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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감염 사태를 재난이라고 합니다. 그 재난의 가장 취약한 고리에 놓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봅니다.[편집자말]
11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청 120 경기도 콜센터에서 직원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옆자리를 비워두고 근무하고 있다. 2020.3.11
 11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청 120 경기도 콜센터에서 직원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옆자리를 비워두고 근무하고 있다. 2020.3.11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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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 같이 아침 출근 후 업무 준비를 하는데 선배가 운을 뗐다.

"닭장같이 다닥다닥 붙어서 침을 튀기는 콜센터라고 아주 난리더라. 닭장이라고 말하는 건 좀 아니지 않니? 엄연히 사람이 일하는 곳인데."

구로에서 발생한 코로나19 콜센터 집단 감염 사태에 대한 언론 보도 이야기였다. "그러게요" 라고 맞장구치다 보니 어느새 8시 59분. '9시입니다. 대기 눌러주세요' 라는 관리자의 높은 음성에 주변이 조용해지고, 따르릉 소리에 맞춰 동일한 인사말로 업무를 시작한다. 

큰 전광판에 뜨는 230이라는 숫자. 이는 현재 인입되고 있는 콜 수를 의미한다. 같은 층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우리 상담사들이 해치워야 하는 콜 수다.

'대기호 발생되고 있으니 이석, 후처리 줄여주세요.'
(대기전화 밀렸으니 자리 뜨지 말고 바로 처리해주세요)

관리자가 발송하는 전체 쪽지를 보며 오늘도 하루가 시작되었음을 실감한다. 서울 도심에 위치한 전자가전 AS관련 콜센터에서 일한 지 2년째, 구로 콜센터 집단 감염은 내가 이 일을 시작한 후 처음 있는 콜센터 관련 사회 이슈였다. 구로 콜센터 집단 감염이 있고 근 며칠간은 지인으로부터 우려 섞인 연락이 종종 왔다. 코로나19를 치면 콜센터가 연관검색어로 뜨며 다들 '예견된 재난'이라고 목소리를 모았다. 온 사회가 나의 건강을 걱정하고 있었다. 

구로 콜센터 집단감염 후 콜 더 늘어

집단감염 보도 이후 우리는 모두 마스크를 끼고 상담을 했다. 코로나19 관련 필수 멘트도 추가되었다.

"기사 내방 장소에 코로나 확진자가 있으면 방문이 어려우니 기사가 확인 차 사전 연락을 드리고 있습니다. 이 점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필수적으로 진행되는 코로나19 관련 멘트에 강성 민원고객은 AS나 빨리 하라고 윽박을 지르기 일쑤였다. 어느 날은 시청에서 사람이 왔고, 어느 날은 공적마스크를 사기 위해 순두부찌개를 10분 만에 흡입하고 약국 앞에 줄을 섰다. 그러나 언제나 나의 일과는 따르릉 소리에 맞춰 인사를 하고, 민원 고객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되풀이하며, 콜 수를 채워가는 것이었다. 

물론 달라진 것도 있다. 개인 경로나 이석에 대한 보고를 더 자주 해야 했고, 하루에 3번 온도를 재고, 이상이 있다고 여겨지면 개인 반차나 연차를 쓰게 해서 곧장 집으로 보내졌다. 

"대구에는 콜센터가 폐쇄되었대."
"아, 그래서 콜이 밀리는구나?"


한정된 인원으로 근무하기 때문에 한 센터에 이슈가 발생하면 다른 센터가 해당 업무를 추가로 담당해야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더욱 콜이 많이 들어온다.

특히나 우리 부서는 가전 AS담당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재택근무를 하든 강제휴직을 하든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아져서인지 AS관련 문의가 빗발친다.

'재택근무 하고 있는데 PC 화면이 안 나온다.' 
'안 그래도 코로나 때문에 심란한데 TV까지 고장이다.'

콜이 밀려 마음은 급한데, 고객의 불만 섞인 아우성을 듣고 있다 보면 내 상황을 돌아보게 된다. 나는 왜 주말에 닭장 같은 센터에 나와 고객의 민원을 듣고 있어야 하는지, 나도 코로나 때문에 심란한데 언제쯤 재택근무를 할 수 있을지.

여러 가지 생각이 들지만 추가 연차라도 썼다간 200만 원도 안 되는 돈으로 한 달을 버텨야 된다는 생각에 이내 고개를 저으며 마스크를 다시 고쳐 쓴다. 언론은 연일 콜센터의 노동환경을 고발하는데, 우리는 여전한 환경에서 일을 하고 있다. 오히려 나와 내 동료들은 코로나19에 대한 불안감은 뒤로 한 채 밀리는 콜을 보며 다급함과 압박감을 그냥 견뎌내고 있다. 

달라진 것 없는 사무실

예견된 재난이라는 콜센터의 작동원리는 매우 간단하다. 적게 쉬고, 한 콜당 시간은 짧게, 콜 수를 많이 받으면 된다. 물론 친절하게. 이 간단한 원리가 돌아가도록 회사는 좁은 공간에 100명 정도의 인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붙여놓고, 관리자는 한 시간에 한 번씩 등수를 매겨 전체 공지를 한다.

실적이 낮은 상담사에게 개인 쪽지도 발송한다. 이 쪽지를 보고 상담사는 경쟁을 하고, 실적을 관리한다. 짧은 시간에 한 콜이라도 더 받아야 하니 상담사의 휴식시간은 '한 콜만 더 받고'라는 생각 뒤로 밀리게 된다. 그러니 내 몸 상태를 확인하거나 병원에 다녀오겠다는 말을 꺼내기가 참으로 어려워진다. 이런 순환에 익숙해지다 보면 목표 콜을 채우지 못한 나를 탓하며 스스로 노동강도를 높이게 된다. 감염병이 돌아도 바뀔 수 없는 악순환이다. 

콜센터의 이런 악순환은 이윤 중심 사회의 축소판이다. 구로 콜센터 집단감염, 어쩌면 이윤 중심의 사회에 대한 경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혹시라도 우리 센터에서 확진자가 발생할까 마스크를 벗지 못하게 하고 열을 세 번씩 재며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지만, 상담사의 건강과 노동 환경에 대해서는 언급 한 번 없다. 쏟아지는 언론보도 속 '닭장'이라는 말에 박탈감이 든다는 선배의 말을 가벼이 넘길 수가 없다.

오늘도 나는 달라진 것 없는 사무실에서 숨쉬기도 말하기도 힘든 마스크를 끼고, 다닥다닥 붙어서, 콜 수를 채우려고 달리고 있다. 우리 상담사들의 콜 수 달리기 속도를 코로나19가 따라잡지 못하기를 바랄 뿐.

덧붙이는 글 | 김우정 기자는 김용균재단 회원으로 근무 2년차 콜센터 직원입니다.


태그:#코로나19, #콜센타, #상담사 집단감염
댓글11

2019년 10월 26일 출범한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입니다. 비정규직없는 세상,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을 일구기 위하여 고 김용균노동자의 투쟁을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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