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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재판'이 진행될 수도 있는 법정 안팎의 내밀한 모습을 '시끌법정'에서 보여드립니다. [편집자말]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한 법정.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한 법정.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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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에게 법원은 어떤 존재인가요. 되도록 멀리하면 좋겠지만,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우리는 여러 일로 법원을 찾게 됩니다. 오늘도 제 담당인 서울중앙지방법원엔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들고 있습니다.

이런저런 일을 맡은 법원이지만, 뭐니 뭐니 해도 법원의 주된 업무는 재판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재판이 진행되는 법정은 어떤 존재인가요. 하루에도 수백 개의 재판 기사가 쏟아지는 걸 보면 꽤 익숙할 것도 같지만, 기사에 나오는 '중대사건' 재판 중 실상 '내 일'로 여겨지는 건 거의 없다고 봐야겠죠. 가깝고도 먼 존재가 바로 재판과 법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중대사건' 재판은 그 역시 1/N에 불과하지만, 실제론 1/N 이상으로 여겨집니다. 법원 수뇌부를 고민하게 만들고, 언론이 기사를 쏟아내게 만듭니다. 하지만 법원에선 하루에도 수많은 재판이 진행되고, 당사자에겐 자신의 재판이 무엇보다 소중합니다. 기사로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각 재판은 자신의 얼굴을 갖고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법정에 선다면, 기사 속 재판이 아닌 기사 밖 재판을 마주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우리는 언제든 법정에 설 수 있습니다. 형사재판의 피고인 혹은 피해자일 수도 있고, 민사재판의 피고 혹은 원고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부터 연재하려는 기사는 '당신의 법정'이 될 수도 있는, 그런 법정의 이야기입니다.

당신의 법정
 
 코로나19 와중에도 법원은 돌아간다.
 코로나19 와중에도 법원은 돌아간다.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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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취재는 어렵습니다. 법도 어렵고, 법정에 앉아 있기도 어렵고, 판사의 말을 꼼꼼히 듣기도 어렵습니다. 법정에선 녹음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가끔 이런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정확한 발음으로 천천히 또박또박 말하는 판사를 만나면 속으로 '판사님 사... 사... 아니 좋아합니다'를 외치고, 반면 그렇지 않은 판사를 만나면... 뭐, 제 달팽이관을 원망해야죠.

여담입니다만, 사실 기자들 사이에선 '판사님, 제발 말 좀 들리게 해주세요'를 외치게 만드는 '요주의 판사님' 리스트(?)가 입소문처럼 돕니다. 그런데 그게 기자들만의 생각은 아니었나 봅니다. 얼마 전 어느 '요주의 판사님' 재판 중 한 방청객이 번쩍 손을 들더니 "판사님 잘 안 들립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겁니다. 순간 속으로 '오 저분, 완전 법정을 뒤집어놓으셨다'라고 외쳤습니다만, "아 그런가요?"라고 말한 판사는 5분 만에 다시 도돌이표(눈물).

아무튼 이런저런 악조건(?) 속에서 법정에 들어가다 보면, 취재하려는 재판에 집중하기도 바쁩니다. 통상 한 법정에서 여러 재판이 열리기 때문에 의도치 않게 다른 재판을 보는 경우가 있는데, 사실 귀에 잘 들어오진 않습니다.

지난 1월 22일, 그날도 어느 음주운전 재판을 보기 위해 법정 방청석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심코 듣고 있던 교통사고 재판(과실치사)이 귀에 들어오는 겁니다. 선고에 앞서, 판사가 사고 경위를 읽어 내려가며 피고인의 유죄 이유를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피고인이 제한속도를 지키지 않아 난 사고였고, 피해자가 무단횡단을 하긴 했지만 목숨을 잃었기 때문에 비교적 중하게 다뤄지는 듯했습니다.

사건의 중함과 별개로, 이 재판에 귀가 쫑긋 세워진 이유는 제가 그 사고 장소를 평소에도 자주 오갔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제한속도가 낮아지는 특수한 도로인데, 누군가 제게 "항상 그곳에서 제한속도를 잘 지켰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그럼요"라고 답할 자신이 없습니다. 피고인을 두둔하려는 마음이 아니라, 순간 '나도 언제든 피고인석에 설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운전자에게 운전은 일상입니다. 일상적인 일은 때론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게 만듭니다. 누구나 머릿속에 운전에 대한 경각심을 지니고 있겠지만, 우린 자주 그것을 뒤로 제쳐두곤 하죠. 오래갈 거라고 자신할 순 없지만, 그날 이후 운전대를 잡으면 그 재판을 떠올리려고 합니다.

변론? 변명?
 
'윤창호법' 통과 지켜 본 윤창호 씨의 친구들 29일 음주운전 처벌 강화 방안을 담은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이른바 '윤창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는 모습을 지켜 본 윤창호 씨의 친구 김민진 씨와 이영광 씨가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
 2018년 11월 29일 음주운전 처벌 강화 방안을 담은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이른바 "윤창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후 윤창호씨의 친구 김민진씨와 이영광씨가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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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 범죄 재판은 재판 전체를 놓고 봐도 꽤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그리고 교통 범죄 재판 중 꾸준히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사건이 바로 음주운전입니다.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2019년에만 10만 9580건의 음주운전 사건이 검찰에 접수됐고, 이 중 95%에 기소 처분이 내려졌습니다. 누구나 음주운전은 잘못이라고 말하지만, 인구 5000만 명의 나라에서 1년 음주운전 기소 건수가 10만 건을 넘는 것입니다.

