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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신문에 눈에 띄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한 할머니가 손바느질로 면 마스크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나눠준다는 소식이었습니다(경남도민일보 '직접 만든 면마스크·음식 나눔…줄잇는 선행'). 

'어? 이분? 어디선가 뵌 분인데?'

생각해 보니 SNS 친구분께서 올린 글에 등장하는 분이셨습니다.

당시 글을 찾아봤습니다.

"지난 2월의 마지막 날. 친구이자 동반자인 할배를 하늘로 보내고, 코로나19의 여파로 열흘이 지난 현재까지도 납골당을 찾아보지 못한 슬픔을 묻어두고 있는 할매의 어수선한 마음을 단숨에 빼앗아 집중하게 한 그것.

TV에서 방송되는 마스크 부족에 대한 어려운 소식을 듣더니, 할 줄 아는 건 없어도 저건 하겠다며 돋보기를 끼고 마스크 만들기 손바느질을 시작하시네요. '할배 생각도 덜 나고 시간 잘 가서 좋네' 하시면서 돋보기 너머로 주름진 웃음을 짓는 모습이 참 곱습니다. '잘 만들진 못 하지만 만들어서 동네 할매들 나눠줄란다. 할매들이 마스크 사러 가지도 못할기고' 카시네요. 맘도 고운 김혜정 여사님.

그래요. 함 만들어 봅시다. 예쁘게 만들어서 이웃 할매들에게 나눔합시다. 할매의 예쁜 손길에 손주들이 손을 보탭니다. 참 따뜻한 봄날입니다."

   
"이거라도 할 수 있어 다행이다"
 
 마스크를 직접 만드시는 김혜정 할머님
 마스크를 직접 만드시는 김혜정 할머님
ⓒ 김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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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정(78) 할머니의 따님은 경상남도자원봉사센터에서 근무하시는 '박 팀장님'입니다. 저도 당시 그 글을 보고 댓글을 달았습니다. "너무 이뻐요." 댓글을 달 때만 해도 할머니와 박 팀장님의 개인사는 몰랐었습니다.

얼마 후 박 팀장님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샘. 나눔할 수 있겠네요. 함 오이소~."

창원 간 김에 찾아뵈었습니다. 저희 아이들 것까지 준비해 주셨습니다. 보기만 해도 너무 이쁜 마스크였습니다.

"우와, 너무 이뻐요. 어머님께서 손재주가 좋으신가 봐요."

박 팀장님은 뿌듯해 하시며 어머님의 일을 조심스레 꺼내셨습니다.

"올 2월에 아버지께서 떠나신 후, 어머니는 너무 불안해하셨어요. 밤에 잠도 못 주무시고, 식사도 못 하시고, 우울해하셨지요. 우리 가족들도 어머니가 너무 걱정됐어요. 해서 어머니 댁에서 우리 애들과 제가 같이 생활하게 됐지요. 모두가 힘든 상황이었어요.

근데 어느 날 TV에서 경찰들이 마스크가 부족해 제대로 못 쓴다는 소식을 들으시고는 '내도 해볼까?' 하셨어요. 별 생각 없이 답했죠. '엄마도 해 볼래? 같이 해보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요. 어머니가 달라지셨어요. 마스크를 만드시며 생활의 안정을 찾으셨어요. 밤에도 잘 주무시고 뭔가 뿌듯해 하시는 것 같아요. 어머니가 2시간에 면 마스크 한 장을 만드시거든요. 저번에 40장 정도를 만들어서 20장은 동네 소외계층분들께 나눠드리고 20장은 인근 파출소에 나눠드렸어요. 어머니가 부끄러워하며 전달했지요. 요즘 한글도 배우시는데 직접 글을 적어서 전해드렸어요.

반응이 너무 좋았어요. 받으시는 분들이 정말 고마워하시더라고요. 그때 어머니께서 특별한 감정을 느끼셨나 봐요. '내가 도움이 되는갑따. 저분들이 고마워한다. 내가 이거라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더 만들어 보자.'

이제 어머니께 마스크 만드는 것은 삶의 목적이 된 것 같기도 해요. 너무 열심히 만드셔서 건강 상하실까봐 제가 말릴 정도예요. 하지만 어머니는 저 몰래 계속 만드세요. 어느 날 어머니께서 저에게 말씀하셨어요. '딸아. 네가 왜 이렇게 밖에 돌아다니는지 이제 내가 알겄다. 네가 이런 좋은 일을 하고 다녔던 기네. 그래, 우리 딸. 장하다 장해.'

사실 소외계층에 면 마스크라도 보급하자며 제가 개인적으로 천을 떼서 집으로 가져갔던 것이 이 일의 시작이었거든요. 어머니께서는 그것을 기억하시고 말씀주신 거예요. 그때 얼마나 기분이 묘하던지..."


박 팀장님은 미소를 지으며 눈물을 닦았습니다.

감염병에 맞서는 연대의 힘... 할머님, 고맙습니다
 
 김혜정 할머니께서 직접 만드시고 손글씨 적은 마스크들
 김혜정 할머니께서 직접 만드시고 손글씨 적은 마스크들
ⓒ 김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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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을 들으며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습니다. 고맙고, 미안하고, 죄송하고, 또 고맙고... 묘한 감정이었습니다.

"김 샘. 이거 아이들 주고 사모님도 드리세요. 우리 어머니가 또 나눠주는 걸 너무 좋아해요. 부탁 하나만 드릴게요. 아이들 쓴 모습이 찍힌 사진 한 장만 보내줘요. 어머니가 좋아하실 거예요."

집에 돌아가서 바로 인증사진을 찍어 보내드렸습니다. 답글이 왔습니다.

"할매의 삐뚤한 솜씨에도 감동해 주셔서 감사해요. 무지 좋아하시네요. 오늘도 열심히 반짓고리를 잡고 계셔요."

저만 알아도 되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코로나19가 우리 사회에 공포와 불신, 혐오를 조장하기도 했으나 일상의 연대로 더 따뜻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할머니와 함께 면마스크를 만드는 가족들
 할머니와 함께 면마스크를 만드는 가족들
ⓒ 김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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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김혜정 할머니께서는 마스크를 만들고 계십니다. 누군지도 모를 당신을 위해, 마스크를 필요로 하는 분들을 위해, 돋보기를 끼시고 떨리는 손으로 정성을 다해 마스크를 만들고 계십니다.

할머니는 정치가 어떻고 지역이 어떻고는 모르십니다. 다만, 누군가에게 마스크가 필요하고 당신은 마스크를 만들 수 있다는 것뿐입니다.

저는 거창한 구호보다 이런 따뜻함이 좋습니다. 할머니의 마스크는 받은 지 며칠이 지났으나 아직 제대로 쓰지 못했습니다. 이 귀한 것을 감히 사용하기가 죄송스럽습니다. 

이 글을 쓰고 난 후 외출할 때 이 마스크를 하고 나갈 겁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물어보면 자세히 말해줄 생각입니다. 이웃을 위하는 분들이 계시기에 아직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고. 마스크 한 장도 함부로 대해선 안 된다고.

코로나19로 일상생활이 불편한 요즘이지만 덕분에 배려의 감동을 더 깊이 느낍니다. 김혜정 할머니의 건강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할머님, 고맙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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