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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조찬호 공공항만운송본부 쿠팡지부 조직부장이 쿠팡 배송 현장의 노동 환경 개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0.3.18
 1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조찬호 공공항만운송본부 쿠팡지부 조직부장이 쿠팡 배송 현장의 노동 환경 개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0.3.18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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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에게 뒤처지지 않고 묵묵히 해내야만 정규직 전환 '레벨업'이 가능하다. 사측은 이게 가능한지 나와 함께 동승배송한 뒤 단독배송 해 봤으면 좋겠다. 수년째 동결된 월급도 문제지만 그저 건강하게만 살 수 있도록 해줬으면 좋겠다."

지난 12일 입사 한 달도 되지 않은 40대 '쿠팡맨(쿠팡 소속의 배달노동자)' 김씨가 새벽 배송 도중 급작스레 사망한 가운데 정진영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 쿠팡지부 조직부장이 18일 서울 영등포구 공공운수노조 회의실에서 열린 '쿠팡의 무한경쟁 시스템, 죽음의 배송' 기자회견에서 밝힌 말이다. 그는 자신을 "5년차 쿠팡맨"이라고 밝혔다.

"사측은 신입사원에게 충분한 교육을 거친 후 적응 기간에 50%의 물량만 배정한다고 말하지만 그 수준으로 일하게 한 것을 본 적이 없다. 나도 300~400명의 신입사원을 교육해 봤지만 첫날 동승 배송하고 다음 날 바로 단독 배송을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러면서 정 조직부장은 "신입사원이 50% 물량을 배정받는 경우는 본 적이 없고 너무 힘이 들어 어쩔 수 없이 50%만 배달하는 경우는 있다"면서 "(이렇게 되면) 3개월 뒤 수습 부적격으로 계약해지 된다"라고 덧붙였다.

쿠팡지부에 따르면 쿠팡맨이라 불리는 전국 쿠팡 배송노동자 7천여 명 중 약 70~80% 정도가 비정규직으로 근무 중이다. 그러나 잡레벨을 통한 무분별한 경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비율은 입사 대비 높지 않다. 잡레벨은 분기별 평가를 통해 쿠팡맨의 등급을 1~9등급으로 나누는 시스템으로 평가에 따라 등급이 올라가야 임금이 인상된다. 레벨업을 위해선 개별 물량 실적을 꾸준히 쌓아야 한다. 

쿠팡맨인 조찬호 쿠팡지부 조직부장(쿠팡지부는 지역별로 조직부장이 있다)은 "쿠팡맨 퇴사율이 75%다. 1년 미만 퇴사자는 96%다. 이 수치만 갖고도 근무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 알 수 있다"라면서 "쿠팡은 혁신의 아이콘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배송 노동자들에게 혁신은 가죽 혁에 몸 신, 가죽 허리띠를 몸에 두르고 미친 듯이 뛰어야 하는 환경을 뜻한다"라고 일갈했다.

"10명 중 7~8명 1분도 쉬지 않아"

쿠팡 노조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쿠팡맨 1인이 배송하는 평균배송물량(PPD)은 쿠팡이 로켓배송(익일 배송 시스템)을 도입한 2014년 이후 대폭 증가했다. 

지난 2015년 1월 직고용된 쿠팡맨 1059명이 1인당 하루 56.6개의 물건을 배송했다. 2017년 12월에는 직고용된 쿠팡맨 3042명이 1인당 하루 210.4개를 배송해 약 3.7배의 증가세를 보였다. 이 같은 증가세는 이후에도 이어져 2019년 8월 1인당 하루 배송물량이 242개에 도달했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이후에는 개인당 배송물량이 지난해 여름에 비해 22% 증가한 하루 296개에 도달했다. 

이에 대해 쿠팡노조는 "휴게시간을 사실상 사용하지 못한다"면서 지난 2019년 3월에 배송캠프 관리자가 직접 조사한 휴게시간 사용 현황을 공개했다.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일자별로 차이가 있지만 보통 10명 중 2~3명만이 업무시간에 휴게시간을 가졌다. 그나마 실제 '휴게시간'으로 사용된 시간은 30~40분 내외에 불과했다. 70~80%에 이르는 쿠팡맨들은 휴게시간 자체를 아예 갖지 못한 채 배송 업무를 진행했다.

정 조직부장은 "로켓프레시(당일 신선식품 등을 오전 7시 내로 배송해야 하는 쿠팡의 배송 시스템) 실시 이후 근무환경이 더욱 악화됐다"면서 "시간 내 배송 압박도 커졌다. 물량을 두 번, 세 번 나누어 배송하고 있고 1차 물량을 소화해야 2차, 3차 물량을 받을 수 있다. 시간 내 못 끝낼 것 같은 쿠팡맨에겐 쿠팡 플렉스(일반인이 배송 일을 신청해 자신의 차량으로 배달하는 아르바이트)를 붙이는데 이로 인해 압박감이 더 심하다"라고 토로했다. 

쿠팡 "택배기사가 요구해온 상당 부분 쿠팡에서는 이미 현실"

숨진 김씨는 지난달 14일 1년 계약 비정규직으로 고용돼 나흘간 동행 배송으로 일을 배웠다. 같은 달 18일부터 단독 배송을 시작했다. 지난 12일 밤 10시에 출근해 다음날 7시까지 배송일을 하던 중 경기도 안산의 한 빌라 계단에 쓰러져 사망했다. 

경찰은 숨진 김씨에 대해 "관상동맥의 3/4정도가 막혀 있던 것으로 관찰되고 이에 따라 사인은 허혈성 심장질환으로 판명됐다"라고 밝혔다. 허혈성 심장질환은 관상동맥, 즉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이 좁아지거나 막히면서 생기는 질병으로 과로로 인한 스트레스도 발병 원인 가운데 하나다.

쿠팡노조는 "새벽배송의 쉴 틈 없는 철야노동은 고객만족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 됐다"면서 죽음의 배송을 막기 위한 대책으로 ▲ 새벽배송 중단과 노동자 휴식권 보장 ▲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및 정규직 고용 원칙 ▲ 가구 수와 물량뿐 아니라 배송지 환경 등을 고려한 친 노동적인 배송환경 마련 ▲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교섭의 성실한 이행 등을 요구했다.

한편 쿠팡 관계자는 18일 기자와 한 통화에서 노조의 요구에 대해 "개인의 배송역량과 지역 여건을 고려해서 업무 설정을 한다"라면서 "인력 부담을 덜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일반택배사와 (쿠팡을) 비교해 보는 것도 좋다. 쿠팡은 (쿠팡맨이) 소속된 직원이라 일주일에 52시간 노동시간을 지키고 차량과 보험 등을 갖추고 직원으로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개인 사업자인 (일반) 택배기사들과 달리 쿠팡맨은 본사가 직고용하는 인력이다. 2년이 지나면 94%가 정규직으로 전환된다. 택배기사들이 요구해온 상당 부분이 쿠팡에서는 이미 현실이다. 인력 충원을 포함해 노조와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나가겠다."

사망한 김씨에 대해 쿠팡 측은 "유족 뜻을 최대한 존중해 지원하는 게 먼저라 생각해 (유족을) 위로하고 지원하는 데 역할을 다하고 있다"면서 "(사망한 김씨는) 4주차 업무 중이었기에 일반 쿠팡맨 업무량의 50~65%를 소화했다. 물동량을 따지는 게 아니라 (김씨가) 일반 쿠팡맨에 비해 50~65%를 맞춰 업무를 진행한 사실을 말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태그:#쿠팡, #민주노총, #쿠팡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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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팀 취재기자. 오늘도 애국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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