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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티우아칸 달의 피라미드에서 본 테오티우아칸의 모습. 좌측에 태양의 피라미드가 보인다.
▲ 테오티우아칸 달의 피라미드에서 본 테오티우아칸의 모습. 좌측에 태양의 피라미드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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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멕시코라는 나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미국과 국경을 맞이한, 그래서 기회만 있으면 미국으로 넘어와 살려고 하는 가난하고 수준 낮은 사람들이 사는 곳? 마약 카르텔 조직이 정부의 힘보다 센 무시무시한 곳? 원주민 모습을 한 성모 마리아가 발현한 성지 순례지?

20년 가까이 미국 땅 엘에이에 살면서 많은 멕시코인을 보아 온 나에게도 멕시코는 위에 언급한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적어도 작년 여름과 이번 여행까지 두 차례에 걸쳐 멕시코를 방문하기 전까지는.

멕시코와 가까운 이웃 동네라 할 수 있는 엘에이에 살 때는 한 번도 가 보지 않았던 멕시코 땅을 비행기로 20시간 이상 걸리는 한국에 살면서는 일 년 안에 두 번이나 밟게 되었다.

지난 2월, 한 도시의 관광으로는 다소 긴 그러나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도시의 역사와 문화를 탐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6박 7일 동안 멕시코시티를 방문하였다.

멕시코시티는 알려진 바와 달리 공기는 맑았고 거리는 비교적 깨끗하고 안전했다. 우리의 숙소가 있던 알라메다 공원 외에도 세계 최대 규모의 인류학 박물관이 있는 차풀테벡 공원 등 여러 공원과 소콜라로 불리는 광장에는 밤낮없이 사람들이 모여 각종 공연을 펼치고 노점상들이 즐비해 있었다. 
호수 위에 있는 멕시코시티 국립 인류학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16세기 멕시코시티(테노치티틀란) 모습
▲ 호수 위에 있는 멕시코시티 국립 인류학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16세기 멕시코시티(테노치티틀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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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시티는 해발 2200m의 고도에 있음에도 더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아니, 사실은 산기슭 호수 위에 조성된 인공섬이다. 아스텍 신화에 따르면, 아스텍 왕이 어느 날 꿈에서 "선인장 위에 독수리가 뱀을 물고 있는 곳에 큰 도시를 세워라"라는 신의 계시를 받아 텍스코코(Texcoco) 호수에 도시를 건설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전설은 현재 멕시코 국기 한가운데 그려져 있는 문장의 유래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해석하자면, 기후변화가 일어나면서 고지에 쌓여있던 빙하와 눈이 녹아 호수가 만들어지자 호수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 농사를 지으며 살게 되었고, 13세기 말 이 지역에 들어온 아스텍이 호수를 간척하여 인공 섬을 만들고 그 위에 멕시코시티의 전신인 테노치티틀란(Tenochtitlan)을 건설하여 도읍으로 정한 것이라 하겠다.

여기에 아스텍 왕의 꿈 이야기와 같은 건국 신화가 곁들여져 아스테카 왕국의 신정정치가 펼쳐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고작 일주일간의 여행을 다녀온 어느 관광객의 결론이다. 
뗌쁠로 마요르 테노치티틀란의 중심 신전이나 스페인에 의해 다 파괴되고 일부 돌계단과 잔해만이 남아있다.
▲ 뗌쁠로 마요르 테노치티틀란의 중심 신전이나 스페인에 의해 다 파괴되고 일부 돌계단과 잔해만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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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궁이 있는 소칼로(광장)에서 북동 방향으로 조금 걸어가면 뗌쁠로 마요르(Templo Mayor)라는 하단부만 남아있는 아스텍 유적 터를 볼 수 있다. 바로 이곳이 테노치티틀란의 핵심부인 신전이 있던 곳이다. 

중남미 대부분의 유적지가 그렇듯이 뗌쁠로 마요르 위에도 스페인 정복자들이 건설한 성당과 집터가 들어섰던지라 유적의 대부분은 파괴되고 하단부만 남았다. 하지만 유적의 잔해만으로도 16세기 이전 아스텍의 건설 문명과 인공섬 건설에 따른 관개시설의 첨단성을 그대로 볼 수 있었다.  
소치밀코 아즈텍 시대에 건설된 거대한 수상 운수 시설의 마지막 유적지. 지금은 화려한 색의 곤돌라형 보트가 크루즈로 방문객을 실어나르는 유명 관광지이다.
▲ 소치밀코 아즈텍 시대에 건설된 거대한 수상 운수 시설의 마지막 유적지. 지금은 화려한 색의 곤돌라형 보트가 크루즈로 방문객을 실어나르는 유명 관광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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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시티가 인공섬이라는 믿기지 않는 사실의 흔적은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멕시코시티의 수로인 소치밀코(Xochimilco)에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수평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대통령 궁 테라스와  눈에 띄게 기울어져 있는 과달루페 구 성당과 소칼로 인근의 몇몇 건물에서 인공섬의 약점으로 인한 지반의 약화 현상을 실감할 수 있었다. 
 
