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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지진이나 홍수가 일어났다는 뉴스를 외국에서 보는 게 이런 마음이었을까. 한국에서 한 달 넘게 이어진 코로나19 상황이 아무래도 좋아 보이지 않았다.

대구광역시와 경상북도 쪽에서 전파 상황이 급격히 빨라진 뒤엔 더 걱정이 늘었다. 건강한 사람은 큰 피해 없이 완치될 수 있다지만, 경북 지역은 한국에서 고령 인구 많기로 대표적인 지역이 아니던가.

경북 의성에 거주하는 친인척 어르신도 건강 문제로 의료원 응급실에 자주 가신다. 이 시국에 응급실에 가야 하는 상황이 오면, 꼭 코로나19 환자가 아니더라도 위험할 수 있다. 질병관리본부 차원에서도 대응하기 까다로운 지역일 거라고 짐작한 이유다.

경북 안동 응급의학과 의사가 쓴 퇴근일기를 보고  

그러다가 페이스북에서 고등학교 친구의 글을 읽었다. 같은 반은 아니었지만 늘 유머러스한 표정과 말씨 때문에 그를 좋아했던 나는, 그가 의사로 일하고 있다는 것만 기억하고 있었다. 근황을 주고받을 정도로 평소 연락을 주고받진 않은 탓에, 어디에 근무하는지는 몰랐다.

그런데, 친구가 쓴 글을 보니 그는 "경북 안동에 직장을 두고 있는 응급의학과 의사"였다. 그가 쓴 짧은 퇴근일기에서는 내가 기억하던 그의 재미있는 말투보단 지친 감정이 느껴졌다.

그는 "여느 때처럼 아침에 퇴근하고, 병원 앞 오피스텔에 들어가 뉴스를 시청하며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한다"고 적었다. 확진자와 사망자가 늘었다는 소식에 탄식하곤, 휴식 차 집에 들어가기 전 서너 시간 눈을 붙였다고 썼다. 시장 근처라 늘 붐비던 병원 앞 거리에서 그의 눈에 들어온 건 마스크를 쓴 사람들. 그는 마스크 위로 내놓은 눈에서 불안과 걱정을 읽고, 무거운 공기를 느낀다고 했다. 그리고 적었다. "힘내라 경북, 힘내라 대구."

이 퇴근일기를 읽은 나는 그들이 조금 더 기운을 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상상 못할 상황을 밤새 마주했을 이 의사와 동료에게도, 지금 코로나19를 상대로 싸우는 현장은 말 그대로 전선(戰線)일 테니. 그래서 결심했다. 여기 핀란드에서 마스크를 찾아 보내기로 말이다. 마스크라면, 모자란 것보다 넉넉한 게 나을 것 같았다.

핀란드에서도 마스크는 '품귀'... "공장이 중국에 있어서"
 
 핀란드 헬싱키 지역 매장 마스크 진열대가 비어있는 모습
 핀란드 헬싱키 지역 매장 마스크 진열대가 비어있는 모습
ⓒ 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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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도 일반용 마스크는 약국마다 동난 지 몇 주째였다. 나는 핀란드 마스크 제조업체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뜻밖에도 의료시설이나 공공시설에 들어가는 공기청정기나 설비를 만드는 업체가 마스크도 제조하고 있었다.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업체 본사를 찾아가 마스크를 사고 싶다고 했다. 판매 담당자가 미안한 얼굴로 주문 현황을 설명했다. 마스크 제조 공장이 중국에 있다 보니, 제품도 대부분 중국으로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자동화 설비로 빠르게 생산하는 제품이나 공정이 조금 더 긴 의료용과 산업용 마스크 모두, 물량 대부분을 우한을 비롯한 중국 대도시에서 가져가는 상황. 말하자면, 나처럼 개인이 살 수 있는 마스크는 이미 시장에 나와 있는 제품뿐이었다.
  
 마스크 3개가 한 묶음인 제품을 대형 잡화점에서 살 수 있었다. 가격은 9천 원가량.
 마스크 3개가 한 묶음인 제품을 대형 잡화점에서 살 수 있었다. 가격은 9천 원가량.
ⓒ 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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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직원이 적어준 몇 군데 매장 이름을 들고, 네 곳을 빠르게 돌았다. 여러 종류 마스크가 진열돼 있었을 매대 대부분이 텅 비어 있었다. 다행히 이 가운데 한 곳에서 운 좋게 진열 직전의 마스크를 구매할 수 있었다.

