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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미투' 운동을 통해 여성들은 일상이었던 성차별·성폭력 경험들을 공론의 장에서 이야기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말하기'를 통해 성폭력은 '일부' 여성들이 겪는 남의 일이 아니라 일상 곳곳에서 일어난다는 것, 그 원인은 성차별과 성폭력이 용인되는 현실에 있다는 것을 수면 위로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폭력을 정당화는 시선들과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2차 피해들과 마주해야 했습니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이러한 맥락 속에서 미투 이후, 현재 여성들의 현실과 일상은 얼마나 달라졌는지 알리고자 <2019년 함께 쓰는 성폭력사전(아래 함께사전)>을 기획했습니다. 여성들이 직접 적어준 892개의 경험과 생각으로 엮은 내용과 더불어 미투 이후의 이슈를 담은 기획기사를 앞으로 4번에 걸쳐 다뤄 볼 예정입니다.[편집자말]
  2018년 11월 고등군사법원은 해군 대령이 성소수자 여군을 눌러 반항을 하지 못하게 한 후 성폭력 가해를 한 등의 사건에 대해 원심의 징역 10년을 파기하고 무죄 판결을 내렸다. 2019년 6월 13일 서울 고등법원은 채팅앱으로 만난 10세 초등학생에게 소주를 먹이고 성폭력 가해를 한 보습학원 원장에 대해, 징역 8년이 선고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3년형을 선고했다.

'폭행·협박으로 보기 어렵다'는 두 재판부의 판단은 결과적으로 "이것이 어떻게 강간이 아니냐"는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다. 특히 보습학원 원장 사건은 재판부가 '폭행 협박이 있었다고 보기 어려워' 직권으로 의제강간(피해자가 만 13세 이하인 경우 폭행, 협박 여부와 무관하게 강간으로 간주하는 법률)을 적용하여 형량이 낮아진 결과다. 이러한 판결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현실의 성폭력은 폭행과 협박의 틈새에 있다
 
 no means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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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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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성폭력을 처벌하는 법률에 관한 해석이 재판부의 재량에 달려있다는 점에 있다. 여전히 형법상 강간죄는 폭행과 협박을 사용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의 성폭력이 폭행과 협박을 동반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드물다. 평소 알고 지내던 사이이거나, 업무관계로 얽혀있거나, 지인 등 평소 신뢰하는 관계에서 발생한 성폭력 피해가 약 80%로 보고되며, 이 관계들은 굳이 우리가 상상하는 만큼의 폭행과 협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최근 전국 성폭력상담소협의회에서 2019년 1~3월 접수된 강간(유사강간포함) 상담사례를 분석한 결과, 직접적인 폭행·협박 없이 발생한 성폭력 사례는 71.4%(735건)에 달한다. 성폭력이 1)피해자와 가해자와의 힘 또는 권력에 차이가 있어서, 2)저항을 할 수 없는 피해자의 취약한 상황을 이용해서, 3)상습적인 학대에 노출되어 저항이 불가능해져서 등, 직접적인 폭행·협박이 없이도 일어난다는 의미이다.* 때문에 '강간죄'개정을위한연대회의는 현행의 비현실적인 '폭행 협박'이라는 구성요건을 동의 여부로 변경할 것을 촉구해왔다.

*<'강간죄' 개정을 위한 연대회의> 1차 의견서, 형법 제297조 '강간죄'의 구성요건을 '동의여부'로 개정할 것을 촉구합니다, 19. 3. 30. 인용.

폭행 협박 없이 일어나는 성폭력, 핵심은 동의

폭행, 협박이 없다면 어떻게 성폭력이 일어날 수 있냐는 물음은 곧, '적극적으로 저항했다면 성폭력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편견과 맞닿아있다. 과연 저항의 격렬함과, 그 저항을 무력하게 할 만큼의 힘은 누구의 시선인가? <함께사전>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여성들이 동의하지 않은 성관계를 경험하는 많은 경우는 상대방에게 자신의 의사표현이 거부로 읽히지 않거나 거부하고 저항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일 때였다.

NO MEANS NO, '아니'라고 하면 '아닌' 것이라는 슬로건이 여전히 유효하고 강력한 슬로건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동의에 대한 답변 가운데 양적으로나 내용 면에서도 주목할 만한 이슈는 연인 또는 호감이 있는 관계에서 거부 의사를 무시당한 경험에 대한 것이었다. 내 의사를 어물쩍 짐작하거나 적극적으로 무시하는 상대방에게, 관계를 망가뜨리거나 상대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 상대방의 일방적인 성적 요구를 잘 거절할 수 있을까?

