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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발이 날리는 날,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8호인 안양 만안교(萬安橋)를 찾았다. 조선 제22대 왕이었던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참배하기 위해 오갔던 그 다리.  225년 전에 만들어진 이 다리는 오늘날에도 지역민들의 소중한 가교(架橋) 역할을 하고 있다.

조선시대 뛰어난 개혁군주였던 정조(正祖)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비통하게 보내야 했다. 고통스럽게 세상을 뜬 아버지 사도세자(思悼世子)의 죽음을 하루도 잊지 않고 있던 정조는 왕으로 즉위한 당일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라고 하여 대신들을 놀라게 했다.

만안교는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인 현륭원(顯隆園)을 참배하러 갈 때 통행의 편의를 위해 축조한 다리다. 1795(정조19년)년에 건립하였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8호이며,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에 위치해 있다.
 
 만안교비(사진=CPN문화유산TV 심연홍기자)
 만안교비(사진=CPN문화유산TV 심연홍기자)
ⓒ 심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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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남쪽으로 약 200m 떨어진 만안로 입구인 안양천 쪽에  있었는데, 1980년 국도확장 당시 이곳 삼막천으로 옮겨 복원되었다. 안양시 문화재담당자(임동일)의 말에 의하면, 새로 옮기는 장소가 기존의 장소보다 약간 협소하여 다리의 원형 그대로를 완벽하게 이전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이 다리의 원래 길이는 약 30m, 폭 약 8m, 높이 약 6m이고 홍예수문(虹蜺水門)이 5개라고 하였다. 그런데 현재 홍예(수문)이 7개인 것으로 봐서 시공 당시 변경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만안교비전각(사진=CPN문화유산TV 심연홍기자)
 만안교비전각(사진=CPN문화유산TV 심연홍기자)
ⓒ 심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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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예는 정교하게 다듬은 장대석(長臺石)을 사용하여 반원형을 이루도록 하였으며, 역시 장대석을 깔아 위쪽 노면을 형성했다. 전체적으로 축조 양식이 매우 정교한 만안교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홍예석교로 평가된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양주(楊洲)에서 수원 화산으로 옮긴 후 자주 참배길에 올랐다. 당시 서울에서 수원으로 가는 길은 용산에서 노량진으로 한강을 건너고 동작을 거쳐 과천으로 통하는 길이었다.

그런데 가는 길에는 교량이 많을 뿐 아니라 남태령이라는 고갯길이 있어서 길을 닦고 행차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게다가 사도세자의 죽음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김상노(金尙魯)의 형 김양모의 묘를 지나게 되어 있어, 정조는 이것이 불쾌하여 시흥길로 바꾸도록 하였다.

시흥로가 개설된 것은 1794(정조18년)년이다. 첫해에는 임시로 나무다리를 놓아 사용하였는데, 왕의 행차 시마다 다리를 놓았다 헐었다 하는 번거로움이 컸다. 그러므로 수원으로 갈 수 있는 다른 길을 모색하게 되었다. 그래서 한강을 건넌 다음, 시흥, 안양을 거쳐서 수원으로 가는 길을 택한 것이다.
 
 ?교량아래에 흰눈이 쌀짝 쌓인모습이 보인다(사진=CPN문화재TV 심연홍기자)
 ?교량아래에 흰눈이 쌀짝 쌓인모습이 보인다(사진=CPN문화재TV 심연홍기자)
ⓒ 심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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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경기 관찰사였던 서유방이 왕명을 받고 3개월의 공사 끝에 만안교를 완성하였다. 정조는 다리가 완성되자 '백성들이 만년동안 편안하게 이용하는 다리'라는 의미로 '만안교'라는 이름을 친히 내렸다.

만안교 위에 작은 꽃잎처럼 날리던 하얀 눈발이 이내 잦아들었다. 정교하게 각을 맞춘 돌다리를 걸으며, 그 당시에 어떻게 이처럼 견고한 제작이 가능했을까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의 돌다리를 현재에 걷는다는 주민들의 자부심도 대단하다.

정조가 아버지를 만나러 가기 위해 다리를 축조했지만 백성들 또한 이 다리를 이용하여 반대편을 편리하게 오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컸을 것으로 보인다. 효심 깊었던 정조의 아버지 대한 사랑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도심 속의 아름다운 건축물을 탄생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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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N문화재TV 심연홍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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