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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끼리 외식하러 나갈 때면 가방에 꼭 물티슈를 넣고 다닌다. 편의점에서 파는 작고 휴대성 좋은 제품이 아니라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두툼한 대용량이어야 안심이 된다. 엄마가 되고 나서 생긴 습관이다. 혹여라도 식당에서 아이가 바닥에 밥풀이나 우동면을 흘리면 점원의 도움 없이 재빠르고 청결하게 닦아내기 위해서다. 

아이는 올해 6살이 됐다. 더는 식당에 아기 의자를 부탁하지 않아도 될 만큼 자랐지만 여전히 현관 앞에서 물티슈를 챙겼는지 여러 번 확인한다. 세 식구가 밖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면 나와 남편은 가방 속 물티슈를 꺼내 테이블을 닦고 다 먹은 그릇을 포개어 쟁반에 올려놓는다. 

누구도 그렇게 하라고 시키지 않는다. 그저 우리의 불안에 따른 분투일 뿐이다. 몇 년 전 '노키즈존 논란'이 불거진 이후로 나는 아이와의 외출이 늘 긴장된다. 식탁에 남은 얼룩이나 어질러진 그릇이 혹시나 '맘충'이라는 일반화의 근거가 될까봐 두렵다.

안전하지 않다는 말
 
'성전환 남성 환영', '여대 허물어질 것' 2020년 2월 6일 서울 숙명여자대학교 게시판에 '성전환 학생'의 입학을 환영하는 대자보(왼쪽)와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대자보(오른쪽)가 나란히 붙어 있다.

최근 숙명여대에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받은 트랜스젠더 여성의 합격 사실이 알려진 후 재학생들의 찬반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 "성전환 남성 환영", "여대 허물어질 것" 2020년 2월 6일 서울 숙명여자대학교 게시판에 "성전환 남성"의 입학을 환영하는 대자보(왼쪽)와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대자보(오른쪽)가 나란히 붙어 있다. 최근 숙명여대에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받은 트랜스젠더 여성의 합격 사실이 알려진 후 재학생들의 찬반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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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여대 법학부 신입생으로 합격한 A씨가 학내 반발 끝에 결국 입학을 포기했다는 소식을 접한 지난 7일 밤, 화가 나서 잠을 못 이루고 뒤척였다. 합격을 하고도 학교에 들어가지 못하는 현실이 분하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속상한 건 반대의 이유였다.

숙대를 포함한 서울 지역 6개 여대의 21개 단체들은 반대 성명을 내며 "혐오자들의 목소리가 아니라 그저 여성들의 안전한 공간을 지키기를 원할 뿐"이라고 밝혔다. 학내 커뮤니티에서는 "애초에 트랜스젠더가 조용히 있었으면 난리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글도 올라왔다고 한다.

그 말은 내가 '노키즈존'으로 운영되는 가게들에서 들은 해명과 닮아 있었다. 가게 주인들은 아이들을 향한 혐오가 아니라 다른 손님들이 쾌적하게 공간을 이용할 권리라고,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조치라고 말했다. 나의 강박적인 습관은 여기서 시작됐다. 아이와 함께 다니는 내가 결코 해충처럼 위험하고 해로운 존재가 아님을 인정받기 위해서.

처음 두 눈으로 노키즈존을 마주한 건 2년 전이었다. 가족끼리 제주도에 갔는데 숙소 옆 골목 안에 돌문어덮밥으로 유명한 맛집이 있었다. 문어를 좋아하는 나는 여행 둘째 날 점심에 식구들을 데리고 덮밥집으로 향했는데, 골목 입구에 노키즈존 팻말이 서 있었다. 가게 문 앞에 서보지도 못하고 길 한가운데서 내쫓기는 기분이었다.

남편은 돌문어덮밥을 파는 다른 곳을 검색했다. 걸어서 10분 거리인 가게를 찾았지만 바로 출발하지 않고 먼저 전화를 걸어 아이를 데리고 가도 되냐고 물었다. 수화기 너머로 "그럼요, 오셔도 돼요!"라고 밝게 답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남편은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하며 허공을 향해 허리 숙여 인사했다. 기꺼이 환대해준 식당에서 나는 돌문어가 가득 올라간 덮밥을 앞에 두고 생각이 많아져 한참을 먹지 못했다.

언젠가 '굳이 아이를 데리고 나와서 먹어야 하냐'는 질책을 들은 적 있다. 그런데 참 슬프고 미안하게도, 엄마가 됐다고 해서 취향과 욕구가 사라지거나 억제되는 건 아니었다. 여전히 문어 요리를 좋아했고, 향이 좋은 커피에 침이 돌았으며, 예쁘고 분위기 좋은 맛집과 카페에 가고 싶었다. 

달라진 건 옆에 아이가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이건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였다. 나는 엄마라는 존재고, 이건 돌이킬 수 없으니까. 그냥 내 삶이 그런 거니까. 트랜스젠더인 박한희 변호사가 A씨의 입학 포기 후 남긴 글을 읽으며 나의 대답 또한 그럴 수밖에 없음을 이해했다.
 