지은 죄 없이 죄인이 되는: '조여오는' 데이트 관계
 
 오늘부터 일명 '데이트 폭력 삼진아웃제'가 도입된다. 대부분 여성들은 '지금도 데이트폭력의 처벌이 제대로 되지 않는데, 세 번까지 기다리면 피해자들이 다 죽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일리있는 비판이다.
  성적 관계에 있어 여성의 의사를 살피지 않는 관습은 널리 퍼져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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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기했는데 사정 못하면 아프다고, 사정해야 된다고 삽입을 강요하는 경우도 있었다"
(함께사전 이야기모임 중 참석자 발언)
남성의 발기를 여성 파트너가 책임져야 할 이유도 없는데 왜 이러한 방식의 강요를 수락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비슷한 상황들은 관계 전반에 걸쳐 반복적으로, 다양하게 이루어진다. '기본적인 진도를 빼야한다'는 생각으로 압박하는 파트너, 계속 어르고 달래고 졸라서, 혹은 발기를 참으면 아프다고 하니까, 거절하면 대놓고 불쾌한 기색을 비치거나 불평을 늘어놓아서 등등이 그렇다.

"거절을 하는 나를 죄 지은 사람 처럼 만들어서, 마치 조여온다는 느낌"(이야기모임 중 참석자 발언)의 압박감이 작용하고 '원하니까', '어쩔수 없이 해주는', '남성의 심기와 관계를 거스르지 않기 위한' 수행을 하게 된다. 상대방이 여성의 의사를 존중한다면 하지 않아도 되었을 선택(?)이지만 성적 관계에 있어 여성의 의사를 살피지 않는 관습은 데이트관계에서의 성별역할수행에서 형법상 성폭력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스펙트럼으로 걸쳐져있다.

물론 "동의에 기초한 성적 경험"에 대한 답변에서 언어가 필수적으로 동반되는 것은 아니었고, 적으나마 여러 비언어적 의사소통을 통한 관계들도 있었다. 그러나 비언어적 의사소통의 함정은 성별불평등에 기반한 관성과 지레짐작에 근거해 동의여부를 마음대로 판단할 가능성이 상존한다는 것이다. 명시적이고 확실한 의사표현으로 동의를 확인하자고 강조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말로 하는 것이 가장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의'가 뭔데? 동의 어플이 아니라 평등한 관계와 소통

성관계도 상호관계의 다양한 방식 중 하나이므로 상대의 의사를 파악하고 존중하는 과정을 필요로 한다. 상대방의 자취방에 방문하거나 술을 함께 마신 것 자체는 성관계를 동의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실제 성적의사소통 과정에서는 여성의 의사가 남성중심적인 성문화에 의해 왜곡되곤 한다. 상대의 자취방에 방문하거나 술을 즐겁게 마신 것을 성관계에 동의했다고 간주하고 성폭력 가해를 하거나, 이러한 정황이 재판부의 성폭력 무죄 판단 근거가 되는 사례 등이 그렇다.

그렇다면 여성들이 '동의', '동의하지 않음'으로 인지하는 성적관계는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까. 상담소는 여성들이 '동의한 성적 관계'라고 생각한 장면들을 모아보면 동의의 감각을 공유하고 만들어나가는 데에 유용하겠다고 생각했다. <함께사전>을 통해 여성들에게 어떤 관계들에서 동의를 경험했는지 질문해보았다. 그 결과 동의에 기초한 관계의 상을 그리는 데에 의미있는 경험과 나름의 정의들이 모였다.

<함께사전> 연재를 마치며, <함께사전>에서 엮어본 '동의'의 의미 일부를 소개한다. '폭행, 협박을 동반한 강간, 추행'과 같은 협소한 법적성폭력 개념을 벗어나기 위해, 성폭력과 성폭력을 가능케하는 조건들을 허용하지 않기 위해, 우리의 일상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상상하는데에 아래 '동의'의 의미가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동의는 악수이다. 악수를 하자며 손을 내밀었을때 받지 않았다면 그것은 악수가 아니다. 동의는 관계맺음에서 당연히 전제되어야하는 일종의 계약과 약속이다. 그러나 성별권력을 비롯한 여러 권력관계가 놓여있는 현실에서 동의는 네 또는 아니오라는 이분법적인 개념으로 이해될 수 없으며, 동의 의사를 파악하는 것은 네와 아니오 사이에 있는 회색지대를 파악하는 사회적 능력을 필요로 한다. 동등한 관계에서 의사소통 하는 것, 서로 동시에 같은 것을 원하고 제안하며 수락하는 것이 동의이며, 때문에 동의는 치열하고 섬세한 합의의 결과임과 동시에 내 욕구를 솔직하게 드러내고 상대의 생각과 판단을 존중하는 과정, 행위자들이 과정에 모두 개입하여 행위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함께 쓰는 성폭력 사전-동의·위력·강간문화·성인지감수성'은 현재 한국여성민우회 홈페이지 http://womenlink.or.kr/publications/22624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인쇄본은 전량 소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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