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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시경(1876-1914)
 주시경(1876-1914)
ⓒ 독립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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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자들은 자음이 여덟 가지 표요, 모음이 열 한 가지 표로 합하여 만드셨는데, 흐린 자음은 맑은 자음에다가 획을 더 넣고, 자음마다 모음을 합하여 맑은 음 일곱 줄은 바른 편에 두고 흐린 음 일곱 줄은 왼편에 두고 그 가운데에 모음을 끼어서 이것을 이름을 '반절' 이라 하고 특별히 글자 음의 높고 낮은 데에다 세 가지 표하는 것이 있으니 낮은 음 글자에는 아무 표도 없고(없는 것이 표이라), 반만 높이는 음 글자에는 점 하나를 치고, 더 높이는 음 글자에는 점 둘을 치는지라, 참 아름답고 은혜롭도다,

큰 성인께서 하신 사업이여, 글자 음이 음률에 합당하고 반절 속이 문리가 있어 어리석은 어린 아이라도 하루 동안만 공부하면 넉넉히 다 알 만하도다. 전국 인민들의 공연히 때 허비하는 것을 덜어 주시고, 남녀 노소 상하 빈부 귀천 없이 다 일제로 편리하게 하셨으며, 더욱 오늘날 우리나라 문명, 정치 상에 먼저 쓸 큰 사업이로다. 그 크신 은공을 생각하면 감격함을 이기어 다 기록할 수 없도다.

이렇게 규모가 있고 좋은 글자는 천히 여겨 내버리고, 그렇게 문리가 없고 어려운 그림을 애 쓰고 배우는 것은 글자 만드신 큰 은혜를 잊어 버릴뿐더러 우리 나라와 자기 몸에 큰 해와 폐가 되는 것이 있으니, 배우기와 쓰기 쉬운 글자가 없으면 모르되, 어렵고 어려운 그 몹쓸 그림을 배우자고 다른 일은 아무것도 못 하고 다른 재주는 하나도 못 배우고, 십여 년을 허비하여 공부하고서도 성취하지 못하는 사람이 반이 넘으며,

또 십여 년을 허비하여 잘 공부하고 난대도 그 선비의 아는 것이 무엇이뇨. 글자만 배우기도 이렇게 어렵고 더딘데, 인생 칠, 팔십 년 동안에 어렸을 때와 늙을 때를 빼어 놓고, 어느 겨를에 직업상 일을 배워 가지고 또 어느 겨를에 직업상 실상으로 하여 붙는지 틈이 있을까 만무한 일이도다. 부모 앞에서 밥술이나 얻어먹을 때에는, 이것을 공부하노라고, 공연히 인생이 두 번 오지 아니하는 청년을 다 허비하여 버리고, 삼 사십 지경에 이르도록 자기 일신 보존할 직업도 이루지 못하고 어느 때나 배우려 하느뇨.

어찌 가련하고도 분하지 아니하리오. 이러함으로 백성이 무식하고 간난하여 자연히 나라가 어둡고 약하여지는지라. 어찌 이것보다 더 큰 해와 폐가 있으리오.

글자라 하는 것은 다만 말만 표하였으면 족하건마는, 풍속에 거리껴서 그리 하는지, 한문 글자에는 꼭 무슨 조화가 붙은 줄로 여겨 그리 하는지 알 수 없으니, 진실로 애석한 일이로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종시 이것만 공부하고 다른 새 사업을 배우지 아니하면,

우리 나라가 어둡고 약함을 벗지 못하고, 머지 아니하여 자기 조상들에게서 전하여 받아 내려오는 전답과 가장과 자기의 신골과 자손들이, 다 어느 나라 사람의 손에 들어가 밥이 될지 알지 못할 증거가 눈앞에 보이니, 참 놀랍고 애탄할 곳이로다. 어찌 조심하지 아니할 때리오.

만일 우리로 하여금 그림 글자를 공부하는 대신에, 정치 속에 의회원 공부나 내무 공부나 외무 공부나 재정 공부나 법률 공부나 수ㆍ육군 공부나 항해 공부나 위생상 경제학 공부나 장색 공부나 장사 공부나 농사 공부나 또 그밖의 각색 사업상 공부들을 하면, 어찌 십여 년 동안에 이 여러 가지 공부 속에서 아무 사람이라도 쓸 만한 직업의 한 가지는 졸업할 터이니,

그 후에 각기 자기의 직분을 착실히 지켜 사람마다 부자가 되고 학문이 열리면, 그제야 바야흐로 우리나라가 문명, 부강하여 질 터이라.

간절히 비노니, 우리 나라 동포 형제들은 다 깨달아 실상 사업에 급히 나가기를 바라노라, 지금 우리 나라 한 시간은 남의 나라 하루 동안보다 더 요긴하고 위급하오니, 그림 한 가지 배우자고 이렇게 아깝고 급한 때를 허비하지 말고, 우리를 위하여 사업하신 큰 성인께서 만드신 글자는 배우기가 쉽고 쓰기도 쉬우니 이 글자들로 모든 일을 기록하고, 사람마다 젊었을 때에 여가를 얻어 실상 사업에 유익한 학문을 익혀 각기 할 만한 직업을 지켜서 우리 나라 독립에 기둥과 주초가 되어, 우리 대군주 폐하께서 남의 임금과 같이 튼튼하시게 보호하여 드리며 또 우리나라의 부강한 위엄과 문명한 명예가 세계에 빛나게 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주석 22)


주석
22> 앞과 같음. (두 번째 제목은 필자가 임의로 부친 것임을 밝힌다.)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한글운동의 선구자 한힌샘 주시경선생‘]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한힌샘 /, #한힌샘_주시경, #한글, #우리글, #주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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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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