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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번방 사건 가해자의 신상 공개를 요구하는 청원. 해당 청원에 동의하는 국민은 23일 오전 10시 30분 220만 명을 넘어섰다.
 n번방 사건 가해자의 신상 공개를 요구하는 청원. 해당 청원에 동의하는 국민은 23일 오전 10시 30분 220만 명을 넘어섰다.
ⓒ 청와대 청원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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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이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 이른바 '박사방'을 운영하며 미성년자 등의 성착취물을 제작·유통한 혐의를 받는 '박사' 조모 씨의 신상을 공개해야 한다는 내용의 청와대 국민청원이 역대 최다 인원의 동의를 받았다. '박사'로 통하는 조씨의 신상공개를 요청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동의자는 23일 오전 10시 30분을 기준으로 220만명을 넘어섰다.

공분의 사건에 경찰 또한 신속하게 대응하고 있다. 22일 경찰청에 따르면 경찰은 지난해 9월부터 'n번방'으로 대표되는 텔레그램 성 착취 대화방에 대한 수사를 벌인 결과 지난 20일까지 총 124명을 검거했다. 이들 중 '박사'로 알려진 조씨를 포함해 18명은 구속됐다.

경찰 관계자는 "국제공조와 IP 주소 추적 등을 통해 아동·청소년 등이 등장하는 성 착취물을 유통하는 텔레그램 대화방 운영자와 제작자, 유포자, 소지자 등 다수를 검거했다"고 말했다. 'n번방'을 처음 만든 인물로 알려진 '갓갓'이라는 닉네임을 쓴 운영자는 아직 검거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경찰이 이렇게 수사력을 집중하는 상황이라면 '박사'처럼 '갓갓' 또한 곧 체포되지 싶다.

'박사'의 신상공개와 함께 'n번방' 가입자 혹은 이용자의 신상공개를 원하는 국민청원에도 역대급 지지가 이어지고 있다. 22일 24시를 기준으로 130만명이 동의했다. 청원자는 청원글에서 "관리자, 공급자만 백날 처벌해봤자 소용없다"며 "수요자가 있고, 수요자의 구매 행위에 대한 처벌이 없는 한 반드시 재발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어디에 사는 누가 'n번방'에 참여했는지 26만 명의 범죄자 명단을 공개해 달라"고 촉구했다.

성착취물을 공급한 사람의 신상공개와 성착취물을 구매한 사람의 신상공개가 모두 가능할까. 피의자의 인권보호가 문제라면 공급자에 대해선 신상공개가 가능하지 싶다. 흉악범에 한해 신상을 노출한 전례에 비추어 '박사' 조씨의 신상정보와 사진이 곧 대중에게 공개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인권에 관한 한 어떤 순간에도 이성을 잃지 말고 피해 우려가 있는 사람을 적극적으로 보호하려고 애써야 하지만, 조씨에 대해선 이런 검토 자체가 불필요해 보인다. 인권은 사람의 권리를 의미하지 사람이 아닌 존재의 권리는 배제하기 때문이다.

성착취물을 구매한 것으로 알려진 26만명에 대해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답일까. 26만명이란 숫자가 정확한지는 논란이 있지만 그냥 26만명이라 하고, 이들의 인권보호와 사회 공동의 이익 혹은 사회 전체의 도덕적 가치 사이에는 분명 상충이 발생한다. 현행법에 따라 어떻게 처벌할지는 전문가들이 의견을 낼 일이고,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간 공론의 장의 현안에 관해서는 주로 가치 수준의 토론이 이루어져야 한다.

"수요자가 있고, 수요자의 구매 행위에 대한 처벌이 없는 한 반드시 재발한다"는 청원자의 의견은 전적으로 옳다. 사실 효과 측면에서는 '박사' 조씨 등의 신상공개보다는 가입자 혹은 이용자의 신상공개가 훨씬 더 주효하다. 그럼에도 당연히 반론은 나온다. 신상공개는 사법에 의거하지 않지만 그 정도가 덜하지 않은 일종의 공공적 처벌인데, 범죄의 경중이 다른데도 동일하게 그것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공공적으로' 처벌하느냐고 할 것이다.

