마시고 강아지와 한 바퀴 돌기도 하고 오전 8시부터 다시 신용보증재단 사무실 앞에 가서 기다렸다.

오전 9시쯤 일이 시작되겠지만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질지 모르니 8시부터는 사무실 문 앞을 지켜야 한다. 9시가 되기 전에 출근한 사람이 좀 비켜달라고 말로 해도 되련만, 나를 쑥 지나쳐서 잠금 장치를 열고 사무실로 들어간다. 몰려 선 사람들은 절박한 만큼이나 얌전히 기다린다. 드디어 문이 열리고 일단 우우 밀려들어 갔다.

직원들은 아직 다 출근하지 않았다. 잠깐 소동이 일어난다. 업무 시간에 맞춰 온 사람들이 이제부터 순서대로 접수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벌어지고 주방장 언니는 상담데스크의 거의 맨 앞에 섰다.

잘못하면 깔려 죽고 잘하면 50번이 아니라 10번 안에도 들 것 같다. 나는 조금 떨어진 직원 통로 쪽으로 밀려갔다. 코로나19가 다 뭔가, 마스크도 쓰지 않은 사람들이 엄청 밀집해 있다. 지금 두려운 것은 감염병이 아니라 돈을 얻지 못하는 일이다. 그때 뒤쪽에서 누가 건물 바깥 문에 붙어 있던 목록을 들고 들어와서 직원에게 건넸다.

목록은 오늘도 역시 100번을 넘겼다. 새벽부터 기다린 사람들의 숫자가 훨씬 많으니 곧 세가 넘어갔다. '밤 12시부터 기다렸다, 오늘이 벌써 며칠째인 줄 아느냐, 몇 시간이나 기다렸는데 무슨 소리냐!' 그렇게 해서 목록 순서대로 상담을 받기로 했는데, 오늘은 50명이 아니라 40명만 상담해 준다는 거다. 신규 상담이 하도 많아 상담만 하고 다른 일을 못하니 대출이 지연돼서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청천벽력은 소리가 아니다. 내용이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다시 한 번 새벽에 바로 튀어 나오지 않은 나 자신을 저주했다. 직원이 1번부터 호명하기 시작한다. 써놓고 자리를 비운 사람은 빼고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만 상담해준다고 한다. 다시 한 번,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를 외우며 기다린다. 중간중간 비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30번대에 안착했다.

그때쯤 아주머니 한 분과 아저씨 한 분이 큰 소리로 항의한다. 9시에 딱 와서 대기했는데 안 부르고 지나갔다고 한다. 번호 앞쪽이라 9시 전에 호명한 모양이다. 장화 신은 고양이 마냥 애타는 눈으로 기다리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니 신용보증재단 직원들도 오자마자 업무를 시작해서 9시가 되기 전인지, 후인지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것 같다.

두 분은 일행이 아닌데 아저씨가 먼저 큰 소리로 항의하니 차마 항의하지 못하고 있던 아주머니도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대든다. 앞 번호에 호명된 사람들은 거의 떠나고 사무실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우리처럼 이제 막 호명됐거나 아직 호명되지 못한 사람들이다.

직원은 번호가 지나가서 안 된다고 했지만 매달리는 사람은 죽기살기라 이길 수가 없다. 드문드문 서 있는 사람들이 일에 진척이 없는데도 가만히 듣고 있으니 직원이 '이 분들 끼워 드려도 될까요?' 묻는다. 반대하는 사람의 목소리는 없고 여러 사람이 "그렇게 합써!" "그렇게 해줍써!" 한다.

아주머니와 아저씨는 겨우 한시름 놓고 직원 앞으로 다가서서 목록에 있는 업체와 이름을 가리킨다. 그 순간 내 앞에 후드를 덮어 쓰고 긴 코트를 입은 젊은 여자가 마스크를 한 얼굴 앞으로 손을 올리는데 핏기라고는 없는 손가락이 파르르 떨린다.

아마 아직 번호를 배정받지 못한 사람이겠지. 갑자기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다. 언제 상담 받을지, 오늘 상담은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양보했다.

21번부터 40번까지는 오후 상담이라 중문에 있는 소상공인진흥공단에 대출에 필요한 추천서를 받으러 갔다. 사무실까지 갈 것도 없이 제주국제컨벤션센터 로비층에 아예 창구가 마련되어 있다. 줄이 있길래 일단 줄을 섰다. 그런데 이상하다. 줄이 줄어드는 것 같지도 않고 뭔가 진행되는 것 같지도 않다.

알고 보니 여기도 새벽부터 줄을 서서 오늘 상담할 사람들은 모두 정해졌는데 몇 날며칠 계속 온 사람들이 차마 돌아갈 수가 없어서 계속 줄을 서 있다고 한다. 산 넘어 산. 다시 한 번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를 왼다.