과달루페 바실리카 성당 가운데 보이는 성당이 16세기에 지어진 원래의 성당인데, 지반의 침하로 기울어짐으로써 1974년부터는 체육관 모양으로 생긴 신 성당에서 미사가 치러지고 있다. 과달루페 성모상 역시 신 성당 중앙에 전시하고 있다. 얼핏 보아도 구 성당의 기울어짐을 알 수 있다.
▲ 과달루페 바실리카 성당 가운데 보이는 성당이 16세기에 지어진 원래의 성당인데, 지반의 침하로 기울어짐으로써 1974년부터는 체육관 모양으로 생긴 신 성당에서 미사가 치러지고 있다. 과달루페 성모상 역시 신 성당 중앙에 전시하고 있다. 얼핏 보아도 구 성당의 기울어짐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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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의 유적을 제대로 감상하기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원주민 종족들도 다양하고 그들이 섬기던 신 또한 참으로 많다. 더욱이 그 이름들은 어찌나 길고 발음하기조차 어려운지.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인류학 박물관 견학이 힘든 것은 엄청난 크기의 규모로 체력이 소모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름도 생소한 여러 원주민의 유사하면서도 특색있는 문화 유적, 유적과 관련된 여러 신과 이에 관한 신화들, 이들 문화의 기반이 된 지역과 서로와의 관계 등을 한 번에 감상하고 이해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하였다. 대부분 스페인어로 된 설명을 건너뛰면서 몇 개 안 되는 영어 해설을 읽는 것으로도 머리가 지끈지끈하였다.
 
멕시코 국림 인류학 박물관 2층으로 되어 있는 세계 최대 인류학 박물관으로 아래층은 선사시대부터 아스텍, 마야, 테오티우아칸, 톨텍, 와하카 등 원주민 종족별 지역별로 구분된 12개 전시실이 있고 위층에는 멕시코 전역의 민족사가 모형물로 전시되어 있다.
▲ 멕시코 국림 인류학 박물관 2층으로 되어 있는 세계 최대 인류학 박물관으로 아래층은 선사시대부터 아스텍, 마야, 테오티우아칸, 톨텍, 와하카 등 원주민 종족별 지역별로 구분된 12개 전시실이 있고 위층에는 멕시코 전역의 민족사가 모형물로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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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 박물관에는 기원전 1500년경에 시작하여 1000년 가까이 존재했던 멕시코 문화의 시조라 할 수 있는 올멕 문명, 유카탄반도에서 기원전 1000년경부터 2000년 가까이 번성했던 마야 문명, 멕시코시티의 일일 관광 코스로 유명한 테오티우아칸(Teotihuacan) 피라미드를 세운 기원후 100년부터 약 700년간 번성했던 테오티우아칸 문명, 이후의 톨텍 문명, 현재의 멕시코시티를 중심으로 13세기부터 찬란한 문명을 이루다 스페인에 정복당한 아스테카 문명, 그리고 와하카 지역을 중심으로 기원전부터 문명을 이루었던 사보텍, 미스텍 문명, 이 밖에도 멕시코 서부지역, 걸프 지역, 북부 지역 등에서 일어났던 수없이 많은 문명의 유적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들 문명은 하나의 조상을 중심으로 이어 온 것이 아니라 각각의 지역에서 독립적으로 일어났다가 어느 날 이유 없이 사라지거나 혹은 서로 간의 전쟁을 통하여 멸망하곤 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1521년 스페인의 침략으로 거의 모든 문명이 파괴되었다는 것이다.

여러 문명이 동시에 정복당하고 파괴되면서 정복자의 구미에 맞게 하나의 식민지가 되어 여러 종족의 원주민과 정복자들이 한데 섞이고 얽히면서 오늘날 멕시코 특유의 문화를 갖게 된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멕시코에는 스페인 정복 이전의 토착 원주민 문명, 스페인 문명, 현대 문명 등 세 가지 문명이 공존하고 있다.
 