따라서 가입자 혹은 이용자의 신상공개는 이루어지지 않을 확률이 매우 높다. 그렇다면 청원자의 말대로 사건은 언젠가 재발한다. 그것이 범죄라고 하여도 발달하는 ICT기술에 기대어 돈을 벌려고 덤비는 사람은 언제나 준비돼 있다.

이용자나 가입자가 사회적으로 상당한 불이익과 처벌을 받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갖게 될 때만 범죄행각을 예방할 수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못 막는 범죄가 있다. 하지만 'n번방' 류의 사건은 수요층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범죄의 상당부분을 없애버릴 수 있다. 이러한 범죄는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 범죄이기 때문에 수요와 공급 양쪽 측면에서 공공적인 대처를 준비하고 실행해야 한다.

그러나 역시 '인권'에 걸려 대대적인 국민청원에도 불구하고 거의 대부분의 이용자 혹은 가입자의 신상정보는, 공권력에 가로막혀 공중에게 제공되지 못할 것이다. 그리하여 과거 소라넷에 분노하다가 잊고, 이번에 'n번방'에 분노하다가 다시 잊고, 그렇게 시간이 오래 흐르지 않아 우리는 다른 소라넷과 다른 'n번방'에 또 다시 분노하고 또 다시 국민청원을 하게 되지 싶다.

그렇게 좌절하지 않으려면 결국 어떤 공공적인 가치의 우위를 입증하고자 하는 공중의 대대적이고 지속적인 의사표현과 법제화·제도화를 위한 강력한 행동이 이어져야 한다. 오래 걸리고 힘든 싸움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더디 가고 힘들어도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이 싸움은 계속 수행되어야 하고 승리하여야 한다.

지금도 기록이지만 이번에 더 힘을 모아 전무후무한 기록을 청와대 국민청원에 남기는 것이 당장은 필수적인 걸음이다. 이번에는 불가능해 보이지만, 다음엔 어쩌면 신상이 공개될지 모르겠다는 두려움을 심어주는 게 매우 긴요하기 때문이다.

소라넷이든 'n번방'이든 많은 소위 '멀쩡한' 남성이 들락거렸을 것이다.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남성 가운데 가입자에 이름을 올린 이가 또한 적지 않을 것이며, 만일 명단이 발표됐을 때 대중이 단박에 파악하여 놀랄 만한 이름 또한 포함되었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옛날에 어떤 자리에서 한 여성이 농담 삼아 나를 포함하여 좌중에게 "소라넷 회원이 아니냐"고 물었다. 당연히 아니라고 대답할 수밖에. 아닐 수밖에 없는 게 그때 나는 그 사람에게서 소라넷에 관해 처음으로 전해 들었다. 그러면서 그 사람이 하는 말이 "그렇게 많은 남자들이 회원이라는데 왜 주변에 한 사람도 없는 걸까요"라고 말했다.

남성권력이 공고한데다 가부장제와 여성혐오가 결합되어 성범죄에 관한 한 죄의식을 거의 느끼지 못하는 남성사회가 'n번방'의 숙주이고 'n번방'의 근절을 막는다. 지금은 적어도 나에게는 그러지 않지만 꽤 오래 전에 조금 친숙하게 지내는 지인으로부터 "힘내라"는 격려의 말과 함께 포르노를 전달받은 적이 있었다. 또 무슨 양 비디오 이런 류의 영상물은 주변에서 아무런 말없이 '호의'에서 전해주기도 했다. 각설하고, 이 사회를 주도하는 세력에게 두려움을 주어 그들의 숙주기능을 파괴하는 것만이 'n번방' 재발을 막는 근본처방이다. 일단 국민청원부터 많이 하자.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안치용 기자는 지속가능저널 발행인 겸 한국CSR연구소 소장이자 영화평론가입니다. 이 글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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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평론하고, 래디컬 정치를 사유한다. 활자에도 익숙해 틈나는 대로 책을 읽고 이런저런 글을 쓴다. 다양한 연령대 사람들과 문학과 인문학 고전을 함께 읽고 대화한다. 사회적으로는 지속가능성과 사회책임 의제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청소년/대학생들과 자주 접촉하는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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