"(...) 왜 자신을 여성으로 정체화하는가'라는 의문. 그에 대한 제 대답은 "그냥 그렇다"입니다. 그렇게 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 결국 남는 것은 '나는 그러하다'는 내면의 정체감뿐입니다. 이는 비단 트랜스젠더만이 아닌 모든 사람이 그러할 것입니다." (관련기사 : 숙대는 포기했지만... A씨, 우린 후퇴하지 않을 겁니다)

부디 강박 없이 일상을 살아가길

나는 식당뿐만 아니라 아이와 함께 가는 모든 곳에서 눈에 거슬리는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 항상 노력한다. 아이가 당장 소란을 피우거나 사고를 내진 않았지만 미리 조심해야 한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낀다. 노키즈존이란 게 실존하는 이 세상에서 아이는, 엄마인 나는 누군가에게 잠재적으로 위험하거나 불편한 존재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속으로 미워할 순 있지만 차별하거나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배운다. 누구나 완벽할 수 없는 게 인생임을 이해한다. 그러나 누군가의 불완전함은 사전에 대비하고 격리해야 할 대상이 된다. 나는 그걸 엄마가 된 후에 느꼈고, A씨를 향한 반발을 보며 또 한번 실감했다.

물론 A씨가 겪은 일에 비하면 나의 노키즈존 경험은 아주 사소한 사건이다. 그가 감당해야 했을 고통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트랜스젠더인 A씨에 비해 나는 상대적으로 다수자의 삶에 속해 있다. 시스젠더(cisgender, 지정된 성별과 성별정체성이 일치하는 사람으로 트랜스젠더와 반대되는 개념)로서 당연하게 공부하고 일하는 기회를 누렸으며 이성애자끼리 만나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환대받는 결혼을 했다. 아이를 낳은 뒤의 일상은 다소 불안하고 위태로워졌지만, 그래도 정부에서 각종 보육 지원을 받으며 제도적 안전망 안에서 살아간다. 
 
성전환 변희수 하사 "훌륭한 여군되어, 나라 지킬 기회 달라" 성전환 수술을 받은 변희수 하사가 22일 오후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육군의 전역 결정에 대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훌륭한 여군으로 나라를 지킬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다. 입장문을 낭독한 변 하사가 "통일!"을 외치며 거수경례하고 있다.
▲ 성전환 변희수 하사 "훌륭한 여군되어, 나라 지킬 기회 달라" 성전환 수술을 받은 변희수 하사가 22일 오후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육군의 전역 결정에 대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훌륭한 여군으로 나라를 지킬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다. 입장문을 낭독한 변 하사가 "통일!"을 외치며 거수경례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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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성소수자인 트랜스젠더는 성적을 충족하고도 입학을 자진 철회해야 하며, 성별을 정정했다는 이유만으로 군대에서 쫓겨난다. 법적·사회적 환대는커녕 여성, 장애인, 이주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의 인구와 생활수준, 건강 등을 조사한 국가통계에 성소수자는 빠져 있는 게 현실이다. 엄연한 시민인 그들의 존재와 삶을 국가가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람이라면 응당 누릴 기본적인 욕구 해결조차 그들에겐 두려운 도전이 되곤 한다. 2014년 국가인권위원회 조사 결과, 트랜스젠더의 44.2%는 공중화장실 이용시 '불쾌한 시선'과 '모욕적 발언'을 경험했다. 41.1%는 이용을 포기한 적이 있었다. 밖에서 화장실에 가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참았을 그들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 배제를 당하며 살아가는 걸까(책 <무지개는 더 많은 빛깔을 원한다> 참고). 

아이가 10대에 접어들기 전까지는 한동안 물티슈를 계속 가지고 다닐 것 같다. 그렇다고 엄청난 비애에 젖어 있는 건 아니다. 나의 존재적 불안은 아이가 크면 자연스럽게 사라질 테다. 다만 지금 마음 아픈 건,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성소수자들이 겪는 혐오와 차별은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부디 A씨가 안전한 존재임을 입증하기 위한 강박 없이 일상을 살아갔으면 한다. 맛있는 밥을 먹고, 졸리면 커피를 마시고, 좋아하는 서점 나들이도 하고, 쾌적한 곳에서 공부를 하며 법대에 가고 싶다는 꿈을 향해 자연스럽고 씩씩하게 나아가길 바란다. 그는 결코 위험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대 진학은 포기했지만 그가 꿈만큼은 내려놓지 않기를, 겁먹지 않기를, 그렇게 A씨 자신이 말한 특별하지 않은 삶을 누리기를 바란다. 

나 역시 언제 어디에선가 A씨와 마주쳐도 그를 손쉽게 배제하거나 분리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스스로를 경계하고 성찰하며 살아가야만 한다. 성소수자는 항상 우리옆에 있는 존재이므로.

무지개는 더 많은 빛깔을 원한다 - 성소수자 혐오를 넘어 인권의 확장으로

한국성소수자연구회 (지은이), 창비(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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