KP94(유럽 기준 FFP2) 마스크 3개가 한 묶음인 제품 마흔 세트. 매장 직원은 '정말 마지막 남은 물건'이라며, 언제 다시 들어올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나는 이마저도 한국에선 부족할 것으로 생각하며 상자째 값을 치르고 들고 나왔다.

우리가 기부한 건 '마음' 아닐까

그러고는 페이스북에 '친구 공개'로 글을 올렸다. 현재 마스크가 가장 필요한 곳을 함께 찾아 기부하면서, 응원하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핀란드에서 한국에 보내는 배송비는 내가 모두 부담하는 대신, 마스크값을 열 명이 십시일반 하자고 제안했다. 소포용 상자에 들어가는 마스크 99개 구매비 30만 원가량을 나눠 내면, 각자 3만 원가량을 부담하는 것이었다.

적지 않은 금액인데도 동참하겠다는 '페친(페이스북 친구)'이 몇 시간 만에 10명을 넘어 밤사이 스무 명을 넘었다. 대구광역시 쪽 물품 기부 담당자와 직접 연락해 구체적인 기부 절차를 알아봐 주신 동참자도 계셨다.

마스크 기부에 동참하는 사람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도 요청했다. "우리 모두 이겨냅시다" "힘내시기 빕니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시민의식이 빛나는 대구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지치지 말고 건강 꼭 챙겨주세요!" 등 따뜻한 말을 정리하면서 나도 기운이 솟았다.
 
 상자 안에는 마스크와 함께 응원 메시지를 인쇄해 붙여두었다.
 상자 안에는 마스크와 함께 응원 메시지를 인쇄해 붙여두었다.
ⓒ 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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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두 명이 한 줄씩 모은 응원을 종이 한 장으로 인쇄해 마스크 상자에 함께 넣었다. 상자 겉에는 '대구관내 코로나19 재난 구호'라는 큼지막한 글자도 붙였다. 예상 밖의 어려운 일을 겪고 있는 이웃을, 또 다른 이웃과 함께 돕는 건 보람된 일이었다.

마스크 기부자들의 소감도 물었다. 교사 박유신씨는 마스크 부족으로 외출을 꺼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우려하던 차에 작게라도 기부에 함께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직장인 우은지씨는 "건물주가 월세를 받지 않는다든가, 남은 식자재를 소셜미디어에 올려 나눈다는 미담을 보곤 한국과 대구의 시민의식이 자랑스러웠다"라며 "힘들고 어려울 때 패닉(혼란)에 빠지지 않고 차분히 서로를 돕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여서 동참하고 싶었다"라는 소회를 남겼다.

대구가 고향인 서원섭씨는 "질병이 끼치는 신체적인 해악보다 국민과 사람을 분열시키는 사회적 해악이 더 큰 것처럼 보인다"며 신뢰를 잃지 말고 잘 이겨 나갔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우리가 기부한 건 코로나19로 생긴 여러 피해와 갈등을 이겨내는 마음이 아닐까 싶었다.
  
이렇게, 여러 사람의 마음을 담은 마스크 99개가 핀란드에서 대구로 향하고 있다.
      
 혹시 세관에서 참고할 수 있도록 재난 구호물품 표시를 큼지막히 상자에 적었다.
 혹시 세관에서 참고할 수 있도록 재난 구호물품 표시를 큼지막히 상자에 적었다.
ⓒ 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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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자 명단]

박종호, 하윤영, 유현경, 서원섭, 박유신, 정다원, 별샛별, 우은지, 류선정, 박점희, 송여주, 김혜경, 정현선, 천유경, 김현아, 신상균, 최명주, 김진이, 김수진, 기남영, 최누리, 최원석 (총 22명)

 
 마스크 기부 참여자들이 보낸 응원메시지
 마스크 기부 참여자들이 보낸 응원메시지
ⓒ 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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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프리랜서 기자(핀란드 거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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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 기자. 핀란드 라플란드대학 미디어교육 석사 과정. 워치독아시아(Watchdog Asia) 코디네이터.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관련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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