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 테니스를 대표하는 권순우가 20일 새벽(한국 시간) 벌어진 미국 델레이 비치 오픈 2회전에서 한때 세계 40위까지 올랐던 라이언 해리슨을 꺾고 8강에 진출했다. 권순우는 이번 대회를 포함 2월 들어 3연속으로 출전한 대회에서 모두 8강에 진입하는 큰 성과를 일궈냈다.
 
권순우는 2시간 40분에 육박하는 접전 끝에 세트 스코어 2대1(64, 36, 76)로 해리슨을 제압했다. 스코어 라인과 경기 시간이 말해주듯, 한치 앞을 보기 힘든 치열한 한판 승부였다.
 
 3개 대회 연속 8강 진입을 이뤄낸 권순우는 다음 주 발표되는 세계 랭킹 순위에서 70위대에 이름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3개 대회 연속 8강 진입을 이뤄낸 권순우는 다음 주 발표되는 세계 랭킹 순위에서 70위대에 이름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 위키미디어 커먼스

 
권순우로서는 올해 들어 치른 경기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는 승부였다. 그만큼 경기의 흐름이 수시로 뒤바뀌었다. 단적인 예로 권순우는 12번의 브레이크 기회를 잡았으나 3번 밖에 성공하지 못했고, 해리슨은 7번 기회 중 3번을 살려냈다. 

또 해리슨은 11개의 에이스로 재미를 봤으나, 더블 폴트도 7개나 범했다. 권순우는 1개의 에이스에 1개의 더블 폴트로 서브는 안정감 있었으나, 위력은 해리슨이 앞섰다.  
 
관중들 입장에선 보기 드물 정도로 흥미진진한 경기였는데, 이날 경기를 지배한 3가지의 요소가 경기 리듬을 좌우한 탓이다. 하나는 권순우의 피로 누적, 다른 하나는 해리슨의 오랜 부상 공백 끝 복귀로 인한 안정되지 못한 경기 감각, 마지막으로 햇빛과 바람의 영향이었다.
 
첫 번째 세트는 권순우가 쉽게 가져왔다. 해리슨은 경기 리듬을 타지 못한 반면, 권순우는 스트로크 싸움에서 확실하게 한 수위 실력을 보였다. 6-4 이상으로 실제 경기력에서는 권순우가 현저하게 앞섰다.
 
두 번째 세트는 3-3대까지는 그런대로 팽팽한 흐름이 이어졌다. 다만 권순우의 집중력이 눈에 띄게 떨어지며 범실이 시나브로 잦아지는 상황이었는데, 8번째 게임에서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3-5로 끌려간 끝에 9번째 해리슨의 서브 게임 때 속절없이 무너지며 세트를 내주고 말았다.
 
두 번째 세트는 햇빛과 바람이 영향이 승부를 갈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크게 작용했다. 이날 경기는 햇빛이 쏟아지는 방향과 바람이 부는 방향이 대체로 똑같아서 둘 다를 등지고 싸우는 쪽이 확실히 유리했다.
 
세 번째 세트는 권순우가 평정심을 어느 정도 회복한 상태였고, 해리슨 역시 부상의 공백을 지우고 경기 감각을 완연하게 회복한 세트였다. 세트 초반 서로 한 번씩 상대 서브를 브레이크한 뒤로는 6-6 타이 브레이크를 맞을 때까지 서로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이어진 타이 브레이크에서 첫 서브는 권순우 차례였는데, 햇빛과 바람을 등지고 시작했고 집중력을 어느 정도 유지한 덕에 순식간에 권순우가 5-0까지 앞설 수 있었다. 이쯤에서 해리슨은 기가 확실히 꺾였고, 타이 브레이크 0-6 상황에서 마지막 서브를 더블 폴트함으로써 2시간 40분 가까이 이어온 경기도 그걸로 막을 내렸다.
  
 레일리 오펠카, 권순우 선수의 8강 상대로 세계 최강 서버 가운데 한 사람이다.

레일리 오펠카, 권순우 선수의 8강 상대로 세계 최강 서버 가운데 한 사람이다. ⓒ 위키미디어 커먼스


권순우 선수의 8강전 상대는 22세 동갑내기 레일리 오펠카(미국)로 세계 랭킹 54위이다. 키 211cm로 현역 최장신 선수 가운데 하나이며 키에 걸맞은 강서브를 주무기로 한다.

권순우는 이날 경기 승리로 내달 12일 미국 캘리포니아 인디언 웰스에서 시작하는 올해 첫 마스터스 대회 자력 출전에 한발 더 다가서게 됐다. 인디언 웰스 대회는 9개의 마스터스 대회 가운데서도 가장 규모가 큰 대회로써 제5의 메이저로 불리기도 한다. 세계 랭킹 1~3위인 조코비치, 나달, 페더러 등 빅3의 동시 출전도 현재로서는 유력한 상태이다.
 
한편 권순우의 투어 대회 3연속 8강 진입은, 그가 빠른 속도로 투어 선수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증거다. 부상만 당하지 않는다고 전제하면, 이런 정도로 속도로 투어에 안착할 경우 세계 랭킹에서 연내 50위, 빠르면 상반기 중 50위 이내 진입도 가능하다. 권순우의 현재 랭킹은 82위인데, 24일 발표되는 새 순위표에서는 70위대에 오를 게 확실시 된다.
 
세계 프로 테니스협회(ATP) 투어 대회는 축구로 치면 영국 프리미어리그, 야구로 치면 미국 메이저리그에 비견할 만하다. 바로 밑 단계로 2부 격인 챌린저 대회가 있으며, 랭킹 포인트를 기준으로 할 때 그 아래로는 ITF 대회(일명 퓨처스 대회)로 이어진다.
 
ATP 투어 대회 안착은 축구 선수로서 프리미어 리그 진출, 야구 선수로서는 메이저리거와 맞먹는다고 할 수 있다. 한국 출신으로는 이형택을 최초의 본격 투어 선수로 볼 수 있다. 이어 챌린저급 대회들에서 좋은 성적과 2018년 오스트레일리아 오픈(AO) 4강을 발판으로 한동안 투어 대회에 출전했던 정현을 2번째 선수라고 할 만큼 세계 남자 테니스에서 활약한 한국 출신은 드문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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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우 테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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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6학년에 진입. 그러나 정신 연령은 여전히 딱 열살 수준. 역마살을 주체할 수 없어 2006~2007년 북미에서 승차 유랑인 생활하기도. 농부이며 시골 복덕방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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