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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만으로도 규모에 압도되고 마는 대상이 있다. 내겐 우주와 바다가 그렇다. 어려서부터 우주와 바다는 호기심과 공포의 대상이었다. 지금 이 순간 우주선을 타고 블랙홀 근처를 지나거나 잠수정을 타고 심해를 향해 나아가는 중이라면? 그런 공상에 젖어들 때면 까닭 모를 흥분과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의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는 것이다. 

어린 시절 그런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해준 매체는 주로 백과사전이나 과학잡지, 과학만화 시리즈 등이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우주를 다룬 영화나 서적을 접할 기회는 많았지만 웬일인지 바다에 관해서라면 그 비중이 적었던 듯싶다. 영화만 하더라도 단지 바다를 배경으로 한 것에 지나지 않은 재난영화나 공포영화를 제외하면 바다에 관한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작품을 본 기억이 드물다. 

미지의 영역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은 우주에 쏠려 있지만 정작 우리가 사는 지구의 바다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많지 않다. 지금껏 인류가 가장 깊은 바닷속까지 도달한 사례라 해봤자 단 세 차례뿐이다.

지난해 미국 탐험가이자 억만장자인 빅터 베스코보가 전 세계 바다에서 가장 수심이 깊은 곳으로 알려진 마리아나 해구에서 해저 1만927m에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 뒤집어놓고 보면 지표면에서 성층권에 이르는 정도의 거리인 것이다. 화성과 달 탐사에 열을 올리는 이 시대에 말이다.
 
 <우리를 둘러싼 바다>
 <우리를 둘러싼 바다>
ⓒ 에코리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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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미국 해양생물학자 레이첼 카슨의 <우리를 둘러싼 바다>를 언급하고 싶다. 바다에 대한 빈곤한 콘텐츠에 갈증을 느끼는 독자라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다.

태초부터 바다가 형성되어 온 과정, 바다에서 거듭된 생명체 진화의 양상, 심해 탐사를 위한 인류의 도전, 바다의 움직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바다가 지구의 생태 순환에 미치는 영향 등을 충실히 담아낸 바다 안내서다. 

이 책은 시각적인 정보를 보여주는 데 대단히 인색하다. 책을 통틀어 표와 그림은 각각 한 차례씩 삽입되어 있다. 지구와 생명체의 역사를 보여주는 표 하나, 대서양과 태평양 해류의 흐름을 보여주는 그림 하나가 전부다.

바다의 모습을 보여주는 자료 사진이나 참고 이미지가 일정 부분 들어갈 법도 한데 그런 것이 전혀 없다. 놀라운 건 책을 읽는 내내 레이첼 카슨의 유려한 필치에 기대어 끊임없이 요동치는 바다 풍경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는 점이다. 

책을 읽다 보면 다양한 바다 이미지가 절로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 과정이 내게는 즐거운 독서 경험이었다. 바다가 상승과 하강을 되풀이하며 지구의 지형을 바꾸는 과정, 심해를 탐사하는 인류의 노력, 심해의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생명체의 생존 투쟁, 지구의 온도를 조절하고 안정시키는 바다의 기능 등 레이첼 카슨의 충실한 해설을 따라가는 동안 아득히 먼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역동적인 바다 이미지를 불러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1부 '어머니 바다'의 네 번째 장 '해가 들지 않는 바다'였다. 심해의 풍경과 그곳에서 사는 생명체에 대한 우리의 궁금증을 자극하는 흥미진진한 내용들로 가득하다.

심해 탐사 분야의 선구자는 스위스 물리학자 오귀스트 피카르 교수다. 1953년 9월  그는 아들 자크 피카르와 심해 잠수정을 타고 지중해에서 3119m 깊이까지 내려갔다. 1960년 1월에는 자크 피카르와 돈 월시가 잠수정을 타고 마리아나 해구에서 1만740m까지 도달했다. 바다의 극심점에도 생명체가 살고 있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있었지만 심해는 지금도 여전히 풀리지 않은 비밀을 고집스레 간직하고 있다.

카슨은 섬이 생성되고 그 안에 동식물이 거주하게 되는 일련의 과정을 설명하면서 인간에 의해 자연 생태가 파괴되는 현상을 지적하기도 한다. 인간이 어떤 식으로 섬의 생태에 영향을 미치고 환경을 파괴하는지 신랄하게 고발하는 대목이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인간은 해양 섬과 관련해 파괴자로서 암울한 기록을 남겼다. 인간이 섬에 발을 들여놓기만 하면 그곳은 여지없이 재앙에 가까운 변화를 겪었다. 인간은 삼림을 베어내고 개간하고 불태우는 식으로 환경을 파괴했다.(…) 세계 어느 지역보다 빠르게 고유 동식물 종이 사라져간 하와이제도는 자연의 균형에 간섭하면 어떤 결과가 빚어지는지 똑똑히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동물과 식물, 식물과 토양의 관계는 수 세기에 걸쳐 형성된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난데없이 끼어들어 제멋대로 그 균형을 깨뜨림으로써 붕괴로 치닫는 연쇄작용을 촉발했다. (p.159-160)

앞서 머리말에서도 방사성 폐기물이나 오염된 쓰레기를 바다에 버리고 있는 인간의 행태를 우려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카슨의 말처럼 생명체를 탄생시킨 바다가 인간에 의해 위협받고 있는 얄궂은 상황이지만 정작 위험에 빠지는 쪽은 인간이라는 지적이 무겁게 다가온다. 

문장에 대해 다시금 몇 마디 덧붙이지 않을 수 없다. 그림이나 사진, 도표 없이도 독자가 책읽기에 집중할 수 있는 건 오롯이 레이첼 카슨의 유려한 문장 덕이다. 카슨은 자신이 생각하는 바다의 경이로움을 드러내고자 섣불리 수식어를 동원하거나 화려한 미문을 구사하지 않는다. 

카슨의 문장은 차분하고 건조하며 절제되어 있다. 또한 정확하다. 자연과학 현상을 서술하면서도 기저에 문학적 감수성을 깔고 있다. 건조한 시와 같다고 할까. 흔히 문학적 글쓰기와 과학적 글쓰기를 서로 다른 영역으로 여기는 시각이 많지만 카슨은 두 영역의 가장 이상적인 교집합을 이뤄냈다. 

그런 면에서 카슨의 글은 분야를 막론하고 글쓰기의 훌륭한 모범으로 꼽기에도 손색이 없다. 우주의 신비를 시적 언어로 풀어놓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가 우주를 다룬 대중 과학서의 고전이라면 해양생물학 영역에서는 레이첼 카슨의 책을 이에 견줄 수 있지 않을까.

우리를 둘러싼 바다

레이첼 카슨 (지은이), 김홍옥 (옮긴이), 에코리브르(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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