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강타한 '코로나 19' 사태가 좀처럼 진정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프로농구(KBL)의 파행도 점차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이미 26일부터 무관중 경기를 시작한 데 이어 외국인 선수들이 줄줄이 팀을 떠나고 있다. 26일 KT 앨런 더햄을 시작으로 팀동료인 바이런 멀린스-오리온 보리스 사보비치까지 벌써 3명의 선수가 구단에 스스로 계약 해지를 요구하며 팀을 떠날 것을 결정했다.

KBL 규정상 구단과의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외국인 선수는 향후 한국무대에서 다시 뛸 수 없는 영구제명 징계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선수들도 이 규정을 알면서 계약해지를 선택한 것은 그만큼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감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농구팬들도 아쉽지만 비판하기보다는, 떠나려는 선수들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한다는 반응이 우세하다.

더 큰 걱정은 지금부터다. 일부 외국인 선수들의 연쇄 이탈이 프로농구를 비롯하여 아직 한국무대에서 뛰고 있는 각 종목 외국인 선수들의 사기나 거취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국내 선수들이나 구단 관계자들의 불안감도 마찬가지다. 징계나 설득으로 막는 것도 한계가 있다. 과연 이 상태로 끝까지 정상적으로 리그를 운영할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이 커질 수밖에 없다.

 
 27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남자프로농구 서울 SK 나이츠와 부산 KT 소닉붐의 경기. 관중석이 텅 비어있다.

27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남자프로농구 서울 SK 나이츠와 부산 KT 소닉붐의 경기. 관중석이 텅 비어있다. ⓒ 연합뉴스

 
KBL, '타이밍 늦은' 잔여시즌 무관중 경기 결정

KBL은 지난 25일 긴급 이사회를 열고 팬들의 안전을 고려하여 잔여시즌 무관중 경기를 결정했다. 여자농구(WKBL)와 배구에 이어 프로 리그로서는 세 번째였다. 하지만 타이밍상 이미 조금 늦은 감이 있었다. 최근 국가위기경보단계가 '심각'으로 격상된 다음에 내려진 결정이라 무관중 경기만으로 코로나 사태에 대한 불안감을 진정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무관중 경기에도 전국을 돌면서 홈-원정 경기를 치러야하는 선수들이나 경기 관련 현장 인력들의 심리적 부담감은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무관중 경기 시행 불과 이틀만에 곳곳에서 문제점이 터져나오며 우려는 현실이 되고 있다. 경기력이 눈에 띄게 떨어졌고 평소같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비정상적인 상황이 속출하고 있다.

가장 직격탄을 맞은 팀은 역시 KT다. 외국선수 두 명이 모두 자진 퇴출 의사를 밝힌 KT는 27일 경기에서 국내 선수만으로 경기를 치러야했고 SK에게 74-95로 대패했다. 현실적으로 지금 상황에서 대체 외국인 선수를 구할 수 있을지도 장담하기 어렵다. 6위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KT는 남은 경기를 모두 국내 선수로만 치르게 될 가능성도 높다.

지켜보는 관중들이 없어서인지 뛰는 선수들도 흥이 나지 않는 모습이다. 경기마다 어이없는 턴오버가 속출하는가 하면, 노마크 슈팅이 연달아 림을 외면하는 등 집중력이 흔들리는 모습이다. 전자랜드 베테랑 가드 박찬희는 지난 26일 2019-2020 현대모비스 프로농구 안양 KGC인삼공사와의 홈경기 종료 28초를 남기고 교체 아웃된 상황에서 경기가 끝나기 전에 곧장 벤치를 이탈하고 중계방송사 및 언론사 공식 인터뷰에도 응하지 않아 KBL 재정위원회에 회부되기도 했다.

현장을 찾지는 못해도 TV 시청 등으로 경기를 지켜볼 수 있는 팬들을 만족시키기에 부족한 모습이었다. 물론 선수들의 프로의식만 탓할 수는 없는 문제다. 선수들도 사람이다보니 최근의 상황에 대하여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국내 선수들은 물론 KBL에서 오랫동안 활약한 외국인 선수들도 "전쟁 위기-메르스 사태보다 지금 분위기가 더 무섭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라고 한다. 현장의 분위기가 얼마나 위축되어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적어도 전쟁위기나 메르스 사태 때에는 리그가 파행으로까지 치닫지는 않았다.

다른 프로 종목들도 코로나 사태에 빠르게 대응하여 최근 새로운 대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프로축구는 아예 2020시즌 K리그 개막 일정을 무기한 연기했으며 프로야구 KBO리그도 3월로 예정되어 있던 시범경기 일정을 전면취소했다. KBL보다 앞서 무관중 경기를 시행했던 WKBL은 아예 잔여 리그 경기 일정을 취소하는 것도 고민중이다.

KBL도 지금의 상황이 계속된다면 대책을 다시 논의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런 상태에서 과연 리그를 강행하고 순위와 우승팀을 가리는 것이 더 이상 무슨 의미가 있는지 진지하게 돌아봐야 한다. 당장 전면취소까지는 어렵다고 해도 리그 일정을 단축하거나 최소한 플레이오프와 챔피언결정전 일정만이라도 조율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

KBL보다 리그 규모가 더 크거나, 혹은 시즌이 한참 진행된 다른 종목들도 리그 중단까지 논의하고 있는 상황에서 KBL만 굳이 리그 강행을 억지로 고집할 이유는 없다. 구성원들의 희생정신과 프로의식도 그것을 정상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여건이 뒷받침되었을 때나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팬들은 물론이고 선수들과 관계자들 개개인 역시 소중한 사람들이고 그들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 현재 KBL에게는 가장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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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농구자진퇴출 무관중경기 코로나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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