틀라텔롤코 스페인 정복 이전의 토착 원주민 문명, 스페인 문명, 현대 문명 등 세 가지 문명이 공존하고 있는 대표적인 곳. 1968년 대학살이 일어난 곳으로도 유명하다.
▲ 틀라텔롤코 스페인 정복 이전의 토착 원주민 문명, 스페인 문명, 현대 문명 등 세 가지 문명이 공존하고 있는 대표적인 곳. 1968년 대학살이 일어난 곳으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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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티우아칸을 가는 도중에 들른 틀라텔롤코(Tlatelolco)에서 찍은 사진은 이를 분명히 보여준다. 아스텍 시절 피라미드의 잔해들이 유적으로 남아 있고 그 뒤로 보이는 산티아고 성당은 스페인의 정복자 코르테스가 피라미드를 파괴해 나온 돌로 건설했다. 성당 측면과 숲 뒤로 보이는 건물은 현대식 건축물이다. 틀라텔롤코를 안내한 가이드는 자신도 멕시코인들 90%가 그렇듯  원주민과 스페인 사람의 피가 섞인 20세기에 나타난 새로운 인종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틀라텔롤코는 학살의 현장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멕시코 정권은 1968년 멕시코 올림픽 열흘 전 이곳에서 민주화와 올림픽 반대를 외치는 시민과 학생들을 무력으로 무자비하게 진압하여 300명에서 400명 가량을 희생시켰다.
  
멕시코는 빈부의 차이가 큰 나라다. 우리가 세계에서 15위인 경제 대국 멕시코를 가난한 나라로 착각하게 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마천루를 이루고 있는 멕시코시티의 중심부와 그곳에서의 생활 모습은 멕시코시티가 부유한 도시임을 보여주나, 외곽으로 나가면 옥상에 물탱크와 가스통을 이고 있는 집들이 산등성이를 빼곡히 채우고 있는 빈민촌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은 대부분 멕시코시티로 나가 밥벌이를 하는데, 이로 인해 멕시코시티의 등록된 인구수는 약 9백만에 불과함에도 경제활동 인구수는 2000만 이상으로 집계되고 있다. 
 
멕시코시티의 외곽 모습 버스에서 촬영한 모습. 산등성이 회색으로 보이는 것이 옥상에 물탱크와 가스통을 이고 있는 집들이다. 70년대 서울의 모습이 떠오른다.
▲ 멕시코시티의 외곽 모습 버스에서 촬영한 모습. 산등성이 회색으로 보이는 것이 옥상에 물탱크와 가스통을 이고 있는 집들이다. 70년대 서울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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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1년 독립을 하고 헌법을 공포한 이후에도 멕시코는 미국과의 영토 전쟁을 치렀고 이후 프랑스와도 전쟁을 치렀다. 또한, 내부적으로는 농민 전쟁, 사회주의 운동 등 20세기 여러 국가가 겪었던 내부 혼란을 혹독히 겪었다. 그 와중에 판초 비야와 자파타와 같은 국민 영웅이 탄생했고 디에고 리베라와 같은 멕시코가 자랑하는 세계적인 화가도 나왔다.

지난번 와하카 방문이 멕시코 문화 역사의 개론이었다면 이번 멕시코시티 방문은 본론으로 들어간 것으로 시험을 본다면 몇 날 며칠을 밤새워 공부해도 모자라는 묵직한 경험이었다.

관광하는 도중은 물론 심지어 집으로 돌아와서도 인터넷을 검색하는 등 열심히 공부했으나 요즘 같은 기억력으론 얼마나 머릿속에 남을지 의문이다. 그래도 슬며시 정이 가는 멕시코인들, 맛있는 음식, 저렴한 물가, 생각보다 굉장한 스페인 정복 이전의 유적 등은 잊히지 않을 것이다.

멕시코인들은 상당히 순박했으며 다소 굼뜬 그들의 행동이 언어와 문화에 낯선 관광객에는 편안함을 느끼게 하였다. 음식은 우리 입맛에 잘 맞고 값도 싸서 여행 기간 내내 사 먹어도 부담이 크지 않고 한국 음식에 대한 갈증도 별로 느끼지 못했다.

대도시인지라 약간의 속임수에 넘어가기도 했으나 관광 비용인 셈이고 우리에겐 웃고 넘어갈 수 있는 추억거리 정도였다. 멕시코시티에서의 좋은 추억을 간직하며 일행은 다음 목적지인 멕시코의 세계적인 관광지 칸쿤(Cancun)으로 향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50+ 포털 사이트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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