신용보증재단도 그렇고 소상공인진흥공단도 그렇고 내일부터는 온라인으로 상담접수를 받을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물러서면 온라인 신청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기술력이 부족한 주방장 언니와 나를 합쳐서는 답이 안 나온다.

6~7년 전에 산 컴퓨터는 느려터졌고 스마트폰은 한 번 잘못 누르면 말짱 도루묵이니 하루 사오십 명 안에 들기를 바랄 수 없다. 온라인 신청으로 바뀌는 바람에 수영강습도 딱 두 달 다니고 포기한 지 일년 째다.

줄 끝에 서서 어쩔 줄 모르고 있는데 여기서도 여러 사람이 항의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렇게 어려운 때에 가게 문 닫고 몇 날째 오고 있는데 오늘도 상담을 못 받으면 어떻게 하라는 거냐?'가 요지다.

제주 동쪽이나 서쪽에서 서귀포 혁신도시나 중문에 오려면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이 걸린다. 제주도는 농지가 많아 가로등이 적다. 밤새 불을 켜 놓으면 작물에 좋지 않기 때문이다.

툭하면 마을 안 길이고 속도 제한에 과속방지턱은 어찌나 높고도 많은지. 좁고 꼬불꼬불하고 어두운 새벽길을 운전해서 며칠씩 연달아 오기가 여간 어렵지 않으니 며칠째 온 사람들이 오도가도 못하고 못박혀 버렸다.

겨우겨우 오는 목요일부터 하루에 열 명씩 잘라 상담해 주기로 한다. 턱걸이를 한 기분이다. 서있기를 잘했다. 주방장 언니 바로 앞에 선 분이 낯익어 보니 평소 알고 지낸 동네책방 사장님이다. 오랜만에 뵙기도 하고 반가워 인사를 하니 제주시 소상공인진흥공단에 갔다가 거기는 정말 깔려죽을 지경으로 사람이 많아 서귀포시로 넘어왔다고 하신다.

2월 26일

낮에 조용한 매장에 앉아 있으면 정신줄이 어디론가 달아나는 것 같다.

2월 28일

지난주 동네 배달업체에 연락해서 오늘부터 배달을 시작했다. '배달을 시작했다'지만 누가 알고 주문을 넣을지. 스마트폰 앱에 올리려면 가맹비가 들어서 가입하지 못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다.

3월 2일 

주방장 언니가 소상공인진흥공단에서 추천서를 받아 신용보증재단에 필요한 서류를 모두 제출했다. 한 달 정도 기다리라고 했다고 한다.

3월 8일

오랜만에 볼 일이 있어서 제주도에 역이주한 제주도 출신 친구들을 만났다. '그래서 제주도에 계속 살 거예요?'라고 묻는다. 살고 싶다. 먹고 살 수만 있다면.

3월 14일

코로나19 발발 이후 처음으로 마스크를 샀다. 포털사이트에 '약국'이라고 검색하면 근처 약국의 공적 마스크 재고가 나온다. 이 와중에 누군가는 미치게 바쁠 것이란 생각에 고맙기도 하고 울적하기도 하다. 무사하길 빌 뿐이다.
 
코로나19 발발 이후 처음으로 마스크 산 날 찍은 사진. 청소용 마스크(덴탈마스크) 사놓은 것을 쓰다가 공적 마스크 살 수 있다고 해서 샀다.
▲ 공적마스크산날 코로나19 발발 이후 처음으로 마스크 산 날 찍은 사진. 청소용 마스크(덴탈마스크) 사놓은 것을 쓰다가 공적 마스크 살 수 있다고 해서 샀다.
ⓒ 김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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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0일

머리가 아프다.

3월 23일

볼 일이 있어 서귀포 시내에 나갔다가 냉면집에서 냉면을 사먹고 작은 골목 카페에서 커피와 쿠키를 샀다. 두 집 다 한 사람이 운영하는 1인 점포다. 만약 당신이 일상을 유지할 수 있다면 오가는 길에 동네 가게를 이용해 주셨으면 한다. 

3월 25일

오늘 은행에서 전화가 왔다. 내일 대출을 받으러 오라고 한다. 오늘 카드회사에서도 전화가 왔다. 어제가 결제일인데 결제가 안 됐다고 한다. 이번에는 살았다. 얼마나 가려나.
 
이웃 농장에서 한라봉을 박스 포장해서 사다놓고 팔았다. 간이 작아 42박스 밖에 못 팔았다. 내년엔 200박스 팔아보자!
▲ 한라봉도 팔았다 이웃 농장에서 한라봉을 박스 포장해서 사다놓고 팔았다. 간이 작아 42박스 밖에 못 팔았다. 내년엔 200박스 팔아보자!
ⓒ 김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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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코로나19, #소상공인특별대출, #소상공인, #제주도, #자영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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