경찰청 통계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2018년 경찰청 통계를 보면 음주운전 단속은 16만 3060건, 음주운전 교통사고는 1만 9381건(사망 346명·부상 3만 2952건)에 달합니다. 그나마 그 수치가 매년 줄고 있는 점은 다행입니다만, 윤창호법이 무색할 만큼 여전히 많은 이들이 음주운전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습니다.

음주운전 때문에 피고인석에 선 이들은 십중팔구 "후회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법정에서 직접 들은 몇몇 피고인의 최후변론을 모아봤습니다.

"이번 계기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다시는 법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고 아픈 형 데리고 성실히 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지금 슬하에 두 자녀가 있고, 부모님을 모시며 살고 있습니다. 제가 없으면 생계유지가 안 됩니다.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선처를 부탁드립니다."


변론이 조금 긴 피고인도 많습니다. 이분들은 주로 종이에 미리 써온 것을 읽어 내려갑니다. "앞으로 담배꽁초를 잘 줍겠습니다"는 말까지 나오는 걸 보면 참으로 절박해 보입니다. 전부 다 기사에 실을 순 없고, 조금 줄여 소개합니다.

"우선 이 자리에 서 있는 제가 너무 부끄럽습니다. 윤창호법 시행 이후 더욱 심각성을 알았어야 했는데, 순간 잘못된 판단으로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선처해주신다면 다시 한번 인간답게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제가 큰 능력이 없어 남을 도와드리진 못합니다만 최소한의 노력을 하겠습니다. 거리를 걷다가 담배꽁초나 휴지가 있으면 제 손으로 집어 버리겠습니다. 연로하고 몸이 불편한 분을 보면 주저 없이 뛰어나가겠습니다. 선처를 부탁드립니다."

"제 음주 사고로 피해를 입으신 분께 안 좋은 기억을 남겨드려 죄송합니다. 정말로 연락이 닿는다면 사죄를 드리고 싶습니다. 술 마시면 운전대를 잡지 않겠다고 죽을 때까지 명심하겠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음주운전으로 인해 삶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반성문과 탄원서를 쓰면서 많이 울었습니다. 재판장님, 검사님, 다시 한번 반성하고 남은 세월 사죄합니다. 제 직업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피고인석의 풍경 
   
 2010년 12월 16일 서울지방경찰청이 연말 음주운전 예방을 위해 시내 전역에서 음주단속을 했다.
 2010년 12월 16일 서울지방경찰청이 연말 음주운전 예방을 위해 시내 전역에서 음주단속을 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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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이 있습니다. 위에 소개한 피고인 4명 중 2명은 초범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실제로 음주운전 재범률은 40%를 넘습니다.

또 다른 재판에서의 피고인 최후변론입니다. 그 역시 피고인석을 두 번째 경험하는 모양입니다. 정장을 입고 머리를 단정히 빗어 넘긴 그는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 준비한 최후변론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처음 음주운전으로 법정에 섰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도 존경하는 재판장님께 죄송하단 말씀을 드렸고, 깊이 뉘우치고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겠다고 말씀드렸었는데, 시간이 지나 이렇게 부끄러운 모습으로 법정에 서게 된 걸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중략) 하면 안 되는 일을 했다는 점 깊이 죄송하단 말씀 드립니다. 작은 일이지만 그동안 누가 길을 물어보면 할 수 있는 한 그곳까지 안내했습니다.

(중략) 부끄럽고 염치없지만 자녀들과 온전한 가정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재판장님께 감히 선처를 부탁드립니다. 다시 한번 사회생활을 통해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생활할 수 있다면 지난 삶을 뉘우치고 성실히 자녀를 양육하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도움이 되도록 열심히 살겠습니다."


웹툰 <송곳>에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 법정의 피고인석에 딱 맞는 말 같습니다. 최근 음주운전 사건을 수임한 한 변호사를 만났습니다. 음주운전 6범인 피고인 사건을 맡았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재판 결과가 좋았(?)나 봅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피고인으로부터 걸려온 전화.

"변호사님, 저녁에 시간 되세요? 수고 많으셨으니 술 한잔 하시죠!"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법입니다.
     
오죽하면
 
 서울 서초구에 있는 서울중앙지방법원의 모습.
 서울 서초구에 있는 서울중앙지방법원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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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서울중앙지방법원 어느 법정. 고요하던 법정이 약간 소란스러워졌습니다. 초등학생 20여 명이 법정에 견학을 왔기 때문입니다. 판사가 경위를 향해 "이 법정 수용 인원이 얼마나 되죠?"라고 물을 정도로, 초등학생들과 재판을 기다리던 피고인들이 뒤엉켜 방청석이 거의 가득 찼습니다.

재판을 받고 있던 피고인석의 피고인과 재판을 기다리던 방청석의 피고인 모두 얼굴이 새빨개졌습니다. 학생들의 똘망똘망한 시선과 이따금 들리는 수군거림이 적잖은 부담이었을 겁니다. 학생들이 지루해할 때쯤, 그들의 눈을 초롱초롱하게 만드는 증거영상(주로 블랙박스 영상)까지 방영(?)되니 제가 다 민망해지더군요.

안 그래도 푹 숙이고 있던 피고인의 고개가 더욱 바닥을 향합니다. 피고인 입장에서, 그때만큼은 판사보다 초등학생들이 더 무서운 존재 아니었을까요.

음주운전, 특히 재범 음주운전을 막기 위한 대책들은 꾸준히 나오고 있습니다. 통계에서 볼 수 있듯 성과도 있는 것 같습니다만, 역시 통계에서 볼 수 있듯 여전히 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 그러다 보니 오죽하면 이런 생각까지 해봤습니다.

'법정에 초등학생을 풀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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